<사설> “윤석열 오빠” 추미애 법사위원장 품격은 어디로?

2025.09.24 17:30:56 호수 0호

최근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윤석열 오빠’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발언은 단순한 농담이나 정치적 수사로 치부하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적지 않다. 정치는 단순히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이 아니라, 공적 담론을 형성하고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장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곧 정치인의 품격이며, 사회적 메시지가 된다.

앞서 지난 22일, 추 법사위원장은 국회 검찰개혁 입법 청문회에서 나 의원을 향해 “회의를 왜 방해하느냐? 검찰을 개혁하면 큰일 나느냐?”며 “이렇게 하시는 게 ‘윤석열 오빠’한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나 의원도 “왜 여기서 윤석열 얘기가 나오느냐?”고 반발했다.

이날 추 법사위원장의 ‘윤석열 오빠’ 발언은 성격 자체가 저급한 희화화에 가깝다. 정치인의 발언은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오빠’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사적이고 희화적인 언어다. 이는 단순히 나 의원을 부르기보다는 ‘조롱을 위한’ 구어적 농담에 불과하다.

정치적 반대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공적 무대에서 특정 인물을 낮춰 부르거나 희화화하는 방식은 대중 정치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의 엄호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윤석열 오빠라는 표현이 비하냐? 윤석열 오빠면 오빠이고 (나 의원이) 동생이면 동생인데 뭘…”(이성윤 의원), “답답함을 느끼실 수도 있지만 상황을 봐주셨으면 한다. 나 의원 측이 이 발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김용민 의원)며 엄호에 나섰다.


마치 손으로 달을 보라고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바라보는 격이다. 

정치 희화화는 법사위 자체는 물론, 국회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최소한의 품격과 진지함을 기대한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경제위기, 안보 갈등, 사회 불평등처럼 무겁고 복잡하다.

그런데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언어 유희, 특히 인신적 성격을 띤 발언은 정치가 문제 해결보다는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만든다. 결국 이는 정치 불신을 심화시키고, 건전한 민주주의 운영에도 독이 된다.

이날 추 법사위원장은 불필요한 ‘성별 코드’를 사용했다. ‘오빠’라는 단어는 본래 친근감을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공적 맥락에서는 성별 관계를 연상시키는 불필요한 코드로 작용한다. 정치적 공격이 성별 은유나 친족 관계로 비틀려 표현되는 순간, 담론은 본질에서 멀어진다.

이는 정치적 비판의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상대 진영 지지층에게는 역으로 결집의 명분을 제공한다.

게다가 그의 발언은 스스로의 정치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동시에 ‘정치적 언어의 가벼움’이라는 꼬리표마저 달게 했다. 정치인의 언어는 결국 자기 책임이다. 유권자는 단순히 정책만이 아니라, 언행을 통해 정치인의 진정성과 역량을 평가한다. 조롱과 희화화가 아닌 성찰과 제안의 언어만이 국민의 설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윤석열 오빠’라는 말 한마디로 언론의 관심을 끌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정치 발전에 기여할 리는 만무하다.

정치가 진지함을 잃으면 대중은 정치 무대를 흥미 위주의 연예적 구경거리로 소비하게 된다. 실제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 채널, 유튜브 쇼츠 등에는 그의 오빠 발언이 편집·재생산되고 있다.

정치는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설득과 신뢰의 기술임을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추 위원장의 발언이 남긴 교훈은 너무도 명확하다. 정치인은 말 한마디로도 스스로의 수준을 드러낸다. 품격 없는 언어가 남기는 것은 정치적 이득이 아니라 정치 전반의 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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