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에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신하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임금이 잘 아는 스님을 비밀리에 불러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스님이 다녀간 뒤 한 달 후 나라 곳곳에서 독약을 먹고 죽은 사람들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임금은 신하들을 소집해, 독약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이 많으니 빨리 해독제를 만들어 백성들이 독약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해독제는 쉽게 만들 수 않았고, 백성들이 계속 죽자, 급기야 임금은 매일 신하 한 명씩 불러 독약 유포자를 잡기 위한 묘안을 보고하도록 했다.
그런데 8일째 되던 날 저녁, 임금은 한 신하와 식사 도중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구토를 하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임금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신하들이 의원을 불러 임금을 살리라고 했지만, 의원은 몸 전체에 독이 펴져 죽음을 면치 못하니 장례절차를 준비하라고 했다.
신하들은 독약을 먹은 사람이 3시간 안에 다 죽었다는 점과 해독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장례절차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임금은 다음날 신하들이 모여 자신의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있는 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8일째 되던 날 식사 도중 임금이 자리를 피한 사이 음식에 독약을 탄 신하를 감옥에 가두고 능지처참하라고 명령했다.
사실 임금으로부터 음모를 꾸미는 신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님은 독약을 만들어 세상에 유포시켰고, 임금에게는 해독제를 주면서 독약이 몸에 퍼져도 1시간 안에 해독제를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던 것이다.
고대로부터 독약을 만들 땐 해독제도 같이 만든다고 한다. 이는 중국 무협지에도 자주 나오는 스토리다. 독약을 만들 때 많은 실험을 하는데, 그때 해독 실험하는 게 쉬워서이기도 하지만, 만약 독약을 만든 자신이 그 독약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반드시 해독제도 만든다고 한다.
처음에는 스님이 의심 가는 신하들에게 독약을 탄 음식을 먹게 하여 그 신하를 제거하는 방법을 임금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임금은 언젠가 자신도 그 독약으로 인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스님에게 해독제를 만들지 못하면 절대 독약도 만들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이 스토리는 필자가 지어낸 이야기로, 국정을 운영하는 최고 지도자 대통령에게 팁으로 주는 메시지다.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반대 세력을 척결하거나 거물급 야당 인사와 싸워야 할 때, 핵심 측근 중 가장 적합한 사람을 골라 엄청난 권한을 주고 상대를 대응하게 한다. 이는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운영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독약처방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 정부 인사를 척결하기 위해 불도저 스타일 윤석열 검찰총장 카드를 썼고, 윤석열 전 대통령도 여소야대 상황서 야당을 공격하기 위해 싸움닭 스타일 한동훈 법무장관 카드를 썼던 게 좋은 예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검사를 소신 있고 강단 있다고 보고, “살아있는 권력에도 칼을 대는 원칙주의자”라는 점을 높이 평가해 국정 농단과 적폐청산 미션을 주면서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계기로 청와대와 정면충돌했고, 이후 정권과 검찰 간의 불신이 깊어지면서 결국 윤 총장은 정치에 뛰어들어,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하면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나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윤 총장이 문정부를 공격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정권까지 내주게 된 것이다. 독약 처방만 했지 해독제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도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싸우고, 정권 초반 동력을 확보하고,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지지층 결집 효과를 얻기 위해 가장 적임자인 한동훈 검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한 장관은 급격히 정치적 입지를 키웠고, 차기 대권주자까지 거론되면서 국민의힘 대표가 돼 윤 전 대통령과 각을 세웠고, 결국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면서 그를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만든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윤 전 대통령도 당시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정부를 공격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역시 독약 처방만 했지 해독제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 전 대통령은 정권을 빼앗아갈 상대를 키웠고,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내려놓게 하는 후계자를 키웠다는 사실이 한국 정치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가? 문재인·윤석열 학습효과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이 대통령은 내란세력 척결과 3대 특검, 그리고 3대 개혁 미션을 위해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대통령의 경우 대선후보 시절 자신의 5개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해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을 활용해 사법부와 국민의힘을 상대로 싸웠기 때문에 민주당을 독약처방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대통령이 민주당이라는 독약 처방을 이용해 사법리스크를 미루고 피하고 대통령까지 됐지만, 만약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맘에 안 든다고 공격하면 이때 공격을 막을 수 있는 해독제가 없으면 이 대통령도 문 전 대통령이나 윤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통령의 윤 총장도, 윤 전 대통령의 한 장관도 처음에는 대통령이 원하는 독약 처방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독약 처방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사실을 이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내란세력 척결과 3대 특검, 그리고 3대 개혁을 주도하는 민주당이 아직은 윤 전 대통령과 전 정부 인사 그리고 개혁 대상이 되는 기관을 공격하는 카드에 머물러 있지만,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문정부의 윤 총장과 윤정부의 한 장관처럼 민주당이 이정부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년 8월 차기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민주당 대표가 차기 대권을 노리며 그 중심에 서게 되면, 이때 이 대통령의 레임덕도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를 차기 당대표로 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밀어준 차기 당대표는 그가 비밀리에 감춰둔 해독제 역할을 하는 대표가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어낸 스토리의 임금이 해독제를 갖고 있었듯이, 이 대통령도 다수당 민주당 카드를 사용하면서 이미 비밀리에 해독제 역할을 하는 최측근를 준비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