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이 대통령과 조 대법원장의 ‘파기환송’ 인연

2025.09.21 09:17:26 호수 0호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의 인연은 이 대통령의 5년 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파기환송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때 친형 강제 입원 지시 관련 직권남용,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1심에선 무죄를 받았으나, 2심(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공직선거법상 당선무효형이라는 정치 생명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조 대법관이 참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직선거법 위반죄는 ‘허위 사실 공표’가 명확히 입증돼야 하고, 이재명의 발언은 ‘과장·쟁점화된 해석의 여지가 있어 형사처벌 요건 충족이 어렵다”며, 2020년 7월16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로 인해 이 도지사는 정치적 사망선고에서 벗어났고, 2021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갈 수 있었다.

만약 그때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면, 당시 이 도지사는 지사직을 박탈당하고, 5년간 피선거권이 없어 국회의원 및 대통령 출마도 불가능한 정치적 미아가 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당시 조 대법관은 이 도지사에게 큰 은인이었다.

이 둘의 인연은 5년 후 다시 대법원에서 21대 대통령후보와 대법원장으로 만났다.


지난 5월1일 조 대법원장이 재판장으로 참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2심 무죄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가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거나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이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는 발언을 허위 사실 유포로 판단했다.

1심 유죄(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2심 무죄에 이어 대법원이 다시 유죄 취지로 판단하자, 당시 이 후보의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만약 선거 전까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이 후보는 피선거권을 잃게 되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파기환송심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재판부가 5월15일로 예정돼있던 첫 공판기일을 6월3일 대선 이후인 6월18일로 연기하면서 다행히도 대선을 치를 수 있었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대통령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재판기일을 대통령 선거일 후 6월18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5년 전과 달리 조 대법원장의 대법원이 이 후보에게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이때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악연이 됐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정치 생명의 은인이었던 조 대법원장이 자신의 정치 생명줄을 끊으려는 원수로 바뀐 셈이다.

이 둘의 악연에 의한 갈등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사법개혁’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면서, 검찰권 견제, 법원 투명성 강화, 고위 법관의 책임성 확보 등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조 대법원장은 이런 개혁 기조에 동조하지 않았고, 실제로 보수 성향 판사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사법개혁 동력을 약화시키는 스탠스를 취해 왔다.

최근에도 대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했던 지귀연 판사의 늑장 재판에 별 대응을 하지 않고 있고, 지 판사 접대 의혹에 대한 내부 윤리감찰 결과도 발표하지 않고 있어 이 대통령 역시 조 대법원장을 불신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 대법원장이 지난 15일 대법원장 주도로 전국법원장회의를 열었지만, 대법원장의 초고속 파기환송이나 지 판사에 대한 특별한 입장이 나온 게 없다면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대한 위헌 논란만 언급하자, 이 둘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대통령의 사법개혁 의지에 조 대법원장이 반대 입장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자, 민주당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튿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본격적으로 조 대법원장 사퇴를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날 부승찬 민주당 의원은 조 대법원장이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인 4월7일께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충식씨(김건희씨 엄마 최은순씨 측근)와의 점심식사에서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밝히면서 조 대법원장 사퇴를 주장했다.

부 의원은 “그후 조 대법원장이 5월1일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초고속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단행했다”며 “조 대법원장이 대선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시켜 대통령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조희대·한덕수 회동 의혹'은 이날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지난 5월2일 이미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제기했었다.

대통령실도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조 대법원장 사퇴론이 나오자 "국회가 어떤 숙고와 논의를 통해서 헌법 정신과 국민의 뜻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가장 우선시되는 건 국민의 선출 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며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주장에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맞장구 쳤다.

그러나 이날 오후 늦게 대통령실은 여권 내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촉구’ 주장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대법원장 거취에 대해 논의한 바 없고, 앞으로도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정부가 삼권분립을 훼손하려 한다는 국민적 여론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은 내란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지 판사에 대한 불신과 향후 이 재판을 최종 심리하게 될 조 대법원장에 대한 이중 불신이 겹치면서 18일, 내란 사건을 전담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한다는 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윤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조 대법원장과 지 판사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의도다.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2027년 6월까지고, 윤 전 대통령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지 판사는 내년 1월 법원 인사이동 때까지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의 구속 만료 기간이 내년 1월이어서 이대로 간다면 윤 전 대통령이 다시 구속에서 풀려나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서둘러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을 발의한 것이고, 조 대법원장과 지 판사에게 사퇴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다.

이 대통령과 조 대법원장의 악연에 의한 갈등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삼권분립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악연에 의한 갈등 속에 있다는 건 한국이 후진국이라는 의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왜 혁명과 숙청을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와 이정부를 무시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조 대법원장은 현재 지 판사와 함께 이정부의 행정 권력과 민주당의 입볍 권력에 대항하면서 사법 권력을 지키려는 것 같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의 지원이 약해 힘들어 보이지만, 그래도 많은 국민은 조 대법원장의 사법부 독립 주장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의 주장이 민주당이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윤 전 대통령을 지키려 했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모습으로 비춰지면 안 된다. 그러면 우리 국민은 조 대법원장의 사법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사퇴를 주장하는 민주당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이 대통령과 조 대법원장의 악연에 의한 갈등이 하루 빨리 해소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이정부가 추진하는 사법개혁도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