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내란 우두머리 방조, 위증,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은 한 전 총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후 “법적 평가를 다툴 여지가 있다”며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청구했던 영장을 기각했다.
이로써 한 전 총리는 구속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무총리라는 오점에선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중요한 사실관계 및 피의자의 일련의 행적에 대한 법적 평가는 다툴 여지가 있다”며 한 전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 수사 진행 경과, 피의자의 현재 지위 등에 비춰 방어권 행사 차원을 넘어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경력, 연령, 주거와 가족 관계, 수사 절차에서 피의자의 출석 상황, 진술 태도 등을 종합하면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한 전 총리는 석방 절차를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나오면서 취재진의 “구속영장 기각을 예상했나?” “구속은 일단 면했는데 향후 수사에 적극 응할 것이냐?”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또 “계엄 선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무위원들을 소집했던 게 아니냐?” “계엄 선포문을 받았는데 왜 안 받았다고 했느냐?” “계엄 문건을 보는 모습까지 (CCTV를 통해) 확인됐는데 내란에 동조한 게 아니냐?” “계엄 당일에 추경호(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의원과 통화한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묵묵무답으로 일관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특검은 한 전 총리의 범행이 중대한 데다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 및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며 구속 수사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날 준비한 PPT 발표 자료는 160페이지 분량에 의견서도 362쪽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헌법과 법률에 따른 국무총리의 무거운 의무를 저버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불법적인 계엄 선포를 방조한 혐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국정 2인자’로서 대통령의 국가 및 헌법 수호의 책무를 보장하도록 돕는 동시에 잘못을 사전에 견제 및 통제할 의무가 있는 ‘제1의 국가기관’이라는 의무를 저버렸다고 판단했다.
이날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특검은 “우선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해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여야는 극명한 온도 차를 보였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고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입장을 밝힌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법원 판단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가장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28일, 장동혁 국민의힘 신임 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특검이 시작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충분한 증거수집이 이뤄졌을 이 시점에 청구한 영장이 기각된 것은 특검이 얼마나 무리한 특검이고 정치 특검인지 스스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 신임 대표는 “특검이 국민의힘 당원명부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하겠다고 밝혔는데, 범죄 사실과 어떤 관련성도 찾지 못해 집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다시 잘 생각하라”면서도 “법원도 재청구에 대해 도다시 영장을 발부한다면 법원 스스로 사법부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한 전 총리가 짊어진 혐의만 6개로 내란 방조, 계엄 가담, 허위 공문서 작성, 위증까지 가벼운 것 하나 없다”며 “심지어 허위 계엄 선포 문건의 폐기를 지시하는 등 증거를 적극적으로 인멸한 의혹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내란 방조를 넘어 적극적으로 계엄 가담 의혹까지 받고 있는 공범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국민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내란 세력과 국민께 명백히 잘못된 신호를 준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정가에선 특검이 한 전 총리에 대한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내란 조사에 동력을 잃지 않겠느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한 전 총리는 12·3 내란 사태 이후 헌법재판소 및 국회에 출석해 사전에 계엄 선포문을 봤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던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9일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선포문을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하면서 위증 혐의도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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