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비선’ 노상원 부정선거 꽂힌 내막

2025.09.01 14:41:58 호수 1547호

태극기만 보다
망상에 빠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그가 ‘부정선거 음모론’에 강한 확신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노 전 사령관이 이 음모론에 심취하기 시작한 시기는 2023년부터로 추정된다. 그는 직접 태극기 집회에 참여해 극우 세력이 왜 ‘극단적 목소리’를 내는가 분석했다. 주변인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일 비상식적 발언을 이어가는가 하면 망상에까지 빠졌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변 인물
극단적?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공부하러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이하 대수장)을 찾은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근태(예비역 육군 대장) 대수장 상임대표는 노 전 사령관이 대수장 회원은 아니지만 회원들을 대상으로 부정선거 강의에 참석한 적은 있다고 인정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수장 강의에 참석한 날 강연자로 나섰던 인물은 육사 출신 장재언씨다. 그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산 조작이 있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발했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지난해 8월 무혐의로 판단한 후 사건을 불송치했다.

앞서 대수장은 예비역 장성 단체인 성우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서 2019년에 출범한 단체다. 이 단체는 문재인정부의 9·19 합의 폐기 및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국민 성금 모금운동을 하겠다며 수년간 집회를 이어 왔다.


당시 약 400명의 예비역 장성이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규모가 작지 않다. 여기엔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도 포함됐다. 특히 이필섭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12·12 군사 반란의 주역인 ‘하나회’ 출신 인사들도 포진돼있었다.

복수의 예비역 장성들은 <일요시사>에 노 전 사령관이 대수장과 성우회 회원들과 접촉이 잦았다고 증언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2022년 말인가 2023년 초부터 대수장 회원들과 서울에서 자주 만났다. 노상원이 먼저 연락이 와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부정선거는 어떻게 이뤄지냐’고 먼저 물었다”고 주장했다.

최소 2년 전부터 대수장·성우회 잦은 접촉
대표적 ‘음모론’ 단체 연일 극단적 목소리

다른 예비역 장성도 “노상원이 ‘하나회’ 출신이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그 단체 출신 인물들과 친분이 있을 뿐이다. 다만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 노상원이 성우회보다는 대수장 회원들과 자주 만났다”고 전했다.

일부 예비역 장성들은 2022년 대선 전부터 윤석열 캠프 등에서 활동했다. 육군 대장 출신이자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되기도 했던 김 상임대표는 윤석열 대선캠프 국방정책특보 출신이다.

김 상임대표가 만든 ‘국방포럼’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은 요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국방부 산하기관인 김정수 한국국방연구원(KIDA)장도 국방포럼 사무총장을 맡았고 대수장 유튜브 ‘장군의 소리’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대수장의 영향력은 신 전 실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 2024년 4월에 있었던 정기총회에는 윤봉희 국방부 정책기획관이 직접 참석해 신 전 장관의 축사를 대독했다. 김 전 장관도 ‘장군의 소리’에 출연했고 대수장 관련 행사에도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군 안팎에서는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이 대수장이 활약할 수 있는 선로를 깔아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윤석열 캠프 출신의 한 야권 관계자는 “정부 요직에 앉고 싶어 하는 사람은 김용현에게 연락하고 사업과 비즈니스 쪽으로는 노상원을 통해야 했다는 말이 캠프 내부에 파다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의 수사 기록에도 그가 얼마나 부정선거에 심취했는지 드러난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부 후
직접 참석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돼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 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 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그렇게 믿고
위험한 계획

노 전 사령관은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 사태가 났을 것”이라며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하고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 체계, 형사소송법, 방탄 국회 및 재판 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윤정부 출범 후 몸집 커져 일부 인사 요직에
“국방 낙하산은 김용현, 비즈니스는 노 통해”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전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이현복)는 지난달 27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된 노 전 사령관의 2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는 정보사 소속 김봉규·정성욱 대령이 증인으로 나왔다. 김 대령은 이후 노 전 사령관 지시에 따라 제2수사단 요원 선발과 선관위 장악 작전 등에 가담했다.

김 대령은 이날 공판에 출석해 “지난해 9월 노 전 사령관에게 특수임무요원이나 공작요원 대여섯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받았다”며 무술 유단자나 사격 능력자 등 명단을 작성해 전달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에는 ‘4·15 부정선거 비밀이 드러나다’라는 책자의 요약과 정보사 인원 10~15명 추가 선발을 요청하고, 이후 11월쯤 특수요원 5명을 포함시켜 달라고 했다고도 한다.

부하에
교육도

김 대령은 이 과정에서 노 전 사령관이 “전라도 지역 출신자들을 선발 인원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문 전 사령관에게 명단을 보낸 지난해 12월21일 이후에도 전라도 지역 (제외) 말씀을 하셔서, 그 이후에 다시 선발했다”며 “처음에 지시할 때 특수무술 잘하는 사람 등으로 인원을 뽑았는데, 구체적으로 ‘전라도를 빼라’고 해서 다시 진행했다”고 말했다.

명단에 적힌 정보사 요원들의 인적 사항에는 계급 외에 출생 지역, 임관 연도, 학력, 기타 특징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3급 군사기밀인 정보사 요원의 개인정보가 민간인인 노 전 사령관에게 넘어간 것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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