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③선포 10분 전 국무위 상황

2025.04.30 17:27:06 호수 1530호

불려간 장관들은 입도 벙긋 못했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12월3일 저녁, 관용차가 속속들이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섰다. 이날 대통령실로부터 급하게 호출을 받은 국무위원은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다. 비상계엄 선포를 앞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10명의 시선으로 되짚어봤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 계엄을 선포하기 4시간 전인 지난해 12월3일 오후 6시11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장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비상 계엄의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당장 집합”
긴급 명령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 전 장관은 울산서 열리는 김장 행사에 참석한 뒤 서울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장관에게 “어디냐”고 물었고 그는 “울산서 김장 행사 하고 회의를 한 뒤 서울에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몇 시쯤 도착하느냐는 질문에 “8시가 넘는다”고 말하니 “도착하는 대로 바로 용산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7시54분,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즈공화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 이때는 윤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윤 전 대통령은 “지금 용산 집무실로 바로 올 수 있느냐. 도착하면 부속실장이 안내할 것인데, 부인에게 말하지 말고 오라”는 지시를 남겼다.


삼청동 공관서 저녁식사 후 쉬고 있던 한덕수 국무총리도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오후 8시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와달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역시 식사 후 귀가하던 차에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5층 대통령실에 도착해 한참을 대기했다. 집무실로 들어가니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의 말을 들은 박성재 장관은 “어떻게 하려고 이러시냐. 문제점은 검토해보셨느냐”고 물었고 윤 전 대통령은 “검토해 봤고, 내가 결단해서 (비상계엄을) 하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오후 8시55분경 한 총리도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소식을 접했다. 윤 전 대통령은 “사실 내 결정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용산에 있는 간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 총리는 경제적·사회적 이유를 들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만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의지가 꺾이지 않자 한 총리가 “그럼 다른 국무위원 말을 들어보시라”며 권유했고 윤 전 대통령은 “그럼 그렇게 모아보세요”라고 응했다.

“부인에게 말하지 말고”
영문 모르고 용산으로

공관에 도착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반대 의사를 표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윤 전 대통령이 ‘재외공관’이라고 쓰인 A4용지 한 장을 건넸고, 이후 한 총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조태열 장관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외교적 영향뿐만 아니라 70여년간 대한민국이 쌓아온 모든 성취를 한번에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파장 일으킬 수 있는 문제니 재고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당시 조태열 장관의 해당 발언 당시 집무실에는 본인을 포함해 한 총리, 김영호 통일부 장관, 조태용 국정원장이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전 장관은 “외교부 장관이 조금 세게 말을 했다”며 “이에 대통령은 ‘외교나 경제에 영향이 있는 걸 안다. 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제 뜻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윤 전 대통령의 언성은 단박에 높아졌다. 윤 전 대통령은 조태열 장관을 쳐다보며 다소 언짢은, 격양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개인을 위해 이렇게 하는 거라 생각하세요? 법치주의를 누구보다 신봉하는 내가 오죽하면 이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 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됩니다. 단기적으로 어려움 있겠지만 한미동맹 등 대외관계와 외교정책에 전혀 영향 없을 것이고 그대로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다양한 생각은 이해되고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국무위원 상황 인식과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다릅니다. 이 자리에 있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윤 전 대통령은 근처에 서 있던 김 전 장관에게 “방송 대기 중이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윤 전 대통령이 “나가 달라”고 말하자 김용현 전 장관을 제외한 모두가 집무실서 나와 연결된 대접견실로 이동했다. 그때가 대략 오후 9시20분경이었다.

그제서야 국무위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얹었다. 이 전 장관은 “모두가 망연자실했다”고 상기하며 “대부분 ‘큰일났다’는 반응이었고 ‘(비상계엄을) 미리 아셨냐’ ‘지금 세상에 계엄이 무슨 소리냐. 계엄할 상황이냐’는 주제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반대에도
독불장군

오후 9시 이후 대통령 부속실로부터 전화를 받은 국무위원은 최상목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장관을 비롯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그리고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었다. 국무회의 개의에 필요한 최소 정족수인 11명을 채우기 위해 빠르게 용산으로 올 수 있는 국무위원을 ‘닥치는 대로’ 소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오후 9시42분 가장 늦게 전화를 받은 오 장관은 대통령 부속실 관계자의 전화를 받고 “40분이 걸린다”고 말했지만 10~20분 간격으로 “빨리 오라”는 신경질적인 추가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회의실서 우왕좌왕하던 중 누군가가 이 전 장관에게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가서 말씀 좀 드려봐라’라고 말했다. 이에 이 전 장관은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 “국무위원 전원이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은 “(접견실에)가 있으라”고 말했다. 국무총리가 몇 차례 집무실로 들어갔지만 결과는 변함없었다.

오후 10시 경, 최상목 장관이 도착했다. 비상계엄 이야기를 들은 최 장관은 한 총리에게 “왜 반대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미 여러 번 반대 말씀을 드렸다”고 답했다. 그러자 최 장관은 “내가 들어가서 말해보겠다”며 집무실로 들어가 “이건 안 된다. 경제와 국가 신인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이미 언론에 특별 담화를 공지했기 때문에 더는 계획을 바꿀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이유를 놓고 다수의 국무위원은 ‘야당의 최재해 감사원장과 중앙지검장의 탄핵이 도화선이 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윤 전 대통령 봐주기 수사’ 의혹을 받던 최 감사원장을 비롯한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 불기소 처분을 결정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현직 검사 3명의 탄핵소추안이 지난해 12월4일 본회의서 처리될 예정이었는데, 이에 분노한 윤 전 대통령이 최후의 수단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설명이다.

김 전 장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늘 “사회 곳곳에 암약하는 종북 주사파를 비롯한 반국가 세력을 정리하지 않고는 대한민국 미래가 없다” “헌법 가치와 헌정 질서를 갖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 “나는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고 진술했다.

아무도
못 막아

“직접 들은 것만으로도 100번이 넘는다”며 오히려 “대통령의 애국심과 구국의 일념에 대해 존경하고 공감하고 동의해 왔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이날 ‘보좌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집무실과 브리핑실을 드나들며 윤 전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었다. 최 장관은 시종일관 윤 전 대통령 옆에 붙어 있던 김 전 장관을 향해 “왜 가만히 계시냐”고 말했지만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다.

조태열 장관이 “어떻게 된 일이냐” 물었지만 역시나 “대통령이 깊은 고뇌에 찬 결단한 것이니, 국무위원이 뜻을 따라주면 좋겠다”고 일축했다.

송 장관이 용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10분 경이다. 보통 회의 등에서 국무위원끼리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지만 그때는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송 장관은 옆에 앉은 이 전 장관에게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말하니 “계엄” 딱 한마디가 돌아왔다.

김영호 장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집무실서 나와 대접견실로 들어선 뒤 서 있는 채로 “계엄을 선포해야겠다. 지금 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11명째인 오 장관까지 용산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자 곧바로 계엄 의지를 최종적으로 선포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전 대통령이 대접견실로 오자 최 장관은 “재고해달라, 다시 생각해달라”고 말했으며 박성재 장관 역시 “경제와 외교가 걱정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가던 중 마지막으로 도착한 오 장관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윤 전 대통령은 별다른 반응 없이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나 혼자의 결정”이라고 말한 뒤 “지금 계획을 바꾸면 모든 게 다 틀어진다. 이미 언론에 이야기했고 문의가 빗발치는 상황이다. 나중에 보자”하고 대접견실을 나섰다.

이때 김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의 뒤를 따랐다.

“종북 좌파 놔두면 나라 거덜” 고성 터진 집무실
“혼자 말하고 혼자 결정…국무회의로 보기 어려워”

오후 10시20분경 윤 전 대통령이 나간 뒤 누군가가 휴대전화를 꺼냈고 곧바로 담화가 시작됐다. 스피커를 통해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는 문장이 나오고서야 국무위원들은 서로 “어떻게 하냐” “어떻게 수습하냐” 등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담화가 끝나고 2~3분 뒤 대접견실로 돌아온 윤 전 대통령은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발표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장관은 ▲기재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감독원장 ▲금융위원장이 모여 시장 안정 조치를 위해 진행하는 ‘F4회의’를 해야겠단 생각에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통화를 마친 후 대통령이 “기재부 장관”이라며 본인과 한 실무자를 불렀고, 그 실무자가 ‘여러 번 접은 종이 쪽지’를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적힌 문제의 그 쪽지다.

송 장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대접견실서 장관들에게 일종의 업무 지시를 했다. 최 장관에게는 경제를 맡기고, 한 총리에게는 “내가 가야 하는 일정을 총리가 대신 해줘야겠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본인에게는 “농산물 물가 뛰지 않게 잘 관리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밝혔다.

대접견실에 약 5분 정도 머무른 윤 전 대통령은 집무실로 돌아갔다. 역시나 김용현 전 장관이 함께 들어갔다.

짧은 침묵 후 누군가가 최 장관에게 다가와 출석에 대한 서명을 요청했다. 최 장관은 국무회의 외관을 갖추기 위한 절차라고 생각해 “서명은 못한다”고 말한 뒤 대접견실을 나섰다. 송 장관과 조태열 장관 등도 서명을 거부한 뒤 그대로 대접견실을 빠져나왔다. 이후 국무위원들은 각자 차량으로 용산을 떠났다.

발 빼는
장관들

10명의 국무위원이 윤 전 대통령을 지켜봤지만, 그 누구도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다. 국무위원 조서 중에는 “(당시 회의실)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 더 비참하다” “대통령을 막을 방법이 없어 무기력했다” 등의 진술이 나왔다. 결국 시민이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고 국회로 진입하려는 계엄군을 저지했다.

누군가는 “국무위원의 반대에도 대통령이 결정하면 도의적 책임은 져도 형사적 책임을 국무위원이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진술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 국회 현안 질의에 참석한 장관들은 저마다 “비상계엄에 우려를 표했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날 선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삼청동 안가 회동 왜?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은 비상계엄 이튿날인 12월4일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께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이하 안가)’서 만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조서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이 법제처장에게 전화해 “상황이 갑갑하다….저녁에 뭐하냐”고 물었고 특별한 일정이 없다는 대답에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 과정서 박 장관과 연구원 동기이자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김 민정수석도 합류했다.

약속 장소를 안가로 정한 것은 김 민정수석이라는 게 이 전 장관의 설명이다.

이 장관은 “도시락을 주문해 먹으면서 ‘대체 왜 여기까지 왔냐,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 정국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등 신세 한탄을 했다”며 “할 수 있는 게 없어 1시간 만에 헤어졌다”고 진술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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