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김 후보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진심으로 정중하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기자회견 직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과정서 “그것(비상계엄)이 설사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비상대권이라고 하더라도 경찰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국가적 대혼란이 오기 전에는 계엄권이 발동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가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비상계엄 선포를) 미리 알았더라면 윤 전 대통령에게 계엄이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말했을 것”이라며 “지방서 정말 어렵게 장사하는 분들, 생활하기 어려운 많은 분들과 국론이 분열됐던 여러 가지 점 등을 생각해 진심으로 정중하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이야 아니냐 등은 재판을 하고 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같은 김 후보의 사과 발언은 최근 발표되고 있는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선을 20여일 앞둔 상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허용오차 범위 밖에서 김 후보를 따돌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다수의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단순히 여론조사 지표가 당락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권자들의 여론을 살필 수 있는 바로미터인 데다 줄곧 이재명 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꺼내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지난달 24일, 김 후보는 한동훈 전 경선 후보와의 2차 토론회서 ‘비상계엄 선포를 계몽령이라고 일컫는 이들이 있는데 이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상당히 센스 있는 말”이라고 답변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젊은 사람들이나 정치 무관심층이 민주당이 얼마나 국회서 포악한 일들을 많이 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그런 뜻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여일 만에 기존 입장을 뒤집은 셈이다.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간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1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3일 대선서 누구에게 투표할 생각인지’ 물은 결과, 전체 유권자의 52.3%가 이재명 후보를 꼽았다. 김 후보는 35.9%,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는 6.7%로 집계됐다. ‘잘 모르겠다’며 응답을 유보한 층은 0.8%였다.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을 제외한 모든 지역서 이재명 후보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당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서도 그는 과반 이상(59.4%)의 지지를 받아 32.3%(김 후보), 3.3%(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무난히 제쳤다.
이재명 후보는 국정 운영 선호도 부문에서도 52.6%의 선택을 받으며, 34.5%(김 후보), 7.7%(이준석 후보)를 여유 있게 앞섰다.

해당 여론조사는 전국의 성인남녀 1033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p다.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6.1%였다(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나 서치통 홈페이지 참조).
지난 14일, 여론조사 기관 한국갤럽이 <뉴스1> 의뢰로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간 전국의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재명 후보 51%, 김 후보 31%, 이준석 후보 8%의 지지를 받았다(지지 후보 없음 8%, 모름·응답 거절은 1%).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가상번호)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8.9%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김 후보는 민주당 등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의 탈당 문제에 대해선 우회적으로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김 후보가 탈당을 요구할 경우,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데 통화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엔 “(탈당 여부는)윤 전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대통령 후보가 탈당하라, 탈당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앞서 15일 오전, 한덕수 대선캠프서 대변인을 맡았다가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정현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은 “오늘 중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자진 탈당을 권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공동선대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자진 탈당 권고 및 계엄에 대한 당의 책임 표명과 대국민 사과를 제안한다”며 “국민의 90%가 잘못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이 계엄령 선포에 대해서도 당의 책임을 표명하고 국민께 공식 사과할 것을 제안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 내 최다선(5선)이자 친한(친 한동훈)계 핵심 인사인 조경태 의원도 “영남권 민심이 크게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12·3 비상계엄에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내란 수괴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절연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는 인식이 많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자진 탈당보다는 제명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게 더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주장했다.
이어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인사들도 후보 최측근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윤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라며 “위장 탈당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친윤(친 윤석열) 인사들도 2선으로 전면 후퇴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 후보 선거캠프에는 지난 탄핵 정국서 윤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으로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던 석동현 변호사가 시민사회특별위원장으로 합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석 변호사는 당시 ‘윤석열의 입’으로 불리며 법률대리인단이 채 꾸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 브리핑을 주도하는 등 접촉면을 넓혔던 바 있다. 또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해 ‘국민 저항권’ 등의 발언을 내놓으면서 집회 선동에 나섰던 인물이다.
김 후보는 박근혜정부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던 최경환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및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복당 처리에 대해선 “모든 분들을 다 포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용광로 같이 어떤 분이라도 다 포용해서 뜨거운 열정으로, 쇳물을 녹이는 온도로, 이질적인 많은 분들을 녹여 국민 행복을 위해 필요한 일과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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