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널려 생명 위협하는 ‘노숙차량’<현장르포>

2009.11.03 09:08:51 호수 0호

안전지대 얌체 주차에 시한폭탄 ‘째깍째깍’

어둠 속 노숙 차량은 장벽…‘앗’ 하는 순간 ‘꽝’
과태료 내면 그만…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적용해야 



대로변 불법 주·정차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 25일 밤 광주의 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승용차가 노숙 트럭을 들이받아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문제는 처벌 법규와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점. 이는 언제든지 제2, 제3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는 도로에 직접 나가 그 실태를 좇아봤다.

지난달 25일 오후 8시쯤 광주의 한 외곽 광로(廣路).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승용차가 트럭과 충돌한 것이다. 곧이어 승용차는 휴지조각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찌그러지면서 불길에 휩싸였다.

사고자는 A(52)씨 부부와 대학생 아들 등 3명. 이들은 고향 장성에서 농사일을 거들고 귀가하다가 예기치 않은 불행에 생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사고는 A씨가 도심에 진입해 산동교 부근을 지날 무렵 안전지대에 떡하니 버티고 있던 노숙 트럭에 추돌하면서 일어났다. 노숙트럭은 거대한 장벽이었다. 트럭의 실체를 뒤늦게 발견한 A씨는 손쓸 틈도 없이 승용차와 함께 3~4m의 짧은 타이어 자국만을 남긴 채 트럭 후미로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장벽에 급브레이크


앞서 이날 오후 7시30분쯤 트럭 운전자 지모(52)씨가 18톤 카고 트럭을 노숙시킨 채 인근 자택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내려와 피로한 나머지 차를 주차한 뒤 곧바로 근처 집으로 향했다. 물론 사고가 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난 10월27일 밤 10시. 서울 구로구 신도림 한 고가도로 밑. 대림역 방면으로 가기 위해 고가 아래로 내려선 차량들이 갑자기 속도를 줄인다. 가로등 불빛조차 없어 희미한 전방에 대형트럭들이 주차되어 있는 탓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운전자는 급브레이크를 밟기 일쑤다.

이 길을 자주 다닌다는 직장인 한모(36·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씨는 “집에 가기 위해 이 길을 자주 이용하는데 가끔 아연실색하는 경우가 있다”며 “어느 정도 속도를 내며 내려오다가 갑자기 산 만한 트럭이 눈앞에 나타날 경우 등골이 오싹해 진다”고 전했다.

같은 날 밤 11시30분. 노숙 차량이 널려 있다는 남부순환도로를 찾아봤다. 인터체인지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안전지대에는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있었다. ‘정차 차량인가’하고 다가가보니 운전자는 없었다. 주차된 차량이다.

인근에서 분식점을 하고 있는 권모(56·여)씨는 “저녁 9시만 넘으면 트럭들이 자리를 잡아. 가끔은 그들 사이에 다투기도 하는데 자리다툼이지 뭐. 어쩔 때는 ‘꽝’하는 굉음이 들려 올라가보면 추돌사고가 나 있는 경우도 있어. 위험한데 단속을 왜 안하는지”하며 혀를 찼다.

다음날 밤 10시. 인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화물트럭터미널 인근을 찾았다. 이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불빛이 희미한 도로 너머로 트럭들이 세워져 있었다. 차량통행이 드문 시간이라 지나는 차들은 이들 트럭 사이를 빠른 속도로 곡예 하듯 지나쳤다.

문제는 좌합류도로에 접한 곳에 세워져 있는 트럭들. 차선이 줄어들며 합류되는 지점에도 트럭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지켜본 한 시간 동안 급브레이크를 밟는 차량만도 20여 대에 달했다. 그만큼 위험이 높다는 것.

출퇴근길 이곳을 이용한다는 서모(38·직장인·부천시)씨는 “한 번은 이곳을 지나는데 두 대의 차량이 경주를 하듯이 굉음을 내며 뒤에서 달려오다가 어둠 속에 놓여 있는 트럭을 발견못하고 옆구리를 때렸다”며 “그런데도 그 승용차는 차선을 넘나들며 몇 바퀴 회전하다가 도로 옆 밭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서씨는 이어 “다행히 운전자의 노련함으로 큰 사고를 면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찔하게 만들었다”며 “만일 차량 통행이 많았으면 연쇄추돌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도 뒷짐만 지고 있는 행정당국은 반성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견인업체들에 따르면 실제 전국 곳곳 제2순환도로, 도심 근린공원, 고가, 학교 주변에는 매일 밤 적게는 10~20대, 많게는 40~50대의 대형 화물차가 몇몇 승용차들과 함께 불법 노숙을 하고 있다. 자동차전용도로 내 안전지대에도 예외는 아니다. 매일 밤 불법 주·정차로 1개 차선 이상이 점령되기 일쑤다.


문제는 이렇게 불법 주차된 차량들은 대형 참사를 부르는 ‘시한폭탄’이란 것. 사실 화물트럭의 경우 관할 행정기관으로부터 밤샘주차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트럭은 그리 많지 않다.

남부순환도로에서 만난 트럭운전자 주모(44)씨는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수입이 줄어든 마당에 불법 주차로 적발될 경우 과태료만 1회 10만~20만원에 이른다”며 “게다가 유료 주차장도 비용이 만만찮다 보니 위법인 줄 알면서도 집 근처 안전지대 등에 밤샘주차하고 있으며 대부분 화물운전자들은 같은 실정”이라고 전했다.

한 구청 관계자는 기자가 단속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자 “불법주차 화물차에 대해 월 2~3회 단속을 펼쳐 평균 20~50대의 차량을 적발해 내고 있다”며 “그렇지만 전국을 누비는 화물차의 특성과 화물 공영주차장의 부재로 불법 주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경찰들은 사법처리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노숙 차량에 의한 사고는 발생이 흔치 않은데다 사고처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경찰 한 관계자는 “만일 사고가 나도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유발하기 위한 고의성을 가지고 사고 장소에 주차를 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지대 주차와 사고 간 통상적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또 현행법상 행정벌(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적 성격의 과징금이나 범칙금(도로교통법상 주차위반) 부과가 전부여서 형사처벌도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얘기했다.

사고처리 명확한 기준 없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추돌사고 등을 우려하기 때문에 황색 또는 흰색 사건으로 표시된 안전지대는 현행 도로교통법상 긴급상황, 예컨대 고장이나 급한 용변 등의 상황이 아니라면 긴 시간 주차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며 “하지만 일부 트럭운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밤샘 주차허가증을 받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노숙차량 사고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적용을 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재발 방지를 위한 관련법 정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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