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알려지자, 박근혜정부에 불만을 품고 10월26일 이화여대·부산대·건국대·한성대를 시작으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매일 수십 개 대학이 동참해 12월6일까지 160여개 대학 수천명의 교수·연구자가 동참했다.
이후 2016년 12월9일 국회 재적 300명 중 234명이 찬성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결국 박 대통령은 이듬해 3월10일 탄핵이 인용되면서 파면됐다.
8년 후인 2024년 명태균 게이트가 터지고 윤석열정부가 실정에 대한 반성 의지도 보이지 않자, 교수들은 10월28일(가천대)에 이어 12월2일까지 80여개 대학이 잇따라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서명한 교수·연구자도 4000여명에 달했다.
시국선언 후 12월14일 국회 재적 300명 중 204명이 찬성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111일 만인 지난 4일, 탄핵이 인용되면서 파면당했다.
박 전 대통령과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은 8년 간격이 있으나 주기는 비슷하다. 탄핵소추안이 각각 12월9일과 12월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탄핵 인용도 각각 3월10일과 4월4일 선고됐다. 거기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직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각각 10월26일과 10월28일 시작됐고, 전국 대학교수 수천명이 약 40여일 동안 시국선언을 했다는 것까지 비슷하다.
필자는 지난해 12월2일 <일요시사>에 ‘교수가 뿔났다’라는 제목의 ‘시사칼럼’을 통해 지난 2016년 12월 교수들의 시국선언과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관계를 언급하면서 “윤 대통령이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다음날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정부의 실정과 부패로 인해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문을 탐구하는 학자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절박한 외침이다. 그래서 그 본질은 단순한 정권교체 차원을 넘어 사회를 바로 세우는 데 있다.
그런데 시국선언 대상인 정부나 대통령은 이를 교수들의 정치 간섭 정도로 보고 간과했다. 탄핵당한 두 대통령도 우리나라 최고의 집단지성 교수들의 절규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대통령이 됐다.
교수들의 시국선언만큼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교수들이 매년 12월 초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다.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행위가 아니어서 시국선언보다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국선언 바로 뒤에 오는 사자성어는 교수들이 정부에 주는 마지막 옐로카드로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시국선언을 마친 교수들은 11월25일부터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발동 전날인 12월2일까지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12월9일 사자성어 도량발호(跳梁跋扈)를 발표했다.
비상계엄이 12월3일이었으니 사자성어는 6일 뒤 발표된 셈이다.
도량발호는 ‘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행동이 만연하다’는 의미로, “권력자는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데 권력을 선용해야 함에도, 사적으로 남용하면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모 교수는 “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요건에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민의 일상과 안녕을 위협에 빠뜨리고 국가의 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점이 도량발호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윤 전 대통령이 12월7일 탄핵소추안 1차 표결이 무산된 이후 재표결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2월14일 사이인 12월9일 발표된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만 제대로 받아들였다면 대국민담화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밀약을 해서라도 12월14일 탄핵소추안 가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고의 집단지성 교수들의 메시지를 읽지 못했고, 결국 두 번째로 파면당하는 대통령이 됐다.
박 전 대통령도 2016년 12월에 발표된 교수들의 마지막 메시지인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그도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피하지 못했다.
군주민수는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를 풀이하면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린다’는 견리망의(見利忘義)만 제대로 기억했어도 중도 하야까진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대통령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깨닫지 못한 게 화를 부른 것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은 교수들이 매년 12월 발표하는 사자성어와 위기 때마다 외치는 시국선언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교수들이 광장에 나와 외치는 정당이나 시민단체나 사회단체는 아니지만, 교수들의 외침은 가장 본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전국 대학 수천명의 교수가 일관되게 외치는 시국선언을 의미한다. 정치적 성향의 교수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치는 산발적인 시국선언을 의미하지 않는다.
향후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최고의 집단지성 교수들의 시국선언과 사자성어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