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재보선 불출마’ 비하인드 스토리

2018.04.30 10:59:55 호수 1164호

금배지보다 당권?…‘반홍계 수장’ 노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돌아온 국무총리’ 이완구 전 총리가 전략적 후퇴를 했다. 지난 23일 국회 정론관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그동안 소문으로 무성했던 천안지역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출마를 점쳐왔던 여의도 정치권은 이 전 총리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에 의아하다는 반응. <일요시사>는 이 전 총리 불출마 선언의 이면을 취재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우리 당 최고지도부로부터 6‧13지방선거에 대한 말씀과 제안을 받은 바 없다.” 기자회견을 하던 중 이 전 총리는 내심 당 지도부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때 정치권에선 이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으나 당은 이인제 전 의원을 충남도지사 후보로 낙점했다. 이후 이 전 총리는 충남 천안갑, 천안병 두 지역 중 한 곳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돌연 불출마를 선언, 백의종군을 선택했다.

돌연 불출마
갑자기 왜?

국회 복귀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 연루 의혹으로 여의도를 떠난 지 3년 만이다. 50여분 동안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서 이 전 총리는 재보선 불출마부터 성완종 리스트 관련 검찰 수사, 이를 보도한 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 두 진영에 대한 충고, 차기 당권에 대한 포석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기자회견 내용 중 가장 주목을 끌었던 사안은 이 전 총리의 재보선 출마 여부였다. 이 전 총리는 “이 문제(천안 지역 재보선 출마)에 대해 나의 불필요한 말이 지방선거를 앞둔 당 입장서 혼선과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며 “나는 이번 충남 천안 재보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당초 천안갑에 출마할 계획이었다. 앞서 한국당 박찬우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이다. 한 측근은 “이 전 총리가 그곳(천안갑)서 정치생활의 마무리하려 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추락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향서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명예회복 위해 점쳐졌던 재보선 출마
‘백의종군’ 선언 배경 놓고 추측 분분

그러나 당은 길환영 전 KBS 사장을 해당 지역 후보로 사실상 확정했다. ‘언론탄압 및 방송장악의 피해자’라는 프레임으로 문재인정부에 공세를 펼치기 위함이었다. 한국당은 지난달 길 전 사장과 배현진 전 MBC 앵커를 영입했다.

홍준표 대표는 당시 영입 기자회견서 “언론계 두 분(길환영, 배현진)을 모신 배경은 문정부의 방송 탈취 정책에 대해 국민적 심판을 한번 받아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이 전 총리 측은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의원의 충남도지사 출마로 공석이 된 천안병에 출마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더욱이 당 지도부가 이 전 총리 출마와 관련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고민은 깊어졌다.
 

앞서 불출마 기자회견서 이 전 총리는 당 지도부로부터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을 전제한 뒤 “나에 대한 (출마)건의서가 올라간 건 언론을 통해 봤지만 단 한 번도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자회견 자처
불편한 심기 비쳐

이 전 총리 측도 “총리급 되는 인사 정도라면 당 지도부서 정중히 요청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이 전 총리께서 천안병에 출마할 의사가 있으면 교통정리를 해주겠다 정도만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마지막까지 천안병 출마를 놓고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례로 지난 20일 이 전 총리 측은 28일 완사모(이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충남 홍성군 홍북읍에 위치한 용봉산 산행을 하는데, 이 전 총리가 참석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며 해당 산행은 출정식의 성격이 짙다고 귀띔했었다. 

불출마 선언이 있은 후 이 전 총리는 용봉산 산행 참석 대신 천안서 출발하는 완사모 회원들에게 인사하는 쪽으로 기존 산행 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3일, 아침 한국당 지도부는 이 전 총리의 기자회견을 예의주시했다. 측근들은 이 전 총리에게 “천안병에 출마하면 교통정리를 해주겠다고 한다”는 당 지도부의 의사를 다시 한 번 이 전 총리에게 전했다. 


당 지도부는 이 전 총리 측에 연락해 기자회견 내용 파악에 나섰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측근들에게조차 비밀로 한 채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회견문도 이 전 총리가 직접 작성했다는 후문이다.

천안갑→천안병→당권, 전략적 후퇴
급박했던 3일, 측근들도 몰랐다

이 전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당권 도전을 시사했다. 기자회견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당권 도전 등) 구체적 직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충청 도시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움직여 어떤 역할도 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행보로 지방선거서 전국을 다니며 후보 지원유세를 한다는 계획이다.

지방선거 후 새로운 리더십을 언급, 당권 도전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이 전 총리는 “(홍준표 대표는)우리 당 얼굴로, 언행을 무겁게 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리더십 창출 문제는 지방선거 후에 해도 늦지 않고, 자연스럽게(새 리더십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예고했다.
 

한 측근은 “현재로선 이 전 총리가 당권에 도전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알렸다. 한국당 안팎에서는 조기 전당대회를 점치는 목소리가 높아 지방선거 직후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전 총리가 당권에 도전하면 반홍계가 그를 중심으로 뭉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최근 한국당은 일련의 인사 영입 실패와 공천 내홍으로 반홍(반 홍준표)계 중진들의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지난달 말 이주영·정우택·나경원·유기준 의원 등 반홍계 중진들은 당의 잇따른 인물난에 대해 “천하의 인재를 못 구하면 본인이 스스로 나갈 수 있다는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며 홍 대표를 압박한 바 있다.

당 내홍 수습
반홍계 수장

공천을 둘러싼 친홍계-반홍계 내홍은 당이 지방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면 아래로 잠시 내려간 분위기다. 홍 대표는 최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서 4선 이상 의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반홍계 중진들에게 했던 과거 발언을 사과하고 지방선거서 단합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선거의 구도는 한국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국당이 이번 지방선거서 패배를 넘어 당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의 참패를 할 것이란 예상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잠시 수면 아래로 잠든 반홍계의 불만은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표출될 공산이 크다. 그 중심에 이 전 총리가 ‘태풍의 눈’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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