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박근혜 위기론’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돌파구 없는 퇴로에 갇힌 곤란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차기 대권 주자의 자리마저 위태롭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수정안 논란 속에 갇혀 차기 대권주자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고집불통의 보스 정치가로써의 면모만 보인다는 것. 설상가상 친이계는 6·2지방선건 공천을 앞두고 ‘친박계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퇴로 없는 대권 가도에서 이제는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선택할 돌파구는 과연 뭘까.
TK 민심 한나라에서 박근혜로 중심 이동 가속화
침묵 박근혜, 타협·돌파 마지막 승부수 장전
최근 관망 자세로 들어간 박근혜 전 대표는 깊은 고심에 빠져있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으로부터 불거져 나온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닌 데다 최고 권력자인 MB와 그의 수족들인 친이계가 박 전 대표의 심장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또 그새 친박계에서 이탈자마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 공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상황이라는 것.
이런 가운데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당의 전통적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 민심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이른바 TK로 불리는 이 지역은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여당의 텃밭인 TK에서 세종시 역차별 문제가 제기되고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의 막말 파문으로 탈 여당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탈 MB화 바람이다.
박근혜의 희망
TK 탈MB 바람
사실 대구·경북 지역은 현재 미래성장 동력으로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비롯해, 경제자유구역과 혁신도시, 국가산업단지 조성 등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었지만 세종시 수정안이 나오면서 이들 사업은 당장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이들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기업유치가 최대 관건이지만, 정부가 세종시 입주기업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줘 대구·경북으로 오려던 기업들이 대거 세종시로 발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TK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업용지가 없어서 기업유치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세종시 불똥으로 오히려 산업용지가 남아도는 상황이 됐다는 것. 아울러 대구·경북지역에서는 그동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것마저 세종시로 가게 되면서 TK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정가에서는 이것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 있다. TK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면서 ‘세종시 역차별론’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조홍석 헌법학회장(경북대 교수)은 “대구경북출신 대통령에 대한 큰 기대가 실망으로 나타났다”며 “대구경북의 경제는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으며, 감히 희망이 없는 지역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이 대구경북을 지칭해 막말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TK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있다. <경북일보>는 지난 1일 “지난달 28일 이 수석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TK(대구·경북) X들, 정말 문제 많다. 이건 기사로 써도 좋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구·경북 언론에 대해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수석이 “대구·경북지역이 역차별 운운하며 다른 지역보다 (이 대통령의 정책에) 더 반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이 대통령이 대구·경북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 데 그렇게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첨단의료복합단지 같은 경우도 이 대통령이 챙겨주지 않았으면 선정되지 못했을 프로젝트”라며 “그런데도 고향인 대구·경북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2일 “이동관씨 혼자 그런 생각인지 다른 사람이 또 있는지 걱정이다. 스스로 신분을 망각한 것”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빨리 대통령 주변에서 물러나주는 게 맞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당 서상기 의원도 “사실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입 아니냐. 그래서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좀 언행에 신중해야하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며 “더더구나 그 내용을 보면 대구경북 지역에 뭘 주었는데 하는 이런 이야기 같은 것은 그건 정말 해서는 안 될 이야기”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TK, MB 영향력보다
박근혜 영향력 더 커
‘세종시 TK 역차별’과 ‘MB가신 이동관 막말’이 직접적인 요인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박근혜 영향권’하에 있는 TK민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된다. 보수의 핵심인 TK지역이 여당의 아성이지만 지금은 MB와 친이의 한나라당보다는 오히려 ‘박근혜 영향력’이 더 강하다는 것. TK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세종시 수정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TK에 뿌리를 둔 차기 대권주자 1위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5~28일부터 매일신문과 대구KBS가 대구경북 지역민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정치 활동에 대해 대구시민은 ‘잘 하고 있다’ 67.2%, ‘잘 못하고 있다’ 28.0%로 평가했다. 경북도민들은 ‘잘 하고 있다’ 67.5%, ‘잘 못하고 있다’ 24.1%로 평가했다. 또 세종시에 대해서도 대구시민은 ‘원안 찬성’ 49.3%, ‘수정안 찬성’ 38.7%로 원안 지지가 월등히 높았고, 경북도민은 ‘원안 찬성’ 39.3%, ‘수정안 찬성’ 38.1%로 역시 원안 지지가 높게 나타났다.
이 가운데 지난 2월말까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던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1주일 만에 30%대를 다시 회복했다. 9일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월 첫 주 주간 정례조사 결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5%p 오른 34.7%로, 다시 30%대를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 통합 29.7%까지 떨어진 박 전 대표는 지난 주초(3월2일) 30.7%를 기록해 전주에 비해 소폭 오른 지지율로 출발했으며, 주 후반 들어 30%대에 안착한 것. 특히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원안에 반대 성향을 나타냈던 서울(▲8.1%p)과 인천·경기(▲6.5%p) 부산·경남(▲12.9%p) 지역에서 특히 높은 회복세를 보였다.
반면,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가 전주 대비 1.8%p 하락한 42.2%로 나타났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44%를 기록했으며, MB의 지지율은 서울(50.5%), 인천/경기(45.9%), 부산/경남/울산(44%) 순으로 조사됐다.
이는 세종시 공방으로 이탈했던 보수 지지층이 다시 박 전 대표에게 돌아온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즉 ‘세종시 피로감’으로 인해 연일 하락했던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세종시 정국의 소강국면과 ‘이동관 파문’으로 반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TK지역이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6·2지방선거를 앞둔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에 들어갔다. 10일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완료, 6·2지방선거체제로 본격 전환한 것. 이날 공심위 구성은 정병국 사무총장(위원장), 차명진, 장제원, 안효대, 배은희 의원, 한대수 제2사무부총장 등 친이계 6명, 안홍준, 유정복, 김선동, 조원진 의원 등 친박계 4명, 남경필, 조윤선 의원 등 중립 2명, 곽진영, 이연주, 진영재 등 외부인사 3명 등이 참여하게 됐다. 기존 공심위 구성안과 비교할 때 친박계는 3명에서 4명으로 늘었고, 대신 중립그룹이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본격적인 지방선거체제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 전 대표를 ‘선거의 여왕’으로 일컫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친박계의 힘이기도 하다. 지난 4년 전 5·31 지방선거에서 박 전 대표는 “대전은요”라는 한 마디로 20% 이상 뒤쳐져있던 대전광역시장 선거를 뒤집어 한나라당이 승리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박 전 대표의 활약은 엄청났다. 48대0이란 신화는 박 전 대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박 전 대표는 2006년 ‘당심’을 잡아 5.31 지방선거를 직접 진두지휘를 했고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 서울 25개 구청장을 싹쓸이했으며, 기초단체장 230곳 중 155곳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도 박풍의 위력은 상당했다. 박 전 대표는 그야말로 칩거전략을 사용했다. 선거 기간 내내 집밖에 나서지 않았지만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살아서 돌아오라(김무성 의원에게)”라는 유명한 말로 선거판을 휘어잡았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지방선거도 ‘태풍의 눈’
이 말 한 마디에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 후보들이 대거 금배지를 달게 되었고, 이후 친박연대 비례대표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나라당으로 복당을 해, 친박계의 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선거전문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박 전 대표의 위력이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며 “이른바 지난 총선에서 ‘친박 죽이기’에 표심은 약자인 박 전 대표측에 표를 몰아주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친박 공천학살’이 일어났다면 동정표가 쏠릴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미래희망연대’를 비롯한 공천에서 배제된 친박계 후보들이 당선되면, 공천 학살의 명분을 가지고 박 전 대표는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것이 바로 여권발 정계개편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때문에 정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 친박계 인사들을 위한 유세에 나올 것이냐 아니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결국 ‘세종시 전쟁’에서 박 전 대표의 히든카드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MB·친이계는 한 목소리로 ‘무능력하고 비리 부패한 후보는 안 된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 대통령은 9일 “집권 3년차에 토착비리와 교육비리, 권력형 비리 이 세 가지 비리에 대해 엄격히 그리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면서 “(비리 색출은) 한두 번에 그칠 일이 아니다. 일단 1차로 연말까지 각종 비리를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MB의 이 같은 발언의 핵심은 바로 지방선거 공천의 기준점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는 깊은 침묵에 들어갔다. 이에 친박계는 박 전 대표의 묵언에 대해 “지금은 박 전 대표가 나서 특별히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세종시 중진협의체가 본격 활동에 돌입한 상황이고, 외견상 중재 국면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울러 친박계 이경재·서병수 의원이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박 전 대표로선 전면에 나서서 체력을 소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심은 박 전 대표의 침묵이 종료되는 시점으로 지방선거 공천 확정과 세종시 여론 추이가 끝나는 시점이라는 것. 이와 관련해 한 친박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현재 박 전 대표에게는 결단의 순간이 남아있다. ‘카타르시스’라는 말이 있지 않나, 박 전 대표는 세종시로 국민들에게 약속과 신뢰를 주는 정치 지도자로 ‘한다면 하는’ 지도자로 인식됐다”며 “막판까지 자신의 소신을 주장하면서 MB와의 담판을 통해 협상을 하느냐 아니면 계속 고집하느냐가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협상력을 보여줘 타협과 대화의 이미지를 심을지, 아니면 끝까지 원칙을 고수할지는 박 전 대표만이 안다”며 “어찌됐든 박 전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하든 친박계는 주군을 따를 것이다. 사실 친박계 내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신당 창당과 영호남 대연합 등의 여러 카드에 대해 고려하고 있으며,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가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친박계는 MB·친이계의 ‘박근혜 죽이기’에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수 없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즉, 현재는 수세에 몰렸으나 다시 반격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지방선거 공천을 두고 친이·친박의 치열한 두뇌게임이 계속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