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당 서두르는 정동영…시기는 연내 최후통첩
막후엔 정세균·정동영 지방선거 공천권 싸움
민주당의 곪은 상처가 터졌다. 정동영 의원의 복당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 지난 4월 재보선 출마를 두고 도화선에 불이 붙은 후 8개월여 만이다. 그동안 ‘복당’은 논란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의원이 ‘복당보다 급한 것’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안으로 삼켜냈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정 의원이 복당 시점을 못박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여당과의 ‘급한 일’을 이유로 시기를 미루자는 분위기다. 하지만 ‘조용하지만 강력한’ 주장은 당 안팎에서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몰아치려 하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 정동영 의원의 복당 논의가 한창이다. 수면 아래에서 맴돌던 정 의원의 복당 논란을 점화한 것은 정 의원 자신이다.
그는 지난 4월 재보선에 출마하며 민주당 복당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당 사정을 이유로 복당신청서 제출을 미뤄왔다. 주변에는 “정치 현장에 서게 된 이유를 말이 아닌 몸으로 설명하고 싶어 묵묵히 할 일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조만간 때가 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는 말로 복당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복당을 입 밖에 내 당 안팎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최근 정 의원은 복당을 서두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과의 개별적인 만남 외에도 지난달 24일 민주당의 비주류연합체인 민주연대 정기조찬회의에 참석하는 등 비주류와의 소통을 통해 복당 시점을 바짝 앞당기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지부진 복당 논의
안팎 압박으로 ‘성큼’
지난달 28일에는 신건·유성엽 등 ‘호남 무소속 연대’와 단합대회를 가졌다. 새만금 및 부안 내소사 방문으로 진행된 단합대회에는 1000여 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했다.
탈당 후 ‘정치세력화’라는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는 행보는 철저히 배제했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를 두고 정가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의원의 신당창당설 등 독자세력화에 대한 설을 ‘실제화’할 수 있다는 뜻을 은연중 내비쳤다는 것.
급기야 지난 10일에는 복당 시점을 못박았다. 정 의원은 “연내에 복당 문제를 매듭지었으면 좋겠다”면서 “이제 내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복당 의지는 이미 확고했다.
정 의원은 “백지장이라도 맞들면 낫다고, 정세균 대표 등 의원직을 사퇴한 분들도 (원내로) 들어오고, 밖에 있는 무소속들도 합치면 한나라당과의 전선에서 싸우는 데 힘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복당이 일단 수면 위로 부상하자 자의 반 타의 반 가속도가 붙고 있다. 정 의원과 호남 무소속 의원들은 연내 복당 문제를 매듭짓기로 의견을 모으고 민주당에 공식적으로 복당을 촉구할 시기와 방법을 저울질하고 있다. 당초 지난 15일 복당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으나 국회 상황을 고려해 잠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지역 의원들도 회동해 정 의원의 복당 문제를 논의하며, 당내 4선 이상 중진들도 회동을 갖고 복당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는 계획이다.
송영길 최고위원을 비롯해 비주류 초·재선 그룹인 ‘국민모임’도 22일 ‘민주당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회를 통해 정 의원의 복당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복당 뒤 숨은 공천전쟁
지방선거 힘겨루기 시작됐다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내 복당 문제로 당내 분란거리를 만들 의도는 추호도 없으며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정 의원의 기본적인 의지는 변함이 없다. 그럼 정 의원의 복당이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은 여섯 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들고 있다. 본격적인 공천은 내년 2~3월경에야 있을 예정이지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미 지자체장 후보가 거론되고 출마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방선거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내 사람’을 당선시키느냐가 7월에 있을 차기 당권은 물론 대권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문에 ‘판을 다 짠 후 들어오라’는 당 지도부의 복당 시나리오가 정 의원에게는 탐탁치 않은 제안일 수밖에 없다.
정 대표가 호남 공천을 서두르는 것이 정 의원의 복당 논란을 부추겼다. 정 대표는 지난 2일 전주지역을 찾아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광역 및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 시기와 관련, “민주당 강세지역인 호남을 먼저 하고 수도권은 여당 후보를 보고 나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호남지역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은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기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일부에서 제기되는 전략공천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니냐”고 말했다.
호남정가에 이른바 ‘개혁공천’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불안 섞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주류에 속한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 사이에서는 “개혁공천을 이유로 지방선거 문턱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호남은 본선보다는 예선이 치열한 곳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정 의원의 우산 아래로 모여드는 출마 희망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의 복당이 이뤄지지 않으면 신당을 꾸리고 호남을 접수하는 방안도 암암리에 거론되고 있다.
한 정치분석가는 “민주당이 공천에서 정 의원을 배제하고 갈 수는 없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해 신건 의원까지 당선시킨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호남에 퍼져 있는 상황을 짚었다.
그는 정 의원과 가까운 민주당 인사 중 일부가 광주광역시장, 전남·전북지사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지금부터 서서히 공천문제를 조율하지 않으면 큰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천에서 갈등이 불거지면 출마 희망자들의 민주당 탈퇴와 무소속 연대 결성 등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독자세력화’는 정 의원에게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민주당 대표로 대권에 나서면서 ‘전국구’가 됐는데 정치를 재개한 4월 재보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까지 호남에 발목이 묶인다면 ‘지역의 맹주’ 그 이상을 노리기 힘들게 된다는 것.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결국 민주진영을 품에 안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지방선거에서 편을 가르고 또다시 민주당과 충돌하게 된다면 대권 도전에 상처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당내 일각에서는 “한 번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복당을 둘러싼 당 안팎의 논란이라면 지금이 적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 대표가 정 의원의 복당을 늦추는 데는 ‘통합의 시너지 효과’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 대표는 정 의원의 복당에 대해 “도내 무소속 의원들이 복당을 하고 싶으면 당에 복당신청을 한 뒤 당헌·당규에 따라 절차를 밟으면 된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절차를 밟았을 경우 당사자들의 명예에 손상이 갈 뿐만 아니라 당에도 좋을 것이 없는 만큼 앞으로 통합과정에서 합류하면 이런 절차가 면제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복당 명분은 ‘통합’
시너지 효과 누가 클까
그가 추진하고 있는 ‘민주진영 연합’을 정 의원과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 진영의 복당으로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방선거 직전이 유력하다.
정 대표는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 의원의 복당과 관련한 압박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는 “정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고도 나는 심하게 비판한 적이 없고 오히려 점잖게 있었다. 그가 당의 지도자였기 때문으로 도리어 이 같은 부분을 모두 감수하고 있다”면서 “내가 왜 전주 덕진지역위원장을 임명하지 않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런 점을 모르고 음해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어 “일에는 순리가 있고 절차가 있는 만큼 이런 사실을 뒤로한 채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통합을 위해서는 지금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통 크게’ 뭉쳐서 함께 싸워야지 복당 시기를 가늠할 정도로 야당이 처한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당 한 관계자는 “통합에 대한 말이 나온 지 한참이지만 통합이 얼마나 진행됐냐”면서 “‘선당후사’라고 하는데 진정한 ‘선당’을 생각한다면 모두 받아들이고 내부에서 녹여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도 통합 논의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10월 재보선 전후로 통합에 대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정 의원은 “정당은 집권하기 위해 존재한다. 집권하려면 민심을 얻어야 한다. 민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민심은 ‘하나가 돼라, 통합하라’하는 그런 주문을 하고 있다. 물고기는 물이 많아야 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고 그간 묵묵히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통합 논의가 몇 개월간 말만 나왔을 뿐 실체를 갖추지 못했다”면서 “통합작업에 구심력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원심력이 작동하고 있다. 이제부터 내가 나서 통합을 향한 역할을 하겠다. 많은 분을 만나겠다. 통합을 바탕으로 민심의 지지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