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현대판 ‘마패’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에선 부정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배지의 부정적 그림자가 엿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복제나 도용 가능성 등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물론 검찰은 업무 외 시간이나 업무 외의 일로 사용할 경우엔 검찰 예규에 따라 징계를 하도록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중론. 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현장수사 적은 검찰 61년만에 배지제작 “이해 안돼”
오·남용 복제에 노출…무소불위 권력 상징 우려도
“권력기관의 대표격인 검찰에서 수사검사와 수사관용 배지를 만들었다. 물론 취지는 좋다. 국민이 업무수행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무소불위 상징 마패처럼 특권의식의 발로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검찰 배지에 대한 한 사정기관 관계자의 얘기다. 그는 이번 검찰의 배지 제작은 권력 남용 우려와 복제·도용 가능성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권의식의 발로?
실제 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신모(33·회사원)씨는 “교통 단속에 걸리는 등 면피가 필요할 때나 사용할 것 같다”며 “국회의원 금배지가 국민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듯 검찰배지도 언젠가는 권력 남용의 수단으로만 사용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송모(42·공무원)씨는 “조선시대 어사들이 일부러 마패를 노출시켜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것처럼 검찰배지도 그렇게 사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검찰은 현재 이에 대한 방지책으로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다 적발되면 대검 예규에 따라 제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예컨대 검찰배지는 압수수색·체포·조사 같은 공무 수행 때에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또 수사 업무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직원들에겐 배지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과 달리 제복이 없어 신분을 드러내 줄 상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배지를 제작했다.
검찰 공무원에게는 사명감을, 국민에게는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배지는 수사와 형 집행을 하는 검사와 수사관들만 달 수 있으며 수사 분야에서 다른 보직으로 옮기면 반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간에선 엄정한 관리가 쉽지 않다는 면에서 검찰의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종로구 한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8)씨는 “전국 검사와 수사관 중 4500여 명에게만 지급됐다고 하는데 위화감이 일어나지 않을지 의문”이라면서 “또 일련번호가 있어 검찰청 대표전화로 연락할 경우 배지 착용자가 실제 검찰직원인지 여부와 소속 기관, 부서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현장에선 바로 확인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판 마패’로 받아들이는 국민들도 많다. 조선시대 마패가 백성들에게 아무것이나 할 수 있는 허가증이란 인상을 준 것처럼 검찰배지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만일 마패로 오·남용된다면 검찰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배지는 신분을 드러내기 때문에 배지를 다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보는 사람에게는 배지가 지닌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며 “검찰이 언제 배지가 없어 수사를 못했냐, 이는 특권의식에서 출발한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간단하다. 검찰은 압수수색이나 체포를 나갈 때 법원영장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굳이 검찰임을 알려주는 배지가 필요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검찰배지를 만든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검찰은 국민들이 검찰의 수사를 쉽게 인식할 필요에 의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필요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서울 서초구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문모(37·변호사)씨는 “검찰직원임을 식별할 수 있는 공무원 신분증이 따로 있음에도 따로 배지까지 만든 진정한 이유가 궁금하다”며 “복제나 도용 가능성 등 그 부작용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물론 검찰도 복제와 도용 가능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검찰이 배지 디자인을 상표법상 업무표장으로 등록해 위·변조사범에 대해 공기호 위조·행사 외에 상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엄벌할 계획을 밝힌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럼에도 불신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검찰 배지에는 말 대신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의 방패 문양을 새겼다니 그 뜻을 얼마나 살려갈지 지켜볼 일”이라며 “조만간 이 배지를 이용한 범죄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뿐만 아니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선 ‘수사 패러다임 변화’를 내건 검찰이 내실을 다지기보다 형식에 집착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들린다.
내실보단 형식에 집착?
검찰은 배지제작과 관련해 경찰과 달리 검찰은 제복이 없어 신분을 드러내줄 상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는데 이 설명이 형식에 집착하는 하나의 단면이라는 것. 또한 특권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고.
일선 경찰 한 관계자는 “경찰이나 검찰이나 제복 또는 배지가 없어서 수사를 하지 못한 적이 없다”며 “특히 경찰과는 달리 시위 진압이나 강·절도범 체포 등 현장에 나설 일이 거의 없는 검찰이 설립 61년 동안 없었던 배지를 왜 지금 달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씁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