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오해’에 고개 절래, 끊이지 않는 구설수
형님, 측근 갖은 의혹에 발걸음 옮겨 바깥바람?
형님의 외출이 잦다. 2선 후퇴 후 걸음 한걸음, 말 한마디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그지만 외국으로 나서면 그 위상이 딴판이다. 활발하게 자원외교를 펼치거나 각 국과의 인연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측면지원하고 있다. 실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첫 공식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한데도 이 의원의 공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의원이 외국 방문길에 오르는데 대해 정치권은 그가 현실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의원의 행보와 끊이지 않는 구설수 등을 이유로 그 복잡한 속내를 가늠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국제무대에서 포복을 넓히고 있다. 한 때 ‘만사형통’ ‘상왕’ ‘영일대군’으로 불리며 권력의 중심에 섰던 그지만 지난 6월 “정치 현안과 당무엔 관여하지 않겠다”며 2선 후퇴를 선언한 후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2선 후퇴 후 지역구 활동에 전념했던 이 의원이 외국 방문길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8월 대통령 경제협력특사 자격으로 ‘자원외교 사절단’을 이끌면서 부터다. 이 의원은 현 정부가 들어선 후 두 번째로 이 대통령의 특사가 돼 페루·볼리비아·브라질 등 남미 3개국을 방문했다.
8월8일부터 18일까지의 일정에서 이 의원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을 만나 한국석유공사가 인수한 페루의 민간 석유기업 페트로텍 운영, SK에너지의 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의 안정적인 가스 공급, 한국광물자원공사의 마르코나 동광 사업 추진 등에 대한 페루 정부의 협조를 요청한 것.
국제무대 돌아다니며
자원외교, 특사정치 활발
가르시아 대통령은 한국 기업이 페루에서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은 “액화천연가스 사업이 잘 진행되도록 돕겠다”는 가르시아 대통령의 답변 덕에 당시 동행했던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으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또한 볼리비아 방문에서는 리튬광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남미 3개국을 돌아보고 숨을 고르기도 전에 같은 달 2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한중지도자포럼 한국측 단장 자격으로 중국 베이징과 쓰촨성을 방문, 중국 주요 인사들을 면담했다.
지난 9월19일엔 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일본에서 열린 ‘한일 축제 한마당 2009 인(in) 도쿄’에 참석,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을 만나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조기 방한을 요청했다.
당시 오자와 간사장은 한국 의원단 중 이 의원만 만나길 원했으며 이 의원은 이를 위해 다른 의원들보다 이른 시간에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후문이다.
오자와 간사장을 만난 이 의원은 “한국 국민은 하토야마 정부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가 다음 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한국을 먼저 공식 방문해 주면 좋겠다”면서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이후 첫 번째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하면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한국 국민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이 대통령은 일본을 욕한 적이 없다. 우린 하토야마 총리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무라야마 담화’(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발표한 것으로,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내용)를 계승한다고 말한 것을 평가한다. 앞으로 서로 쩨쩨하게 굴지 말자. 감정이 상한 일이 생기더라도 양국 대사를 소환하는 등의 요란을 떨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자”고 했다.
이날로 이 의원과 다섯 번째 만난 오자와 간사장은 “정말 잘해보자”고 했고 하토야마 총리의 방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하토야마 총리는 취임 후 첫 번째 공식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10월에는 지난 7월 실시된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키 위해 18일 출국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 특사 자격이었으며 한나라당 황영철 배은희 의원이 동행했다.
이들은 3박4일 일정동안 의원외교와 특사정치를 펼쳤다. 이 의원은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의 취임식에 축하 사절로 참석하고 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을 뿐 아니라 자카르타 국회의사당을 방문, 인도네시아 의회 상원격인 국민협의회의 이르만 구스만 지역대표의회 의장과 또픽 끼에마스 의장을 차례로 면담해 양국 관계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 의원은 인도네시아에 대해 “경제인으로 일할 때 자주 방문한 국가여서 친근하게 느껴지고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인도네시아는 자원부국이고 훌륭한 지도자가 많아 국가경제가 고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어 이 대통령이 지난 3월 천명한 ‘신 아시아 외교’에 대해 설명하고 “특히 인도네시아와 특별한 관계 구축이 필요하며 양국이 협력해 함께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르만 구스만 의장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발전상을 보고 놀랐다”며 “한-인도네시아 관계가 지금보다 더욱 돈독해 지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이 의원 측은 이번 방문에 대해 “이 대통령이 유도유노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 때문에 취임식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차 20일부터 베트남 등을 순방하는 일정 때문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친형인 이 의원을 대통령 특사로 보내 최대한의 예우를 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1일 귀국 후 24일 8월 볼리비아 방문 때 체결한 리튬광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 양해각서의 후속조치를 위해 볼리비아를 방문했다.
쉴 새 없이 여권 도장 ‘쾅’
국회서도 자원외교
이 의원은 밖에서 뿐 아니라 안에서도 자원외교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지난달 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감에서 남미 3개국 방문 사실을 언급한 뒤 “석유나 광업은 개별기업이 각각 활동하고 있지만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라늄과 리튬, 석유는 국가적 차원에서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선 정부가 총괄 지원해야 도움이 된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휘탑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 의원이 한달에 한차례 이상 외국 방문길에 오르고 있는데 대해 정치권은 이 의원이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에 녹아있는 의중이 그러하거니와 거듭된 정치적 논란으로 동생인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행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와는 다른 해석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의원과 정치권을 따로 떨어뜨려 놓기에는 그와 관련한 수많은 구설수가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 호사가들 중 몇몇은 이 의원의 해외 방문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의원이 청와대에 압박을 받으며 지내다가 간간히 바람을 쐬러 나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이 끊이지 않는 부패 의혹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번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논란이 된 청와대의 ‘IPTV협회’ 기금모금 외압 논란과 관련, 이 의원의 수행비서로 일했던 이모씨가 코디마에서 차장급 직원으로 일하는 등 이명박 정부 집권 후 수많은 요직에 이 의원과 가까운 이들이 가 있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곤 했다.
곳곳에 있는 형님 그림자
어둔 구석 이룰까 노심초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이들이 각종 사건에 휘말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지난 20일 국회 재정위의 대구국세청 국감에서 제기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 골프 로비’도 그중 하나다.
한 전 청장과 채경수 현 서울국세청장, 이광우 과장(현재 국무총리실 파견), 손승락 현 경제세무서장, 김종국 현 서울국세청 조사2국 과장 등이 이 의원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강석호 한나라당 의원, 포항 상공회의소 회장 최모씨, 중소기업 대구경북연합 회장 김모씨와 경주컨트리클럽에서 라운딩을 하며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다.
국감에서 강성종 의원은 라운딩 이후 대구의 한 횟집에서 가진 저녁식사에 참석한 인물로 전 대구포항 향우회장 김모씨, 현 대구포항향우회장 원모씨,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씨, 이 대통령의 동서인 신모씨를 꼽았다.
이외에도 정가 안팎에서 이 의원과 측근들의 각종 비리에 대한 소문이 흉흉했다. 또한 정부, 청와대, 공기업 등의 인사에서 이 의원 등 측근 실세들의 입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정가 몇몇 인사들은 이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에 “청와대에서 형님을 압박했다”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던 이유를 측근 비리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전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친이계의 권력기반을 확보한 이재오 전 의원이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돌아와 ‘부패와의 전쟁’을 천명한 것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의원을 둘러싼 잡음이 많다는 것은 이 대통령에게 레임덕을 부추길 수 있는 요인인데다 역대 정권의 국정하반기 측근 비리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 대통령에게 레임덕이 찾아오면 이 같은 잡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일찌감치 고삐를 조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다 권력에 능숙한 이 의원이 더 위험한 대상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면서 이 의원의 외국 방문이 이 대통령을 위한 행보인지, 아닌지 면밀히 바라보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