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가 ‘형제의 난’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다. 지금까지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재반격 카드’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룹 안팎의 관측을 종합해 보면 금호가 형제의 동반 퇴진이 골육상쟁의 종지부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경영권 싸움은 지금부터란 얘기다. 핏줄간 잔혹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이들의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2·3차 대전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박삼구-박찬구 두 형제의 노림수와 승부수를 점쳐봤다.
동생 박찬구 회장 지주사 지분쌓기 ‘쿠데타’급습
형 박삼구 회장 동반 퇴진 ‘물귀신 작전’반격
박삼구-박찬구 형제가 처음 충돌한 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찬구 회장은 향후 자금난을 걱정해 인수를 반대했지만 박삼구 회장이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 회장의 예상대로 그룹은 대우건설을 삼킨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박삼구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불신의 싹이 자랐다.
대우건설 인수 놓고
2006년부터 불신 싹
형에게 불만을 품은 박찬구 회장은 돌연 그룹 경영권을 노린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들과 함께 그룹 지주사 격인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당초 10.01%에서 18.47%로 늘린 것. ‘10.01%’는 금호가 형제들이 동일하게 보유해온 이른바 ‘황금 지분율’이다. 뒤늦게 박삼구 회장 부자도 금호석유화학 지분(11.77%)을 사들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은 박삼구 회장이 결국 꺼낸 초강수가 ‘물귀신 작전’으로 비치는 ‘동반 퇴진’이다. 박삼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다른 친인척들의 지분을 동원해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을 박탈했다.
박삼구 회장은 지난달 28일 가진 퇴진 기자회견 내내 “동생이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해 그룹의 정상적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며 박찬구 회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더 이상 형제상속은 없다”고 말해 박찬구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다만 박삼구 회장은 자신의 경영 영향력과 복귀 가능성을 열어뒀다. 평소 막역한 사이인 전문경영인 박찬법 신임 회장을 그룹 수장으로 내세운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박찬법 신임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삼구 회장이 큰일에 있어 잘 도와준다고 약속했다”고 밝혀 오너-전문경영인 공존체제를 암시했다. 박삼구 회장이 비록 명예회장으로 있더라도 그룹을 쥐락펴락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박찬법 신임 회장이 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박삼구 명예회장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이행 관련 부분에 대해 책임지는 형태로 두 사람이 역할 분담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박삼구 회장은 오너체제 완전 폐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사태가 잠잠해지면 금호일가가 다시 경영일선에 나설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겼다.
두산그룹 일가가 2005년 형제간 분쟁으로 동반 퇴진했다가 사건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않은 틈을 타 안면을 싹 바꾸고 그룹 경영을 재장악한 사례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 회장이 물러난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기습 공격’을 당한 박찬구 회장이 팔짱만 끼고 있을이지 여부다. 박삼구 회장과 달리 경영 복귀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는 박찬구 회장이 재반격에 나설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박삼구 회장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양측 ‘재반격 카드’촉각
3세 내세운 대리전도 감지
우선 박찬구 회장이 들고 나올 법한 응수는 법적대응이다. 금호가 집안 전체와 싸워야 하는 박찬구 회장으로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만 금호석유화학 안팎에선 박찬구 회장이 형의 일방적인 대표이사 해임 결정에 반발해 법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이사회 의장인 박찬구 회장은 이번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잠적한 박찬구 회장이 유명 변호사들의 법률 자문을 구하고 있다는 미확인 소문도 들린다. 소송 시 금호석유화학 이사회 무효와 대표이사직 유지를 위한 가처분 등이 예상된다. 형제가 법정에서 만날 경우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장기화될 게 뻔하다.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이 타의에 의해 강제적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이사회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박찬구 회장의 결심에 따라 분쟁의 불씨가 커질 수도, 아니면 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은 다소 여유롭다. 박찬구 회장의 소송 가능성에 대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 회장 해임은) 나 혼자 결정한 사안이 아니다. 이사회 결의에 의해 이루어진 만큼 법적하자는 없다. 법과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이사회 결정사항이므로 (박찬구 회장이)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일축했다.
‘루비콘 강’건널까
법정다툼 비화 조짐
하지만 최후의 보루인 법적 다툼에 앞서 경영권 확보를 위한 치열한 지분 경쟁이 다시 벌어질 공산이 크다. 격전지는 실질적 지주사 노릇을 하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으로 압축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는 ‘금호석유화학→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수직 형태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의 최대주주로 19.03%의 지분을 갖고 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3.5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3개사가 4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금호석유화학만 지배하면 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박찬구 회장 부자가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린 것과 박삼구 회장이 박찬구 회장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오게 만든 것도 이런 이유 탓이다.
금호석유화학이 연매출 3조원대의 ‘알짜기업’이란 점도 금호가 형제들이 목을 매는 까닭이다. 1976년 설립된 금호석유화학은 2002년 매출 1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2007년 2조원, 지난해 3조원을 돌파했다.
금호가는 최근 금호석유화학과 양대 주력사인 금호산업의 지분을 잇달아 팔고 있어 본격적인 전쟁(?)을 앞두고 실탄을 마련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찬구 회장만 해도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기 위해 금호산업 지분을 모두 처분한 상태다. 이외의 쌈짓돈까지 털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추가 확대할 움직임도 감지된다. 그만큼 금호석유화학이 그룹 지배구조의 핵이란 반증이다.
금호석유화학의 지분 구조를 보면 지난달 말 현재 박찬구 회장(9.44%)과 그의 아들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9.03%)이 18.47%로 최대주주다. 반면 박삼구 회장(5.30%)과 그의 아들 박세창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6.47%)가 보유한 지분율은 11.76%다.
하지만 우호지분을 끌어들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박삼구 회장은 ‘아군’으로 꼽히는 둘째 형 고 박정구 명예회장의 아들 박철완 아시아나항공 부장(11.76%)의 지분을 합하면 23.52%를 확보하게 된다.
박삼구 회장은 동반 퇴진 발표 전 가족회의에서 박정구 명예회장의 가족들에게 ‘지원사격’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양쪽이 뜻을 모아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동일하게 10.01%에서 11.76%로 높인 점도 두 집안이 손을 잡은 결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박찬구 회장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호가 장남 고 박성용 명예회장의 아들 박재영씨의 선택이 불분명한 탓이다.
박재영씨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율은 4.65%다. 만약 박재영씨가 박찬구 회장 쪽으로 합류한다면 이들의 지분은 23.12%로, 23.52%인 박삼구 회장 측과 충분히 해볼 만한 게임이 된다.
게다가 박철완 부장까지 박찬구 회장으로 돌아설 경우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이렇게 되면 ‘박찬구 라인’은 34.88%이란 절대적인 우위에 설 수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을 장악하면 그룹 전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피 튀는 지분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박찬구 회장이 그룹 전체가 아닌 금호석유화학 계열만 분리해 소유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경영일선에서 퇴진한 신분인 박삼구-박찬구 형제가 직접 나서지 못한다면 각자 아들을 내세운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회장은 직접적인 대결 대신 아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공을 들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금호가 3세들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금호가 4형제는 모두 아들을 1명씩 두고 있는데 ‘금호 옥쇄’를 물려받을 차세대 주자로 가장 유력한 후보 역시 박삼구-박찬구 회장의 아들들이다.
사촌들보다 한 발 앞서 회사에 뛰어든 3세는 박삼구 회장의 외아들 박세창 상무다. 박세창 상무는 일찌감치 경영수업을 마치고 대내외 보폭을 넓히고 있다. 올해 35세인 박세창 상무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2005년 금호타이어 부장에 입사한 이래 2006년 그룹 상무보에서 지난해 상무로 올라서는 초고속 승진 페달을 밟아왔다.
사장단회의에 직접 참여할 정도로 그룹 내 입지를 다진 상태다. 박세창 상무의 급부상은 박찬구 회장의 자리를 위협하기도 했다. 업계는 박세창 상무가 박찬구 회장을 제치고 ‘왕좌’를 차지할 가능성을 줄곧 제기해 왔다. 일각에선 그의 등장이 이번 ‘형제의 난’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박찬구 회장의 외아들 박준경 부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중동무역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금호타이어 부장으로 입사했다. 올해 31세로 이제 막 경영수업을 시작한 것. 그러나 박준경 부장은 지분율에선 박세창 상무를 압도하고 있다.
우호지분 확보 관건
3세들 경영행보 주목
지분경쟁 판세의 변수로 지목되는 박정구 명예회장의 아들 박철완 부장은 ‘3세 시대’의 최대 복병이다. 올해 30세인 박철완 부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국내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부장으로 입사했다. 박정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상속받아 금호일가 중 가장 많은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금호가 장손인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박재영씨는 미국에 머물며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그룹 경영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경영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