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자진사퇴한 ‘천성관’ 후보자

2009.07.21 10:21:28 호수 0호

24일만에 천국서 지옥으로 곤두박질


강남 고급아파트 매입, 스폰서검사 의혹 등 치명적
사퇴·내정 철회 일사천리…검찰 지휘라인 공백 혼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제때 퇴임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검찰총장들. 이번엔 검찰총장 내정자가 임명장도 받기 전 자진사퇴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내정 이후 온갖 의혹에 시달리던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내정 24일 만에 불명예 퇴진한 것. 그는 아파트 구입 자금의 출처, 부인의 호화생활, 스폰서 검사 등의 의혹으로 도덕성에 흠집만을 남긴 채 24년 검사생활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에 검찰은 지휘부 공백에 따른 혼란에 빠졌고 이명박 정부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천국에서 지옥을 오간 천 후보자의 24일을 돌아봤다.



검찰총장 자리가 또다시 공석이 됐다. ‘스폰서 검사’라는 비아냥 속에서 내정 24일 동안 바늘방석에 앉아있던 천 후보자는 스스로 검찰총장에서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천 후보자는 지난 14일 오후 8시30분 낸 ‘사퇴의 변’에서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공직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공안검사 외길 인생
새 정부 구미에 맞아

이명박 대통령도 서둘러 천 후보자의 내정을 철회했다. 이 대통령은 사퇴의사를 밝힌 다음 날인 지난 15일 “무엇보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내정을 철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차기 검찰총장직을 수행하겠다는 천 후보자의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천 후보자는 검찰 내에서 ‘공안통’으로 평가받아 올 만큼 검사 임관 후 줄곧 공안 외길을 걸어왔다. 충남 논산 출신인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수원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하면서 공안검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1995년 대검 공안부에서 검찰연구관직을 수행하면서 본격적인 공안검사로서 활동을 했다.


굵직한 공안 사건에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부산지검 공안부장이었던 1998년에는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을 맡아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신시당위원장 등 15명을 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부장검사로 지내던 2000년 8월에는 의료계 폐업 사건과 관련해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의권쟁취투쟁위원장)의 구속 수사를 지휘했고, 2000년 4·13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주도한 총선연대 공동대표 최열과 박원순 상임집행위원장, 장원 대변인을 수사했다.

2001년에는 만경대 방명록 사건을 수사했다. 천 후보자는 8·15 민족통일대축전 방북단이었던 강정구 동국대학교 교수를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내용을 적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처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맡아 지휘해온 천 후보자였지만 탄탄대로의 출세 길을 걷지는 못했다. 2005년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서울고검 차장으로 부임한 뒤 주요 핵심 부서에 입성하지 못한 채 일선 지검장만을 역임했던 것. 이에는 공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공안 검사의 위상이 약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던 천 후보자가 날개를 달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였다. 공안 기능을 강화한 현 정부는 그에게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내줬다. 천 후보자의 위상도 점차 높아갔다.

그리고 2009년에는 용산참사 사건과 MBC의 <PD수첩> 사건을 맡아 수사를 진행했다. 이때부터 천 후보자는 언론과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시작했다.

먼저 용산참사 사건에서 천 후보자 아래에 있던 수사팀은 농성자 20명,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했으나 경찰에는 책임을 묻지 않아 비난을 받았다. 또 <PD수첩> 광우병 보도 수사에서는 방송 작가의 7년에 걸친 이메일을 압수수색하고 그 일부를 언론에 공개해 여론 몰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천 후보자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를 주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에 대한 여론의 시선은 더욱 차가웠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6일자 신문에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노 전 대통령 구속 여부를 묻는 전화를 돌렸고 전화를 받은 검찰 간부 절반 이상이 임 총장의 불구속 기소 의견에 동조했지만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과 신상규 광주고검장은 원칙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을 보도해 파문이 일었던 것.

그러나 천 후보자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검찰총장 후보자로 전격 발탁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지난 6월21일 모두의 예상을 깨고 검찰총장에 내정되면서 검사로서 그의 인생은 절정에 치달았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검찰 분위기를 일신하고 법질서 확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미래지향적인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섬기는 리더십을 갖춘 적임자로 판단되어 발탁했다”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검찰 안팎에선 천 후보자를 검찰총장직에 내정한 것을 두고 파격인사라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현 정부에게 천 후보자가 가진 요소들은 여러모로 입맛에 맞았다. 충청 출신인데다 공안통 검사 출신이란 점도 강점이었다. 기수서열을 파괴해 변화와 쇄신의 느낌을 주는 인사라는 것도 위기에 처한 검찰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 한몫을 할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그가 해결했던 사건들도 발탁 배경으로 꼽혔다. 지난해 수사를 맡았던 ‘여간첩 원정화 사건’과 안양초등생 혜진, 예슬 납치 살해 사건, 경기도시공사 개발비리 등이 그것. 온화하고 겸손하며 합리적인 성품을 갖췄다는 주위의 평가도 검찰총장을 맡기기에 손색이 없었다.

천 후보자는 “어려운 시기에 총장으로 지명돼 어깨가 무겁다”며 “법질서를 확립해 국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검찰의 기본임무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검찰총장직을 수행할 뜻을 밝혔다.

내정 직후 흘러나온 의혹
도덕성에 치명타 입어

그러나 내정 발표 직후부터 그에 대한 반대여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5일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하태훈 고려대 교수)가 ‘천성관 임명반대, 비(非)검찰 법무장관 임명, 검찰개혁특위 설치’를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총장 자격이 없는 천성관 내정자의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천 후보자를 두고 ‘인권침해 수사 책임자’ ‘공정성을 상실한 편파수사 책임자’ ‘무리한 공안수사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한 책임자’라고 단정을 지으며 강한 어조로 이번 인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주장했다.

천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한 의혹도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의혹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가까워올수록 정점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3일, 천 후보자에게 악몽의 날로 기억될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야당은 천 후보자에게 일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그중 하나가 서울 강남 고가아파트 구입과정에 관한 의혹이다. 천 후보자는 지난 4월 강남구 신사동의 한 고급아파트를 29억7500만원에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친동생과 처형에게 각각 5억, 3억원씩을, 지인인 사업가 박모씨로부터 15억5000만원을 차용했다. 이 중 박씨에게는 이자 400만원과 원금 7억5000만원을 갚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8억원이 부채로 남아있는 상태다.


민주당은 이에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검찰 간부가 거액을 차용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고 차용 성격도 석연치 않다며 의혹을 드러냈다.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은 청문회에 앞서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2004년까지 18평짜리 다가구주택에 전세 살던 천 내정자의 동생이 갑자기 2억8000만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하고 형에게 5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무이자로 빌려줄 정도의 재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문회에서도 아파트 매입과정에서 불거진 박씨와의 고액채무 관련 의혹을 천 후보자에게 집중 추궁했다. 이에 대해 천 후보자는 청문회 당시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박씨에게 15억5000만원을 빌린 부분에 대한 금융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증인으로 채택된 박씨마저 불출석한 것도 천 후보자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박씨와 천 후보자 사이의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박씨가 천 후보자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나온 것.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2004년 천 후보자와 박씨가 일본으로 골프여행을 함께 간 것으로 나오고, 올해 2월10일에는 천 후보자의 부인과 박씨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3000달러짜리 샤넬 핸드백을 함께 구입한 기록도 있다”고 지적하며 여행경비 및 명품 구입비 대납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천 후보자는 “같이 여행 간 적은 없다”면서도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탔는지는 모르겠다”는 어설픈 해명을 했다.

천 후보자의 부인 김모씨가 승계한 제네시스 차량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됐다. 이 차량은 천 후보자의 지인이 대표로 있는 S사가 지난해 5월부터 임차해 사용해 오던 것으로 검찰총장 내정자 발표 다음 날인 6월22일 S사로부터 보증금 1700만원에 매달 170만여 원을 주는 조건으로 리스 계약이 승계됐다.

그러나 계약 승계 이전인 지난해부터 이 차량이 천 내정자의 아파트 주차대장에 천 내정자 집 차량으로 등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천 후보자 측이 지인을 통해 무상으로 차량을 이용해 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휘라인 잃은 검찰
‘구원투수 어디 있어?’

또 천 후보자의 부인이 모 백화점이 연간 3500만원 구매실적 이상의 VIP고객에게 제공하는 멤버십인 ‘J클럽’ 회원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천 후보자는 이에 대해 “‘J클럽’ 카드는 윗동서 카드인데 처갓집 자매들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이밖에도 아들의 병역특례 의혹, 자녀 위장전입 의혹 등이 청문회 자리에서 천 후보자를 옥죄었다. 그러나 천 후보자는 이렇다 할 해명도 하지 못한 채 청문회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낱낱이 드러난 허술한 자기관리와 비도덕적인 면모는 결국 그에게 어려운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 내정된 날로부터 24일이라는 시간은 천 후보자에게 ‘일장춘몽’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천 후보자가 물러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폭풍만이 거세지고 있을 뿐이다. 또 지휘라인이 초토화된 검찰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인사검증 시스템 재검토 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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