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시름하는 해외유학생<자화상>

2009.03.17 09:30:56 호수 0호

고환율에 시름하는 해외유학생<자화상>

세계적인 경기불황을 직접 체감하는 이들 중 한 부류는 바로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이다. 널뛰듯 치솟는 환율과 물가로 인해 이들은 어느 때보다 유학생활이 팍팍하기만 하다. 날마다 오르는 환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귀국하는 이들도 부지기수. 특히 외국으로 아내와 자녀를 보내고 홀로 돈을 벌고 있는 기러기 아빠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싸게 환전을 받으려는 발걸음도 더욱 바빠지고 있다. 학업을 중단하지 않은 유학생들의 삶도 고단하기만 하다. 일부 유학생들은 학비를 벌기 위해 유흥업소를 전전하기도 해 고환율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2년 전 미국 동부로 유학을 간 이모(25)씨는 유학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돈 때문이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돈 걱정 없이 해외 유학까지 온 그에게 지금의 불황은 누구보다 뼈아프게 다가왔다.
먼저 마음 편히 공부만 했던 봄날은 더 이상 이씨에겐 없다. 유학생활 내내 학비와 생활비를 부모님에게 의지했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우뚱거리기 시작하면서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레스토랑 웨이터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

눈뜨기 무섭게 환율 체크
여의치 않으면 귀국행

그러나 미친 듯이 치솟는 환율과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한다. 여기에 1년 등록금까지 1000만원 이상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이씨는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까지 하고 있다.

치솟는 환율로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생활고 극심
‘살인 물가’에 등록금까지 올라 학업 포기하고 귀국하기도
일부 유학생들, 노래방 도우미 등 유흥업소 발 들이기도
기러기 아빠들 고충 갈수록 늘어… 환율변동에 일희일비


이씨는 “외환위기가 뭔지도 모를 만큼 경제적으로 편하게 살아왔는데 해외에서 느끼는 지금의 불황은 너무나 혹독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씨처럼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는 유학생은 적지 않다. 특히 달러화를 사용하는 나라로 건너간 유학생들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만 간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막을 향해 치닫는 환율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원·달러 환율 폭등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돼 1600원대에 가까워 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환율이 900원대일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는 한 유학생은 “매일 매일 오르는 환율 때문에 아침에 눈뜨기가 무서울 정도”라며 “학비나 생활비를 송금할 때마다 금붙이 등 집안에 있는 귀중품들을 처분한다는 부모님 말을 들으면 눈물만 난다”고 토로했다.
집안에 처분할 귀중품이 있는 가정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집에서는 유학 간 자녀에게 송금하는 돈의 규모를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월별 송금액으로 알 수 있다. 외환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개인 월별 송금액이 전년 대비 절반 이하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갈수록 유학생활이 팍팍해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거나 미뤄놓고 귀국행을 택하거나 심각하게 귀국을 고려하는 유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1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정모(23·여)씨도 이 같은 케이스다.
어떻게든 대학교 졸업만은 하고 돌아오고 싶었지만 불황의 골은 너무나 깊었다. 끼니까지 줄여가며 허리띠를 조여맸지만 한 달 1500달러에 이르는 월세와 부쩍 오른 등록금을 내기가 빠듯해 잠시 학업을 미루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 그러나 돌아온 고국도 떠나기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정씨는 “파리만 날리는 부모님의 식당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미국유학을 고집하려했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며 “경기침체의 늪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례없는 세계적 불황을 피부로 느끼는 유학생들은 어느 때보다 힘든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유학생들은 유흥업소 등에 발을 들여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 성(性)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유학생들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의 불황이 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유학생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UCLA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고환율을 견디는 유학생들의 현주소에 대한 글을 올려 파장을 낳기도 했다. 이 유학생은 한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고환율의 수렁에 빠진 여자 유학생들’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실태를 알렸다.

그중 한 가지는 방값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외국남성과 동거를 택한 유학생들이 존재한다는 것. 당장 머물 집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유학생들이 비싼 방값에 드는 돈을 아끼기 위해 선택하는 한 가지 방편인 셈이다.
글쓴이에 따르면 미국 내에 친척 등 연고가 없는 사람에게 가장 큰 압박 중 하나는 집세라고 한다. 작은 방 하나를 빌리는 데 드는 돈도 한 달에 1200~1600달러에 이르는 살인적인 물가는 유학생이 감당하기엔 벅찬 것이 당연한 것.
때문에 자신이 아는 여자 후배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일본인 남학생과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부모님에게 알리지 못하고 비밀동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집세 때문이라고.



고수익 유혹에 유흥업소행
방세 아끼려 동거까지?

또 글쓴이가 짚은 것은 몇몇 여자 유학생들이 집값 등을 벌기 위해 코리아타운에 있는 노래방에 도우미로 나가거나 일본인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와이에 있는 한 가라오케가 한글을 써서 만든 구인광고 전단지를 올려놓기도 했다. 이 전단지에는 숙소제공은 물론 항공료까지 제공한다는 달콤한 조건이 제시되어 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한국인 여성의 난자를 매매하고 싶다는 광고까지 나돌아 지금의 불황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글쓴이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고환율로 인해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술집이나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면서 신세를 망치거나 약물중독 등으로 정신적·육체적으로 망가진 여성들이 많았다는 얘기들을 한국인 교민들로부터 전해 듣곤 했는데 또 다시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답답한 마음이 생긴다”며 우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기러기 아빠도 고충 늘어
외로움보다 무서운 환율

이 같은 글에 네티즌들은 여성 유학생만 매도한다는 의견과 유학사회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의견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펼쳤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은 불황으로 인해 유학생들의 생활이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유학생만큼이나 힘든 사람은 한국에 남아 아내와 자녀에게 돈을 부쳐주는 기러기 아빠들이다. 큰 폭으로 뛰는 환율로 허리가 휘면서 외로움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는 기러기 아빠들은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환율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일별 환율 등락 폭이 커 한시라도 변화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3년 전 아내와 두 자녀를 미국으로 보내고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A씨도 돈 걱정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일을 해도 수입은 그대로인데 미국으로 송금해야 할 돈은 날이 갈수록 그 금액이 커지고 있어서다.
A씨는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돈이 없어 끼니까지 거를까봐 생활비를 줄여 송금하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라도 해 돈을 모아 보낼 생각이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환율이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조금이라도 싸게 환전을 하기 위해 편법을 쓰는 이들도 늘고 있다. 남대문이나 이태원 등에 밀집한 불법 환전상에서 환전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현행법상 공인환전상은 원화로만 바꿔줄 수 있지만 법망을 피해 달러로 환전을 해주는 환전상들을 찾아다니며 은행에서보다 싸게 환전을 받는 것이다. 불법이란 것은 알지만 1달러라도 더 송금해주기 위해서라면 이마저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이 기러기 아빠들의 심정이다.
이처럼 끝을 모르고 오르는 환율은 해외로 떠난 이들에게도, 한국에 남아 이들을 뒷받침해주는 이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기고 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