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재벌가 신(新)혼맥 [제10탄] ‘아들 같은’ 백년손님

2009.03.17 09:26:25 호수 0호

박힌 돌 안 부러운 굴러온 돌 ‘인생 대역전’

[일요시사=경제1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5년 전인 2004년 시사지 최초로 재벌가 혼맥을 집중 해부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09년 새해를 맞아 새 식구를 포함한 재벌가 신 혼맥을 유형·테마별로 새롭게 재구성해 봤다.


재벌가 혼맥은




“1000억원대 재산을 지켜줄 ‘아들 같은’사위를 공개모집합니다.”

지난 2007년 6월, 세간은 온통 데릴사위 얘기로 시끌벅적했다. 1000억원의 재산을 가진 강남 갑부가 “처가에 평생 복종할 사위를 찾아 달라”고 결혼정보업체에 도움을 청한 것. 

이 소식은 바로 만천하에 공개됐고 국내외에서 문의와 신청이 쇄도했다. 무려 270여 명의 총각들이 몰렸다.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을 비롯해 대기업 및 공기업 임직원, 세무사, 목사 등 다양한 직업군의 남성들이 갑부집 문을 두드렸고 결국 여러 관문을 거쳐 사주(?)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진 사윗감을 골랐다는 후문이다.

당시 데릴사위란 다소 생소한 용어가 등장한 점이 이목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의뢰자가 1000억원의 재산을 가진 갑부란 점에서 파격 그 자체였다. 반면 비판도 적지 않았다. 엄청난 경제력을 내세워 사실상 ‘사람을 돈으로 산다’는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면서 ‘21세기 현대판 데릴사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방송가엔 이런 스토리가 단골소재로 쓰이고 있다. 남성이 상대 집안 덕분에 신분이 상승하는 뻔한 얘기다. 이른바 ‘남데렐라’ 신드롬이다. 현실과 멀다는 이유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지만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신 데릴사위’ 제도가 사회에 빠른 속도로 뿌리내리고 있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사정은 재벌가도 다르지 않다. ‘아들 같은’ 사위를 들이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심지어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까지 물려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재벌가가 동양그룹 일가다. 국내 재벌가에서 최초로 사위들이 경영권을 승계했다. 주인공은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다. 고 이양구 창업주의 맏사위 현 회장은 현재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둘째 사위 담 회장은 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오리온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재벌그룹은 유교적 전통에 따라 장자 우선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기 마련이다. 이도 아니면 아들 중 ‘될성부른 떡잎’을 키운다.

그러나 동양그룹은 다르다. 이 창업주가 슬하에 딸만 둔 탓이다. 북한에서 홀로 월남해 가족이 단출한 이 창업주는 6·25전쟁통에 만난 이관희씨와 사이에서 혜경-화경 딸만 둘을 뒀다. 

장녀 혜경씨는 1976년 현 회장과 결혼했다. 고려대 초대총장을 역임하고 6·25전쟁 때 납북된 현상윤 박사가 그의 조부다. 현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혜경씨와 결혼, 경영수업을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갔다온 뒤 곧바로 동양시멘트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차녀 화경씨는 1980년 담 회장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고조부가 한국으로 건너온 화교 집안 출신인 담 회장은 서울외국인학교를 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다. 그의 부친은 한의사였다. 담 회장은 외국인학교 재학 시절 화경씨를 만나 10년 열애 끝에 결혼,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1981년 동양제과에서 일을 시작했다.

혜경씨와 화경씨는 일찍이 경영에 참여했지만 ‘대권’은 두 사위인 현 회장과 담 회장에게 돌아갔다. 이 창업주가 생전에 이미 사위 경영체제를 구축한 것. 이 창업자는 사위들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혹독한 경영수업을 시켰다.
현 회장은 외환위기로 심각한 부채에 시달릴 당시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내실을 다져 회사를 안정시켰고 담 회장은 식품과 유통사업에 그치지 않고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업군을 확대시키며 저돌적인 경영수완을 발휘해 이 창업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989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 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오리온을 맡았다. 두 사위는 10여 년 동안 두 그룹을 한지붕 아래에서 이끌다가 2001년 9월 각자의 길을 떠났다. 

때문에 동양과 오리온을 ‘동서 그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서울 성북동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재벌가 사위들은 과거처럼 천덕꾸러기 신세인 처량한 이방인이 아니다”라며 “‘사위 전성시대’라 할 만큼 이제 더이상 그들에게서 ‘백년손님’이란 꼬리표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경영수완을 발휘해 장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명실공히 ‘황태자’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경우 ‘잘 나가는’ 사위와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공통적으로 최종 목적지인 경영권을 놓고 아들-사위간 신경전까지 감지된다. 당연히 ‘아들보다 사위가 낫다’는 평가를 받는 집안의 아들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실제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재벌가 사위들이 적지 않다. 핵심 요직에 등용된 이들은 혼사를 통한 무임승차가 아닌 실력과 노력으로 오너일가 2∼3세 못지않은 지위와 권력을 누리며 이른바 ‘처갓집 나와바리’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후계자는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다. 당장 경영권 승계가 눈앞이지만 자질 검증 등 아직 장애물이 산적한 모양새다. 한마디로 확실한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바늘구멍 뚫고 ‘대궐입성’…사위들 종횡무진 활약
‘성골’아들 -‘진골’사위 경영구도 묘한 기류 감지도 

이런 와중에 현대차 사위들의 약진은 눈여겨 볼 만하다. 정 회장은 이정화씨와 사이에서 1남3녀(성이-명이-윤이-의선)를 뒀다. 이중 맏사위(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를 제외한 둘째·셋째 사위가 현대차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회사 내 입지를 굳혔다. 항간엔 그룹 분할 가능성까지 나온다.

차녀 명이씨의 남편 정태영 현대캐피탈·현대카드 사장은 전문경영인 못지않은 경영 수완을 발휘해 장인의 신임을 얻고 있다.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의 장남인 정 사장은 서울대 불문학과-메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 이사로 현대가에 합류했다. 이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상무, 현대모비스 전무, 기아자동차 자재본부장 등을 거쳐 2003년 10월 사장직에 올랐다.

3녀 윤이씨의 남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도 미국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한 뒤 1995년 현대정공에 입사해 2001년 현대하이스코 이사, 2002년 전무, 2003년 부사장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현대정공에 근무할 당시 윤이씨와 만나 연애 끝에 결혼해 화제를 뿌렸다. 

삼성가의 사위들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손발을 맞출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맏사위인 임우재씨는 삼성전기 상무로, 둘째 사위인 김재열씨는 제일모직 전무로 재직하며 ‘포스트 이건희’ 체제로 가기 위한 ‘세대교체’ 중심에 있다.

범삼성가인 신세계그룹 사위 역시 후계구도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로 꼽힌다. 이명희 회장의 외아들 정용진 부회장이 실질적인 지휘봉을 잡고 있지만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외사위’의 기세가 매섭다.

이 회장은 정재은 명예회장과 사이에서 1남1녀(용진-유경)를 뒀는데 외동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는 2001년 3월 초등학교 동창인 문성욱 신세계I&C 부사장과 결혼했다. 


문 부사장은 시카고대 경제학과, 펜실베니아대 와튼 MBA를 졸업하고 SK텔레콤 기획조정실과 소프트뱅크코리아에서 근무하다 결혼 후 2004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장으로 전격 발탁, 2005년 12월 신세계I&C 상무로 승진한데 이어 지난해 11월 부사장직에 올랐다. 

당시 일각에선 이 회장이 경영 승계를 염두하고 인사를 단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과 더불어 아들 정 부회장이 그룹의 주력사업인 유통부문을, 딸 정 상무가 호텔부문을, 사위 문 부사장이 IT부문을 이끌 것이란 시나리오가 나왔다.

‘집안 기둥’이 흔들리는 초대형 악재를 만난 애경그룹의 사위 역할도 기대할 만하다. 애경그룹은 채형석-동석-승석 3형제가 각각 장남은 그룹 총괄, 차남은 유통·백화점, 막내는 부동산·골프장으로 본격적인 2세 경영에 돌입했다.

그러나 2006년 11월부터 그룹의 실질적 오너 역할을 맡아온 장영신 회장의 장남인 채형석 총괄부회장이 지난해 12월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자칫 이 구도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장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 애경그룹의 무게중심이 자연스레 다른 쪽으로 기울면서 사위에도 조명이 비춰지고 있다.

‘야금야금’그룹 내 영역 확장
‘처갓집 나와바리’서 맹활약
무임승차 아닌 실력으로 승부

장녀 은정씨의 남편 안용찬 부회장은 그룹 생활·항공부문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 MBA를 나온 안 부회장은 1987년 애경산업 마케팅부에 입사, 1995년 사장에 올랐다. 안 부회장은 ‘애경가 사위’란 간판보다 그룹 경영에 한 축을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으로서 더 인정받고 있다.

이밖에 ▲박장석 SKC 사장(최종건 SK그룹 창업주 사위) ▲서정호 삼양베이커탱크터미널 사장(전중윤 삼양그룹 회장 사위) ▲신정훈 해태제과 사장(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사위) 등도 착실하게 경영 내공을 쌓으며 장인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받은 상태다.

처갓집 사업엔 관여하지 않지만 장인이 믿고 의지하는 사위도 있다. 신춘호-서경배 관계가 그렇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경영권 승계 터다지기 작업을 해뒀다. 2003년 ㈜농심홀딩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2세 경영의 틀을 잡은 것. 

신 회장은 김낙양씨와 사이에 3남2녀(현주-동원-동윤-동익-윤경)를 뒀는데 막내딸 윤경씨를 제외한 4남매가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장녀가 농심기획, 장남이 ㈜농심, 차남이 율촌화학, 3남이 메가마트 등 각자 한몫씩을 차지한 형국이다.

이에 비해 내조에만 전념하는 윤경씨는 1990년 고 서성환 태평양그룹 창업주의 차남 서경배 아모레퍼시식 사장과 결혼했다. 서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코넬대 MBA를 마치고 1987년 태평양에 입사해 1997년부터 태평양 대표를 맡았다.

신 회장과 서 창업주의 친분이 훗날 사돈으로 연결됐다고 한다. 오래 쌓인 정은 장인과 사위로 이어져 서 사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신 회장을 찾아 서로 경영 자문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사장은 존경하는 인물로 부친 서 창업주와 함께 장인 신 회장을 꼽는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적적함을 달래는 사위가 있다.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 사장이다. 구 회장은 연경-연수 딸만 둘이다. 아들이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 사고로 잃었다. ‘대’가 끊긴 구 회장은 2004년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씨를 양자로 호적에 올려 후계자 자리를 물려줄 복안이다.

하지만 정작 아들의 빈자리는 장녀 연경씨와 2006년 5월 결혼한 윤 사장이 메우고 있다. 윤 사장은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영공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0년 다국적 벤처캐피털 블루런벤처스에 입사해 2006년부터 한국지사장을 맡아왔다. 

일각에선 윤 사장의 LG그룹 경영 참여가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지만 딸들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LG그룹 일가의 가풍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벌가 사위 잔혹사
‘한번 손님은 영원한 손님’

재벌가에서 ‘잘 나가는’사위들이 있는 반면 곤욕을 치른 사위들도 적지 않다. 과거 재벌가 사위들은 대부분 그룹 경영일선에서 철저하게 배제돼 왔다. 설령 경영에 참여했다 해도 큰 역할이 없는 직책을 맡았던 게 전부다.
그나마 쌓은 실력도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무너지기 일쑤였다. 특히 ‘평범한 집안(?)’ 출신이라면 더욱 그랬다. 폐쇄적인 재벌가 문화에서 이방인으로 분류되는 사위들이 살아남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 재계에서 이 같은 사례들을 쉽사리 찾아 볼 수 있다. 국내 굴지의 A그룹은 창업주가 사위들을 경영일선에 내세우는 것을 꺼려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B그룹의 경우 평범한 집안 출신이 혼인을 통해 가족이 되자 철저히 ‘왕따’를 시켰다. 심지어 C그룹 사위는 평범한 집안이란 이유로 부인마저 외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D그룹 사위는 아내의 위치추적을 받기도 했다.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해 몰래 위치 추적이 가능한 휴대폰을 자동차에 설치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남편에게 발각되면서 결국 법정다툼으로까지 비화됐다. 아내는 D그룹 직원들을 동원해 그룹 전산망을 이용, 남편뿐 아니라 내연녀로 의심되는 여성의 차량을 조회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오너 사위의 경영참여를 원천봉쇄하는 기업들도 많다. LG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코오롱그룹, SK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그룹은 전통적으로 딸들은 물론 사위들을 경영에서 배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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