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분단 80년 강원도, 통일의 축 돼야

2025.11.22 11:17:18 호수 0호

1945년 한반도에 38선(휴전선)이 그어지면서 한반도와 함께 강원도도 덩달아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이는 강원도의 단순 행정 분리가 아니라, 같은 산맥, 같은 강줄기, 같은 문화권이 하루아침에 서로 다른 체제로 갈라지는 거대한 단절이었다.



지난 21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김정은 위원장이 강원도 회양군민발전소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하자 외신 기자들이 “한국 강원도 고성 이야기인가”라며 지도를 뒤적이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도 이 분단의 깊은 상처가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강원도’라는 동일 지명이 이제는 두 개의 체제, 두 개의 전력 사정, 두 개의 주민 삶을 가리키는 이중적 상징이 된 것이다.

북한의 강원도는 행정 중심지가 원산이고, 남한의 강원도는 춘천을 중심으로 한다. 똑같이 ‘강원도’라고 부르지만 전혀 다른 나라, 다른 제도, 다른 생활 조건을 가진 지역이다.

특히 회양군처럼 외국 기자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지명이 등장할 때마다 “왜 강원도는 남과 북에 각각 있는가”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이는 38선이 가른 것이 단지 지도만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 그 자체였음을 보여준다.

80년 전만 해도 강원도는 원래 하나였다. 원산–금강산–철원–춘천–속초로 이어지는 축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경제·문화·생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단일 권역이었다. 원산은 동북아 물류 관문이었고, 금강산은 조선 왕조부터 이어진 명산이었으며, 철원은 비옥한 곡창지대였다.


분단은 이 모든 흐름을 인위적으로 단절했다. 남쪽 강원도는 수도권 배후의 관광·레저 중심 지역으로 재편됐고, 북쪽 강원도는 군수·자력갱생 중심의 폐쇄적 지역으로 고착됐다. 이는 자연이 만든 경제지도가 아니라, 전쟁에서 이긴 나라들이 임의로 그어놓은 왜곡된 지도였다.

북한이 회양군에 준공한 ‘군민발전소’ 역시 이 왜곡의 결과물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구도 적고 공업 기반도 약한 강원도가 자체 힘으로 해낸 대단한 성과”라고 자찬했지만, 그 말 속에는 북한의 열악한 전력 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북한의 발전설비 능력은 남한의 약 6% 수준이고, 실제 전력 생산량도 4%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많다. 평양을 벗어나면 전력 공급은 지역과 계절, 강우량 등 여러 환경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주민들은 잦은 정전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은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주민 동원만 가능하면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소수력발전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북한이 강원도의 전력 성공 사례를 보도하면 해외에서는 종종 “한국 강원도가 전력난을 겪는가”라는 엉뚱한 질문을 한다. 한 외신 기자는 한국 정부에 “강원도가 자체 발전소를 지었다니 남한 경제가 심각한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남북이 같은 지명을 유지한 채 80년 동안 서로 다른 체제로 살아온 결과, 강원도는 국제사회에서조차 둘인데 하나처럼 불리는 지역이라는 이상한 혼란을 남겼다.

사실 남북 모두 ‘강원도’라는 이름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름을 바꾸는 순간 역사적 정통성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은 수도권 중심 정책에 몰두했고, 북은 평양 중심 체제 유지에 집중했지만, 어느 쪽도 강원도의 분단을 주도적으로 치유할 국가 전략을 세운 적은 없었다.

그렇게 강원도는 남과 북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중심은 아닌 지역으로 남겨졌다. 전쟁 이후 강원도는 더욱 비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철원은 군사 격전지의 상징이 되었고, 금강산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잃어버린 성소가 됐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의 이동과 경제의 흐름만 끊어지면서 강원도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철원·양구·화천에 태어난다는 것은 곧 분단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삶을 의미했고, 주민들의 생업·안보·문화는 모두 군사화된 공간 속에서 갇혀버렸다.

이 비극은 과거형이 아니다. 강원도는 지금도 한반도의 미래 전략을 묻는 공간이다. DMZ 일대는 생태–평화–관광을 결합한 세계 유일의 자산이고, 동해안은 부산–울산–포항–동해–속초–원산으로 이어지는 신북방 경제벨트의 핵심 관문이 될 수 있다. 남북 강원도가 동일한 자연환경을 공유한다는 점은 통합경제의 가장 큰 경쟁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권은 이 잠재력을 전략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선거철이면 접경지역 지원 같은 추상적 구호만 반복하고, 중앙정부는 근본적인 구조를 다루지 않은 채 작은 예산 사업만 나열한다. 북한 역시 강원도를 체제 유지용 지역으로 묶어두고 자력갱생의 상징으로만 소비한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강원도의 미래는 여전히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것이다.


강원도를 다시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근본적으로 전환돼야 한다. 강원도는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통합의 중심축이 될 수 있는 공간이며, 한반도의 경제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지역이다.

동해항과 원산항이 연결된다면 동북아 물류 네트워크의 축 자체가 바뀌고, 금강산이 재개된다면 한국 관광산업의 동선이 완전히 재편된다. 철원을 중심으로 한 농업·식량 협력은 남북의 공급망을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

‘강원도’라는 단어가 하나의 공간을 의미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은 언젠가 반드시 극복돼야 할 역사적 과제다. 남북이 다시 하나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때, 강원도는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한반도 회복과 통합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남과 북이 통일 이전에 먼저 강원도를 공동으로 관리·개발하는 ‘통일 강원도 모델’을 시범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자연환경과 경제구조를 가진 강원도를 공동경제구역·공동안보구역·공동생태구역으로 지정해, 남북의 제도 조정·경제 협력·행정 실험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급격한 통일 비용과 위험을 줄이고, 남북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를 먼저 만들며, 장기적으로 한반도 통일의 리스크를 완화하는 현실적 전략이 될 수 있다.

38선이 강원도를 나눠 놨지만, 미래의 전략 지도는 강원도가 남북을 잇는 가장 두꺼운 축이 돼야 한다. 강원도의 운명은 결국 한반도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 운명을 다시 쓰는 일은 지금 우리 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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