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트럼프 핵잠수함 승인의 불편한 진실

2025.11.01 10:38:13 호수 0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게 됐다. 언뜻 들으면 한국이 마침내 ‘핵잠수함 보유국’ 반열에 오른 듯하지만, 그 내막을 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번 승인은 핵연료 공급을 허용하겠다는 수준일 뿐, 잠수함의 건조 장소와 핵심 기술의 주도권은 여전히 미국에 있다. 핵연료는 주되, 건조는 미국에서 하라는 조건이 붙은 셈이다. 겉으론 한국의 해양 작전 능력 강화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기술 의존 심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핵잠수함(Nuclear-powered Submarine)은 이름 그대로 핵(원자력)을 추진력으로 쓰는 잠수함이다. 원자로가 만들어내는 열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로 프로펠러를 돌린다. 디젤엔진 잠수함이 2~3일마다 수면 위로 떠올라 공기를 흡입해야 하는 반면, 핵잠수함은 수개월 동안 물속에서 작전할 수 있다.

연료 한번 주입으로 20년간 운항할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며, 장시간 잠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만 핵잠수함이라는 말이 곧 핵무기 잠수함을 뜻하는 건 아니다.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핵잠수함(SSBN)과 달리, 핵잠수함은 동력만 핵으로 쓰는 전력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이 원했던 건 단순히 핵잠수함 보유가 아니었다. 핵연료를 자체 생산·관리하며, 원자로 기술을 확보해 해군 전략자산을 완성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이번에 트럼프는 “핵연료는 공급하되, 잠수함은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한국이 기술적 자립 대신 부분적 협력을 택한 결과다. 문제는 이 구조가 전략 자산의 내재화가 아닌 외주형 동맹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핵잠수함의 심장은 원자로인데, 그 기술과 연료를 미국이 쥐고 있다면 핵잠수함의 국산화는 의미가 반감된다.


현재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6개 국가다. 이들 모두 핵잠수함을 자체 건조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트럼프의 핵잠수함 승인이 표면적으론 ‘승인’이지만, 본질적으론 ‘허락받은 자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핵잠수함 한 척의 건조비는 최소 3조원, 수명주기 비용까지 합치면 10조원을 넘는다. 그런데 건조는 미국 조선소에서, 운용·정비·폐기 비용은 한국이 부담하는 구조라면, 이중 부담이 불가피하다. F-35 전투기, 패트리엇 미사일, 사드 배치 등에서도 경험했듯이, 우리는 늘 구매자였고 미국은 통제자였다.

핵잠수함 승인 역시 동맹의 약속으로 포장된 새로운 종속 계약일 수도 있다. 핵연료 공급 또한 단발성 허가가 아니다. 핵연료 교체, 사용 후 폐기물 처리, 방사선 안전 관리 등 모든 과정에 미국의 통제가 따라붙는다. 이로써 한국은 핵동력 자주국가가 아니라 핵연료 임차 국가로 남게 된다.

한국이 핵잠수함을 추진하는 명분은 분명하다.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위협과 중국·일본 해군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승인은 자주적 억제력 확보가 아니라, 미국의 전략 네트워크 속에 깊숙이 편입되는 구조다.

중국 외교부는 “핵확산금지의무(NPT 등)를 진지하게 이행하고, 역으로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선 안 된다”고 경고했고, 일본 일부 언론은 “일본도 핵잠수함을 확보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핵잠수함 승인이 동북아 군비 경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지난달 30일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으로 오고 있는 시점에 핵잠수함 승인을 공개했다. 이는 중국의 협상 여지를 사전에 봉쇄하고,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게 “미국의 안보 틀 안에 머물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한국도 1일 오후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상태에서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됐다.

트럼프에게 이번 승인은 안보정책이자 경제정책이기도 했다. 미국 내 조선산업 부활, 방산 수출 확대, 동맹 압박 등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계산이었다. 한국의 기술 주권보다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우리가 핵잠수함을 보유하느냐”보다 “핵잠수함의 열쇠를 누가 쥐느냐”다. 핵연료 주입, 원자로 운전, 정비 매뉴얼까지 미국이 통제한다면 한국은 단순한 운용 대행자일 뿐이다.

핵잠수함은 동맹의 상징이 될 수 있지만, 기술적 예속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핵연료만 달라는데, 건조는 미국에서 하라는 말은 결국 이렇게 들린다. “너희는 연료를 사용할 권리는 있지만, 만드는 권리는 없다.” 이것이 이번 트럼프 승인에 담긴 불편한 진실이다.

이제 한국은 “핵추진 기술을 독자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동맹 의존형 체계를 유지할 것인가” 미국과 다시 전략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 후자를 택하면 당장은 안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론 외교·산업·안보의 자율성을 잃게 된다.


핵잠수함은 무기체계가 아니라 국가전략의 축이다. 한국이 진정한 힘의 자존을 추구하려면 우리의 원자로를 가져야 한다. 핵잠수함의 진짜 시험대는 건조 허가서가 아니라, 기술 독립 선언서다.

승인은 신뢰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이번 승인은 신뢰보다 조건이, 협력보다 통제가 더 많았다. 핵잠수함 승인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씁쓸하다. 한국이 진짜 원한 건 잠수함 보유보다 기술주권과 전략자율이다.

핵잠수함은 무기가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이다. 한국이 향후 핵짐수함 관련 주도권을 가질 때, 비로소 핵잠수함은 진정한 자주국방의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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