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밀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더욱 교묘해지고 대형화·조직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밀수경로도 다변화 추세다. 실제 국제범죄 조직에 의한 한국경유 일본 등 제3국으로의 중계밀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청청국’임을 자처하던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안전지대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고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국경 최일선에서 ‘마약 청정국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는 이들이 있다. 바로 관세청 마약조사과 직원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전하는 마약 밀수 비화를 들어봤다.
지난 2007년 2월 재미교포 C씨 등이 서울 종로 일대에서 100만원어치의 감기약을 구입, 인적이 드문 야산에서 환각제인 필로폰 약 50g을 추출했다가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이 사용한 감기약은 주로 코감기에 사용되고 있는 의사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 의약품. 그러나 이 감기약에는 비염이나 천식증상을 완화시키는 ‘슈도에페드린’이 함유돼 있어 이 성분으로 필로폰을 제조한 것이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감기약에 함유돼 있는 슈도에페드린 성분을 쉽게 마약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대두됐다.
감기약으로 필로폰 제조
이런 상황에서 거의 매달 중국에서 국내체류 중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중국식품점 및 국내 대학교 등으로 중국산 차가 국제우편으로 발송되고 있었다. 슈도에페드린을 중국산 차 봉지에 넣어 차로 위장한 것으로 수취인은 중국인과 조선족. 그러나 가명에 가짜 주소, 가짜 전화번호가 기재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마약밀수업자 검거에는 별다른 진도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산 차로 위장한 동일한 방법으로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국인 앞으로 발송된 특급우편물이 있었다. 이에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과 H수사관은 주소지에 대한 통제배달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수취인인 K씨는 건설현장의 조장으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시민. 실제 수취인은 조선족인 N씨였다. N이 “중국에서 친척이 차와 모시를 보내려고 한다”면서 K에게 대리수취를 부탁했던 것.
H수사관은 이에 N이 물품을 전달받기 위해 K를 찾아올 것으로 예상, 잠복에 돌입했다. N은 K씨로부터 “우편물이 잘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말을 들은 후 이틀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H 수사관은 그 자리에서 N을 검거했다.
체포된 N은 “한국에 있는 중국인 Y모씨는 국제범죄 조직원인데 중국에서 슈도에페드린을 한국으로 반입한 뒤 호주나 뉴질랜드로 보내주는 일을 해보라고 제안해 승낙했다”며 “그동안 몇 차례 중국 식품점, 다방, 여인숙을 수취장소로 해 중국에서 슈도에페드린을 받아 뉴질랜드 등지로 보내주었고 성공적으로 해외로 발송까지 마치면 건당 중국돈 5000위안(한화 약 7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다음 날 Y를 검거하기 위해 그의 주거지를 급습했다. 하지만 이미 전날 모든 짐을 정리하고 도망친 뒤였다. 이에 H 수사관은 한 달 동안 Y를 아는 중국인과 조선족을 수소문한 끝에 Y가 현재 경기도 A아파트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H 수사관은 Y가 일하고 있는 공사현장을 사전답사한 후 그를 체포하기 위해 공사현장을 급습했다. 그러나 Y는 또 어느새 눈치를 채고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
‘미꾸라지’ 같은 Y로 인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던 중 H 수사관은 한 제보를 받았다. Y가 전라북도에 있는 여관에 머물고 있다는 것. 밤늦게 여관에 도착한 H 수사관은 여관주인의 협조를 받아 방에 머물고 있던 Y를 체포했다.
Y는 반입경위에 대해 “슈도에페드린은 이전부터 한국을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바로 호주나 뉴질랜드로 우편물을 통해 발송했는데 중국에서 발송되는 우편물에 대한 검사가 심해 마약청정국인 한국을 경유하면 통관이 쉬워 성공보수금을 받고 한국으로 반입한 뒤 다시 한국산 커피봉지에 넣어 은닉한 후 호주나 뉴질랜드로 보내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원료물질을 사수하라”
H 수사관은 “국제마약 조직은 간단한 제조방법과 필로폰 생산수율이 약 20%로 높아 슈도에페드린을 선택하고 있다”며 “관세청은 국제마약밀거래 조직의 마약류 원료물질 불법거래에 대비해 ▲교육 ▲마약 및 원료물질에 대한 소개 ▲국내외 동향분석 ▲역추적 기법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마약류 원료물질은 마약류가 아닌 물질 중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의 제조에 사용되는 물질을 말한다. 마약 및 향정신성 물질의 불법거래방지에 관한 국제연합협약 및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 24개 품목을 지정, 물질의 제조·수출입·매매 등을 통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