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경찰계급 정년 폐지 논란의 전제

  • 이윤호 교수
2025.05.31 00:00:00 호수 1534호

최근 경찰 조직은 물론이고 학계와 정치권에서 경찰관의 계급 정년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정 계급의 정년을 폐지해야 한다는 게 핵심으로 보인다.



이 같은 주장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 제도에서 경정은 승진 이후 14년 내 차상위 계급인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강제로 퇴직해야 한다. 경찰대학 출신이나 경정·경감 특채의 경우, 빠르면 40대에 제복을 벗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퇴직 경찰의 재취업이 힘들다는 점이다.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는 검사들과는 달리 퇴직 경찰은 길어진 평균수명을 감안할 때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경찰관이라면 누구나 제때 승진하고 최고의 지위에 도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찰관이 치열한 승진 경쟁에 내몰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진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인사청탁, 정치권에 줄 대기 등이 난무하게 되면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시킬 수 있다.

물론 계급 정년을 손보는 일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폐지한다면 경정 계급자의 누진으로 인사 적체가 심화돼 승진 기회가 줄고, 하위직 경찰관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곧 경찰 조직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점진적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갑작스러운 폐지는 조직구조를 흔들 수 있기에, 조직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년 연장을 제안하고 있다.


문제는 계급 정년 폐지를 논하는 과정에서 전제가 될 법한 사안을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실 경정 계급 정년을 폐지하려면 먼저 경찰의 조직구조가 전면적으로 개편돼야 한다.

경찰의 업무는 현장 근무를 요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사무실이 아니라 현장 인력을 중심으로 조직돼야 한다. 당연히 부채꼴 형태로 구조화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재 경찰 조직은 항아리형이나 첨탑형으로 비유된다. 첨탑형이나 항아리형 구조라는 건 중간 계급이 많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일선서 일하는 현장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 조직이 항아리형, 첨탑형 구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계급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순경에서 경찰청장에 이르는 11개의 계급이 존재하는 한 경찰 조직은 현장 인력보다 관리 인력이 다수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형태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계급구조에서는 모두가 승진할 수 없기에 계급 정년을 손보기 힘들어진다. 정년 폐지 주장에 앞서 현행 계급 체계에 수정을 가하는 일이 먼저인 것이다.

계급 축소라는 조직 개혁을 위해서는 경찰의 입직 창구를 순경으로 일원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경찰의 역할은 강의실에서 교육되고,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현장서 경험으로 익히는 것이다. 모든 경찰 업무를 경험하려면 당연히 순경부터 시작해야 한다.

순경을 건너뛴 채 경위부터 시작한다면 진짜 경찰관의 일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게 되고, 경찰관이라기보다는 관료화된 경찰행정 관리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정 계급 정년의 존폐 논란에 앞서 전제 조건이 논의돼야 하는 것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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