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그러나 연금은 65세부터 지급되도록 단계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럼 그 사이 공백 기간은 누구의 책임인가? 지금 정년 연장 논의는 단순한 고용 정책이 아니라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과 공식 간담회를 갖고 65세 정년 연장 논의를 속도감 있게 논의했다. 국민의힘도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어디를 향하는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밀어낼지에 대해선 아직 이렇다 할 사회적 합의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가 정년을 65세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한국 사회 노동 생태계 전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묻는 정치의 시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정년 60세 제도는 이미 현실과 어긋나 있다. 2020년 65세 이상 인구는 약 8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였고, 올해에는 마침내 1000만명을 넘어 전체의 20%에 이르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오는 2030년에는 1200만명, 국민 넷 중 한 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돌입한다.
2040년이 되면 1500만명, 국민 셋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에 멈춰 있고, 국민연금은 63세에서 65세로 수령 연령을 늦춰가고 있다. 앞으로 60세에 회사를 떠난 사람이 65세까지 소득 없이 버텨야 하는 5년의 공백, 이것이 지금 정년 연장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노동계는 이 문제를 생존의 차원에서 바라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공동 성명을 통해 65세 정년 연장은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요구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고용 기간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노동력을 국가가 끝까지 활용하고 연금 수령 전 발생하는 소득 단절을 공적 제도로 메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제조업이나 공공기관 현장의 노동자들은 건강하고 일할 의지가 있는데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밀려나는 건 사회적 낭비라고 말한다. 일본처럼 기업이 정년 이후에도 계속 고용을 유지하도록 법적으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경영계의 고민은 단순하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정년 연장이 현실화될 경우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한국의 기업 임금체계는 나이와 근속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만 늘리면, 60세를 넘긴 직원들이 높은 임금을 받으며 오랫동안 머무는 구조가 고착된다.
정년이 연장되면 청년 채용은 뒷순위로 밀리며 기업은 구조조정을 해야 하고, 신규 채용을 멈출 수밖에 없다. 모 중소기업 대표는 정년 65세도 좋지만, 그 전에 기업부터 살아남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정치권도 속도를 내고 있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정년 연장 태스크포스를 ‘정년 연장 특별위원회’로 격상시키며 연내 입법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국민의힘도 “기대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의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목소리가 있다. 바로 대한노인회다. 대한노인회는 “65세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국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1981년에 규정된 60세 노인 연령 기준을 2035년까지 70세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노인회는 정년 연장은 단순히 노동시간을 늘리는 제도가 아니라, 존중받으며 계속 일할 권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 편의점, 마트, 배달, 경비 등으로 밀려나는 ‘노인형 노동’이 아닌, 경험과 책임을 인정받는 ‘노년형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년 65세 연장은 연금 수령 이전의 소득 공백을 줄일 수 있고, 기술과 현장 경험을 갖춘 숙련 노동력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특히 고령자 노동 참여가 늘어나면 국민연금 재정도 안정되며, 급격히 줄어드는 생산가능인구도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하다. 청년 고용의 감소나 기업 인건비가 폭증할 위험도 있다. 임금피크제나 직무급제 같은 임금 구조 개선 없이 정년만 늘리면 지속 가능하지 않고, 세대 갈등이 더 심화될 우려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방식이다. 지금 정부와 국회는 임금체계 개편, 직무 전환 교육, 연금개혁 없이 법으로 정년만 늘리려 하고 있다. 건물의 기초는 그대로 두고 지붕만 더 높이 쌓으려는 셈이다.
청년은 “아버지는 회사를 떠나지 않고, 우리는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반면 노인층은 “일할 힘이 있는 데도 밀려나는 것이 더 서럽다”고 말한다. 이 두 목소리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려면 정년이라는 숫자 하나를 바꾸기보다 노동 생태계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일률적인 정년제보다 산업과 직무에 따라 유연한 계속고용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나이가 아닌 역할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생산성 기반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60대 노동자가 제2의 직업을 가질 수 있게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
정년은 숫자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다. 늦게까지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의 진짜 문제는 수명의 길이가 아닌, 그 길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삶을 살도록 사회가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65세 정년은 그래서 제도가 아니라, 인간 존엄을 묻는 질문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노년은 버티는 시간이 될 수도,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