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준석계’ 천하람 “윤핵관 발 못 붙이도록 할 것”

3일 소통관 기자회견 “당을 미래로 이끄는 대표되겠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친 이준석계’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이 3일 “담대한 도전을 하겠다”며 3·8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했다.

천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과거로 퇴행하는, 뒷걸음질 치는 국민의힘을 다시 앞으로, 미래로 이끄는 당 대표가 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당권주자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하고 있는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팔이 논란’에 대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대통령에 대한 우스울 정도의 충성 경쟁, 윤심팔이는 대통령과 국민의힘 모두의 지지도와 신뢰도를 갉아먹는 주범”이라고 직격했다.

이어 “현재 우리당은 여당이 되자 못된 옛날 버릇이 나오고 있다. 국민이 아닌 대통령 개인 또는 대통령과 가깝다고 알려진 사람에게만 충성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이 총선서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하더라도 국민들의 신뢰가 부족하면 식물정부가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 해를 끼치고 작게 만드는, 그래서 당과 정치를 망치는 간신배들은 더 이상 국민의힘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향식 공천 ▲지역구 유권자들과 당원 평가로 상위 20%에겐 인센티브 부여 등을 담은 국회의원 중간평가 제도 ▲하위 20%는 퇴출되는 시스템 가동 등을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다.


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들을 겨냥한 듯 “요즘 과윤불급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윤심팔이가 과해져 오히려 그런 걸 하는 후보가 마이너스라는 뜻”이라며 “나경원 전 의원이 이미 주류에게 공격을 많이 받았는데도 초선 의원들이 굳이 연판장을 써야 했나 싶다”고 비판했다.

4배수로 가려질 컷오프(예비경선) 통과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최선을 다해 컷오프에 임해야겠지만 확신한다. 요즘 당원들에게 응원 문자와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날 천 위원장의 출마 기자회견장에 동참한 하태경 의원은 “천 위원장은 ‘한국의 오바마’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지난 총선서 당이 발굴한 최고의 인재이자 유망주”라고 치켜세웠다.

이로써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게 될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는 김기현·안철수·윤상현·조경태 의원,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회장을 지낸 강신업 변호사, 김준교 전 자유한국당 청년최고위원, 차 위원장이 예비경선을 치르게 됐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차 위원장은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 중 유일하게 30대로 이번 전대서 ‘젊은 나이’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민의힘 당원은 지난 20대 대선을 기점으로 약 80만명 이상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된다. 대선 당시 ‘젊은 피’ 이준석 전 대표를 보고 대거 유입됐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수도권 및 2030세대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응집력 여부에 따라 이변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기존 텃밭으로 평가되고 있는 영남권보다 수도권 당원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으며 연령대는 50대 이상의 중년층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50대 이상의 당원들이 현역 후보들에게로 지지가 분산될 경우 천 위원장으로서는 다소 유리한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는 셈이다.

 


아래는 천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천하람입니다.

저는 용기 있고, 소신 있는 도전자입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저는 지난 2020년 총선 당시 전남 순천에 출마했습니다. 영남과 호남에서 모두 사랑받는 정치인으로 성장하겠다는 큰 목표를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득표율도 미미했고, 모두가 선거 끝나면 바로 도망치듯 짐 싸들고 서울이나 대구로 돌아가겠거니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저희 가족, 8살이 되어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부터, 저희 장인, 장모님까지 순천만정원의 도시 순천에 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큰 목표를 갖고 도전하면 뭐라도 이룹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저희 당협은 전라남도에서 유일하게, 27년 지방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의힘 소속 순천시의원을 배출했습니다.

저는 이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담대하게 도전합니다.

물론 큰 도전입니다. 그렇지만 도전 하면 안 될 이유는 있습니까?

저는 과거로 퇴행하는, 뒷걸음질 치는 국민의힘을 다시 앞으로, 미래로 이끄는 당 대표가 되겠습니다.

여러 후보들이 총선승리에 본인이 적임자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현재 국민의힘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대로 짚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작정 본인이 유리하다는 내용없는 무의미한 발언만을 거듭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현재 우리당의 문제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여당 되니까 못된 옛날 버릇 나온다’는 것입니다.

‘정권교체를 이뤄주신, 대통령을 선출해주신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 또는 대통령과 가깝다고 알려진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대통령에 대한 우스울 정도의 충성경쟁, 윤심팔이는 대통령과 국민의힘 모두의 지지도와 신뢰도를 갉아먹는 주범입니다.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윤석열정부는 식물정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더해 또 다시 5년의 천금같은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물론이고, 체질개선 없이 이재명 대표 덕분에 운 좋게 총선승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신뢰가 부족하면 식물정부가 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하려는 연금, 교육, 노동의 3대 개혁은 어느 것 하나 간단한 것이 없습니다. 단기간의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장기적인 국익을 위해 개혁을 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은 국민들이 정부와 여당의 방향이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길게 보면 옳다는 점에 대해 신뢰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상당한 수준의 신뢰자본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지금 주류, 친윤, 윤핵관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박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규정을 바꿔서 특정인의 유·불리를 초래하거나, 어안이 벙벙하게 비주류로 전락한 당내 중진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기 위해 초선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정치집단을 국민들이 과연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평소에 정치를 잘해야 신뢰가 쌓이는 것입니다.

대통령에게 충성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공당의 주인을 참칭하는 사람들이 결국 대통령과 당에 가장 큰 해를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친윤, 윤핵관들은 대통령을 작게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우리 당원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습니다. 그런 대통령을 친윤, 윤핵관만의 대통령으로 작아지게, 혹은 작아보이게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친박의 대통령이었다가, 진박의 대통령이었다가, 문고리의 대통령으로 점점 작아져 결국 파국을 맞이했던 과거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대통령에게 해를 끼치고, 대통령을 작게 만드는, 그래서 결국 우리당과 대한민국 정치를 망치는 간신배들은 더 이상 국민의힘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저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유권자가 아니라 권력자, 공천권자의 눈치만 보는 구태를 타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겠습니다.

대표적인 것들만 먼저 말씀드리면, 상향식 공천과 국회의원 중간평가 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유권자와 당원의 선택을 따르는 상향식 공천으로 공천권을 국민과 당원께 돌려드리되, 상향식 공천의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까지 마련하겠습니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해당 지역구 유권자와 당원들이 매년 평가할 수 있도록 해서, 상위 20%에게는 ‘재공천 보장’ 수준의 강력한 인센티브를 주겠습니다. 하위 20%는 퇴출하겠습니다.

공천권자에게 줄 서지 않더라도, 일 잘하는 의원은 승승장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대로 공천권자에게 아무리 열심히 줄 서더라도 일 못하면 집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공천권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상향식 공천과 국회의원 평가제도를 도입할 자세가 돼있는지, 다른 당 대표 후보들께 분명히 묻겠습니다.

저는 비겁하지 않지만, 호전적이지도 않습니다. 부드럽지만 부끄러운 길로 타협하지 않습니다.

묵직하지만 단호하게, 국민의힘을 더 많은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당, 우리 당원들이 어디 가서든 당원임을 자랑할 수 있는 당당한 정당으로 확고히 세우겠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체질만 개선한다면 총선 승리는 자연히 따라오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이미 망가진 상태입니다.

우리만 잘하면 됩니다. 우리만 잘 하면 국민들은 국민의힘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저는 국민의힘이 앞으로 전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힘이 천하람 당대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개혁하고 혁신하겠습니다.

저의 담대한 도전, 큰 꿈에 함께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par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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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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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