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취재>한솔그룹 ‘국보 전쟁’ 막전막후 ②극비 공수 작전

2008.10.11 15:30:12 호수 0호

국보급 유물을 놓고 한솔그룹과 전주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 전주 한솔종이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국보 1점과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다툼의 도화선이다. 국내 ‘제지업의 대명사’한솔그룹은 과거 매각한 종이박물관을 되찾아 다른 지역에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전주시는 ‘종이의 고장’인 만큼 이전은 물론 문화재 반출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사유재산에 침해할 권한이 없다”는 한솔그룹과 “지역의 자존심을 강탈하려 한다”는 전주시간 벌어지고 있는 팽팽한 설전은 전북도와 도내 문화예술계가 연합전선을 구축해 전주시 편에 가세하면서 파장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밀창고까지 소리 소문 없이 ‘살살’

지난해 3월 전북 전주 팔복동 한솔제지 전주공장에 세워진 전주종이박물관 이전 소식이 지역에 전해지자 전주시는 물론 전북도, 전북 문화예술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급기야 도내 18개 문화·사회단체가 참여한 ‘종이박물관 유물지키기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결성됐다. 이들은 “전주시가 ‘종이의 고장’인 만큼 종이박물관 문화유산 반출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수차례 매입 제의 거절
지난해부터 계속된 종이박물관 이전 반대 목소리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자 한솔그룹은 성난 지역민심을 달래기 위해 자구책을 내놓았다. 한솔그룹은 노스케스코그가 지난해 7월31일 종이박물관 이전을 염두에 두고 같은 부지에 세운 ‘전주한지박물관’건립을 지원했다.
한지박물관은 종이박물관 대체용으로, 전주시가 추진한 ‘한브랜드’사업과 연계해 신축한 것이다. 또 종이박물관에 전시된 일부 유물도 한지박물관으로 옮겼다.
노스케스코그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솔 측은 일단 박물관의 소유만 가져갈 것이다. 박물관 소유를 가져간다고 해서 소장품까지 모두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성난 민심을 달랬다.
뿐만 아니다. 이전설이 구체화되자 다급해진 전북도와 전주시는 한솔그룹 측에 종이박물관 문화재 매입을 제의했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실무진에 “한솔그룹 소유 문화재 중 보물 3∼4점 등 일부를 매입해 한지박물관에 보관·전시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전북도와 전주시 문화관광과 관계자들은 한솔그룹 측과 여러 번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도 관계자는 “한솔문화재단 인사들과 여러 차례 만나 종이박물관 문화재 매입 의사를 타진했지만, 그룹 재산이란 이유로 매번 거절당했다”며 “제의 중간에 도지사도 한솔 경영진을 만나 전북 한지산업육성에 동참해 줄 것을 건의했지만, 당장 매각 계획이 없다는 답변만 들은 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문화재 반출 논란과 매입 의견이 오가는 사이 한솔그룹이 국보급 유물들을 감쪽같이 그룹 본사로 옮겼다는 점이다. 전주시에 따르면 한솔그룹은 지난 7월10일 종이박물관 문화재(국보 1점, 보물 7점) 보관 장소를 서울 강남 역삼동 한솔그룹 사옥으로 변경했다. 앞서 지난 6월 한솔그룹은 노스케스코그로부터 종이박물관을 재매입한 상태였다.

종이박물관 이전 반대여론 거세지자 극비리 문화재 반출
소유지 변경 접수 전 유물들 이전 “먼저 나르고 신고”

그러나 한솔그룹은 전주시에 소유지 변경 신고 전 이미 유물들을 서울로 실어 날랐다. 물론 전주시와의 사전 협의는 전혀 없었다. 전주시는 나중에 한솔그룹으로부터 문화재 이전 신고를 접수받고 반출 사실을 알았다. 한솔그룹이 지역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극비리에 수송을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전주시 담당 공무원은 “한솔그룹은 노스케스코그가 매각된 지난 6월 아무도 모르게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를 서울 본사로 옮겨갔다”며 “유물들을 반출한지 무려 한달이 지난 후에야 시에 소유지 이전 내용을 신고했다”고 전했다.
전주 시민단체 관계자도 “종이박물관 이전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한솔그룹이 지역민심을 안심시킨 뒤 귀중한 유물만 몰래 빼갔다”며 “나머지는 그대로 종이박물관에 전시돼 있지만 일반적인 전시품으론 박물관 기능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발끈했다.
한솔그룹 측은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유물들을 소유지 이전 신고 전 옮긴 것은 맞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노스케스코그가 다른 업체에 매각되면서 유물의 안전한 보존·관리 차원에서 서울 본사로 이전해 보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모태 공장이란 상징적 의미에서 박물관을 건립했는데 지금은 남의 손으로 넘어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반출’이란 단어 표현에도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종이박물관 유물들이 그룹의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도와 시, 시민단체들이 간섭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

사라진 국보 어디에?
그는 “말이 국보고 보물이지 서울 인사동에 가면 유사한 물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흔한데 왜들 집착하는지 모르겠다”며 “더욱이 이 유물들은 전주 지역 문화재가 아닌 대부분 타 지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솔그룹은 극비 공수작전을 통해 옮긴 유물들을 현재 강남 역삼동 사옥 내 ‘비밀 아지트’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 지하에 마련된 ‘수장고’가 그곳이다. 이 수장고는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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