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 아니 평생을 좌우한다. 캐스팅 비화 하나쯤 안 가진 작품이 없다. 특히 주연급 배우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현실은 관계자들을 스타 캐스팅에 목숨을 걸도록 내몬다. 제작사들은 캐스팅이 확정되면 라인업 발표와 함께 캐스팅 이유를 밝힌다. 배우들이 영화에 캐스팅된 숨겨진 사연을 알아본다.
권상우 <포화속으로> ‘나이가 많아서’ 캐스팅 불발될 뻔
류승범 <방자전> 내용 비틀더니 캐스팅도 선입견 비틀어
한류스타 권상우는 한국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현장에 뛰어든 학도병 71명의 슬픈 실화를 다룬 영화로 제작비만 113억원이 들어간 초대형 전쟁 블록버스터 <포화 속으로>에 나이가 많아서 캐스팅이 안 될 뻔했다.
김승우, 권상우 캐스팅
“걱정 많이 했다”
권상우가 도전한 역할은 바로 10대 학도병. 35살의 나이에 교복을 입고 11살 어린 최승현과 호흡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포화속으로>에 함께 출연한 김승우는 “처음에 권상우가 캐스팅 됐다고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권상우가 무사히 영화에 합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평소 장난기 많고 재치만점인 권상우지만 촬영 현장에선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배우로 소문나 있는 만큼 10대 학도병 역할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권상우는 “데뷔할 때 당시의 느낌으로 촬영에 임했다. 나는 나이가 많아 캐스팅 안될 뻔했다”며 “최승현이 스토리를 끌고 가는 인물이다. 분량도 많은데 액션도 보여줘야 하고 디테일도 보여줘야 했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승현이 훌륭하게 잘 해내서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개성 있는 배우 류승범의 <방자전> 캐스팅엔 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한국 최고의 로맨스이자 4대 국문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춘향전>은 신분을 뛰어 넘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기생인 춘향을 사랑하게 되나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면서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이후 춘향은 신임 부사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해 옥에 갇히고 몽룡은 장원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로 내려와 춘향을 구한다. 그러나 영화 <방자전>은 이러한 <춘향전>을 과감하게 비틀었다. 제목처럼 이야기의 중심은 몽룡의 몸종인 방자다.
백성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준익 감독 ‘비밀병기’
1000만배우박중훈 <내 깡패같은 애인>꽃미남이 아니라서
영화에서는 방자가 춘향을 사랑하게 되고, 몽룡은 원작처럼 지고지순한 남자가 아닌 출세를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나쁜 남자’로 그려진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방자전>은 캐스팅마저도 선입견을 뛰어넘었다. 단정하고 지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김주혁이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방자로, 야생마처럼 자유분방해 보이는 류승범은 출세를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이몽룡으로 각각 출연한다.
이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캐스팅에 대해 <방자전> 김대우 감독은 “금기를 다루려고 하다 보니 기존에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변주하고 캐스팅까지도 보는 이들의 상상을 허락하지 않는 전복을 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류승범은 “이몽룡 역이라고 제안 받고 캐스팅이 잘못된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며 “<춘향전>에 등장하는 몽룡과는 많이 다르고 원작과는 달리 그림자 같은 인물로 등장하며 정의로 대변되던 몽룡이 출세를 위해 야비한 지략가로 그려진다”고 밝혔다.
<내 깡패같은 애인>에서 1000만 배우 박중훈이 17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린 여배우 정유미와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박중훈이 꽃미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중훈이 맡은 역할은 바로 뒷골목 삼류 건달. 박중훈이 아니었다면 소화해낼 수 없는 캐릭터다.
<방자전> 김대우 감독
“전복을 꾀하고 싶었다”
<내 깡패같은 애인> 김광식 감독은 “극 중 캐릭터가 깡패다보니 꽃미남이 아니길 바랐는데 그 중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 박중훈 같았다. 박중훈처럼 유머러스하고 개성 있는 사람이 건달 역할을 해야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캐스팅 했다”고 전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통해 호평 받은 신예 배우 백성현. 백성현은 이준익 감독의 비밀 병기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바로 1000만 영화 <왕의 남자> 오디션 현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준익 감독은 공길 역 오디션에 참여했던 백성현을 눈여겨봤다. 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지 않아 5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이준익 감독은 “백성현의 캐스팅에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하지만 내 대답은 늘 그렇듯 하나다. 같은 나잇대에 백성현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없다”며 캐스팅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캐스팅 비화의 가장 큰 이유는 영화에 대한 불가측성 때문이다. 오죽하면 ‘흥행 여부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말이 생겼을까. 그런 탓에 제작자가 캐스팅에 고민하는 것 못지 않게 배우도 출연작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저것 재다 보니 출연을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욕심은 나지만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아 저울질이 한창일 경우 모호한 말로 제작자를 붙잡아두는 사례까지 있다. 그러다 다른 스케줄이나 건강상 이유를 들어 막판에 출연을 번복해 버리기도 한다. 절친하던 사이가 원수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한 배우만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는 ‘닭 쫓던 개’ 꼴이 되기 십상이기에 제작자들도 2~5순위 후보들을 ‘히든카드’로 숨겨두는 추세다. ‘인생의 축소판’ 이라는 영화. 그 속에서도 순간의 선택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니 캐스팅이야말로 가장 드라마틱하다.
우여곡절 캐스팅 배우
남다른 진정성 보여
한 연예계 관계자는 “우여곡절 끝에 캐스팅된 배우들은 역할에 대한 애착도 다른 배우들보다 남다르다”며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를 관객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