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의 날이 밝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명숙 전 총리를 ‘대표주자’로 세우고 진검승부를 시작한 것. 이에 따라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물론 여야 모두 서울시장 선거에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울시장은 전체 선거 중에서도 중요한 정치적 위치를 점하고 있어 ‘지방선거의 꽃’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차기 대권으로 가는 발판’으로 평가되는 만큼 각 당이 내세운 잠룡들로 2012년 대선을 미리 볼 수 있다는 것도 여야가 사활을 거는 이유다. 천안함 정국으로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어든 대신 서울시장 선거로 모든 시선이 모아지면서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승패가 지방선거의 향배에 미치는 영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여야가 힘을 모으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여야 6·2지방선거 성적표 “서울시장이 절반”
재선 나선 오세훈, 차기 대권도전에 발목 잡혀
서울시장 선거가 6·2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다. 이전에도 서울시장 선거는 지방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선거이자 차기 대권주자들의 승부처였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그 정도가 유난스럽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서울시장 선거가 지방선거의 절반”이라고 말할 정도다.
중요한 선거니 만큼 여야도 고심 끝에 후보를 선정했다. 한나라당이 선택한 후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통해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됐다. 경선 내내 다른 후보들과 확연한 지지율 차이를 보여 온 오 시장은 3761명이 참여한 현장투표에서 67.2%에 달하는 2529표를 얻어 나경원(970표, 25.8%), 김충환(262표, 7%) 의원을 압도적 표차로 눌렀다. 그는 서울시민 각 2000명을 상대로 한 3개 기관 여론조사에서도 크게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옥석가리기
고르고 고른 대표선수
오 시장은 “서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의 의미를 차지한다고들 하는데, 자칫 야당 시장이 탄생하게 되면 국정과 시정이 엇박자를 내게 된다”며 국정안정론과 함께 지난 4년간의 시정경험을 내세웠다.
그는 “우리 경제도 막 회복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좋은 기운이 엇박자로 꺾이게 되면 참 안타까운 일이고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면서 “한명숙 전 총리의 경우 수사 받으랴, 재판 받으랴 마음을 많이 뺏겼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깊이 고민할 시간이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지 않았겠느냐”고 야권을 향한 공세도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이 선택한 후보는 한명숙 전 총리다. 한 전 총리는 지난 6일 서울시장 후보자 추천을 위한 국민참여 경선대회를 통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총리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명박, 오세훈 시장이 부수고 파헤치고 망가뜨린 지난 8년의 빼앗긴 서울을 다시 찾아드리겠다”며 “개발과 건설의 이름으로 정든 삶터를 쫓겨나지 않는 서울, 겉치레보다 사람과 삶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그런 서울시를 가질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는 오늘 허위와 조작을 일삼는, 무능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모든 민주시민세력이 단결해 승리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6월2일 반드시 이겨서 오만한 정권엔 준엄한 경고를, 국민들에게는 변화와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과 한 전 총리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되면서부터 여야의 ‘정권안정론’과 ‘심판론’이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야는 상대편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기 위해 전략마련에 들어갔다. 오 시장의 아킬레스건 중에는 ‘대권도전’이 아픈 곳이 되고 있다. 오 시장이 이미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된다고 해도 임기를 다 채우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도 이 같은 점이 문제가 됐다. 나 의원이 오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임기 중반인 2012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혀 파문이 인 것.
나 의원은 자신이 경선 출마를 결정할 즈음인 지난 3월을 전후해 “(오 시장이 나에게) ‘다음 서울시장 선거는 보궐선거가 있는 것 아니냐, 그때 나 의원이 출마하면 어떠냐’고 개인적인 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원희룡 의원도 “내가 1~2월 나 의원에게 도움을 많이 요청했는데 나 의원이 당시 오 시장이 자신에게 ‘왜 올해 나오려고 하느냐, 이기기 어려울 텐데. 2년 뒤 보궐선거가 있으니 그 때 수월할 것 아니냐’는 말을 나에게 말해왔다”며 “나는 그래서 ‘2년 뒤까지 생각하면서 후보들의 의욕을 꺾어놓으려고 하느냐’고 얘기한 기억이 있다”고 거들었다.
나 의원은 오 시장이 ‘서울시장 임기 완주 서약식’에 불참한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나 의원은 “과거 이회창, 김대중 당시 총재들이 늘 대선 불출마를 이야기하고 선언했으나 글로 적은 게 없었고 결국 다시 나왔다”며 “오 시장이 서울시장이 됐을 때 2년 후 서울시장 선거가 또 있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대선출마를 않겠다는 오 시장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급히 진화에 나서야 했다. 그는 “몇 개월 전 일이었다”고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면서도 “언제가 됐든 나 의원이 내 뒤를 잇는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장직을 하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주는 후임자가 왔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생기는 것은 모든 선출직 시장의 생각일 것이다. 민선 4기 서울시정의 정책 일관성을 위해 나 의원이 그 중 한 분일 것이라는 뜻에서 시기가 언제가 됐든 제 뒤를 이어 서울시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덕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선 5기 서울시장을 내가 맡게 되면 임기를 완주하는 재선시장이 되겠다고 여러 차례 여러 기회를 통해 말했다. 오늘 답변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도 “임기를 완전하게 꽉 채우는 재선 시장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논란은 본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일 “오 시장과는 환노위 때 같이 활동하면서 말이 통했던 의원으로 기억한다. 시장이 되고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나 보더라”라며 “아무래도 사람은 대선 욕심이 있게 되면 그 순간 변하는 것 같더라”는 말로 오 시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꼬집었다.
발목 잡는 대권
지지율 제자리걸음
그러나 한 전 총리에게도 서울시장 도전은 쉽지만은 않다.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한 달여 간 수뢰의혹에 시달리면서 도덕성에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또한 당내 경선없이 본선에 나섰다는 것도 트집을 잡히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후보 간 토론도 없이 후보를 뽑는다”며 “이것은 단지 야당 후보 개인의 도덕성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 전반의 후퇴”라고 공격했다.
이계안 전 의원이 경선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단 한 번의 TV토론도 없는 ‘100% 국민여론조사 경선’은 사실상 ‘추대’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이 전 의원도 “죽음보다 더 싫은 ‘무늬만 경선’을 거부하고 싶지만 민주당과 민주개혁세력의 승리를 위해 독배를 든다”며 받아들였을 정도다.
이 같은 ‘무늬만 경선’은 민주당 경선의 흥행 실패로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치열한 후보단일화 과정을 통해 경선을 흥행시키고 오 시장이 경선에 나섰던 김충환·원희룡·나경원 의원과 서울시당위원장인 권영세 의원을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한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동안 한 전 총리의 지지율은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수뢰의혹에 대한 무죄 판결에 이해찬 전 총리,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 도종환 시인,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민주당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권노갑 상임고문, 정대철·신기남 전 의원, 장상 최고위원, 문희상·신낙균 의원과 이해동 목사, 안충석 신부,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 위원장 등 시민사회 인사 14명이 고문단 한 매머드급 선거대책위원회, 민주당 후보단일화에도 불구, 오 시장을 향한 추격전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는 것은 한 전 총리에게도, 민주당에도 뼈아픈 일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전은 이제부터다. 그리고 본선에서는 ‘지원군’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박근혜 전 대표를, 한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효과’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박 전 대표에게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올해 초 박 전 대표를 찾아 신년인사를 했으며 서울시장 경선과정에서 친박계 진영·구상찬 의원이 일찌감치 오 시장 캠프에 합류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당선된 뒤에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박 전 대표가)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청했다.
여야 총력전
‘심장’ 움켜쥐어라
오 시장이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후 박 전 대표가 축하전화를 해 오면서 지원유세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오 시장은 “(박 전 대표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았다”며 “(박 전 대표에게) 선거에 대한 지원요청도 당연히 할 것”이라고 밝힌 것.
한 전 총리에게는 노무현 서거 1주기를 기해 불어올 ‘노풍’이 있다.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이후 열흘 내로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친노 진영이 한 전 총리를 지원하고 있는데다 그가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의 장의위원장을 지낸 ‘맏상주’라는 점은 ‘노풍’의 직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정가 한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 지원에 나설지, 노풍의 영향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박근혜’ ‘노무현’이라는 이름의 영향력은 한동안 서울시장 선거판을 흔들 것”이라면서 “산 ‘박근혜’와 죽은 ‘노무현’ 중 누구의 파급효과가 더 클지 살펴보는 것도 서울시장 선거의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