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통령’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비리가 도를 넘어섰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뱃속을 채우기 바빴던 이들의 행각이 연일 드러나고 있는 것. 군수와 시장들의 부정부패가 줄줄이 밝혀지면서 구속행진도 계속 되고 있다. 민선 4기 기초자치단체장 230명 가운데 15%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을 정도다. 이렇다보니 다가올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자질론과 견제론이 부상하고 있다. 도덕성을 갖추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뛸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 자치단체장 토착비리 발표…줄구속 예고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 권한 앞세운 부정부패 속출
지난달 22일 감사원은 지방자치단체장(이하 단체장)들이 저지른 토착비리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드러난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수뢰·인사비리 등의 혐의로 감사원이 검찰에 통보한 4명의 단체장들은 지역 소통령으로서의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민종기 충남당진 군수. 감사원의 자료에 따르면 민 군수는 지난 2005년부터 3년 동안 100억원 이상 공사 수주를 받은 관내 건설업자로부터 3억원 상당의 별장을 뇌물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뇌물수수를 감추기 위한 작전도 치밀했다. 민 군수는 먼저 친형 명의로 별장 건축 허가를 받은 후 형이 건설업자에게 받은 현금을 자신이 건설업자에게 다시 송금해 공사비를 정상적으로 지급한 것처럼 위장했다. 그러나 건설회사 측이 형에게 5만원짜리 돈뭉치 5000만원을 건네는 장면이 금융기관의 폐쇄회로(CC)TV에 찍히는 바람에 뇌물수수 사실이 들통났다.
뇌물수수에 위조여권까지
당진군민 “창피하다”
이뿐만 아니다. 민 군수는 아파트 하도급 업체로부터 3억3000만원 상당의 아파트 한 채를 받았다. 아파트 건축과 관련된 특혜를 제공한 대가다. 이렇게 받아 챙긴 아파트 역시 처제 명의로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 민 군수는 2005년 7월 내연관계에 있던 부하 여직원에게 3억3000만원 상당의 아파트를 사줬고, 2006년 1월에는 10억원이 넘는 자금 관리를 내연녀에게 맡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 10억원 역시 관내 건설업체 등으로부터 받아 챙긴 돈이었다.
이 같은 혐의가 드러나자 감사원은 민 군수를 수뢰, 직권남용, 입찰방해, 부동산 실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또한 당진군수와 공모해 금품을 관리하거나 금품을 제공하는 등의 범죄 혐의자 10명도 뇌물공여, 수뢰(공범) 등 혐의로 함께 검찰수사를 의뢰했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민 군수의 가족은 기자회견을 열어 민 군수의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감사원의 발표 다음날인 지난달 23일, 민 군수의 가족들은 선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민 군수의 부인 A씨는 “몇몇 혐의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자료로 낸 감사원 공보담당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뜻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는 “지난해 12월 대전지검 서산지청에 당진읍 소재 아파트의 구입 경위와 은행대출 등 통장내역을 제출했다”며“감사원이 밝힌 처제 명의의 10억원 가량의 부동산 구입 등 비자금 관리내역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민 군수의 부정부패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감사원의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비리가 더 있을 거라는 추측도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민 군수가 재임할 당시 인허가 사업이 상당수 진행된 만큼 숨겨진 비리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일각에서는 민 군수가 받은 뇌물이 30억+α가 될 거라는 설까지 제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나라당은 서둘러 민 군수의 공천을 거둬들인다고 발표했다. 한나라당 정병국 사무총장은 지난달 23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감사원 감사결과 당 소속 민종기 당진군수와 권영택 영양군수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수사의뢰됐다”며 “두 사람의 공천을 무효화하고 당진 지역에는 공천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민 군수의 경우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공천을 했기 때문에 당이 책임감을 느낀다”며 “당진군수 후보를 내지 않는 게 당진 군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자신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난 이후 민 군수의 행보는 더욱 추악했다. 감사원의 발표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열 것으로 알려졌던 민 군수는 지난달 24일 돌연 해외로 도피하려다 적발된 후 잠적했다. 이 과정에서 위조여권까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대전지검 서산지청과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민 군수는 지난달 2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 칭다오(靑島)로 출국하려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 의해 제지됐다. 민 군수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직접 여권을 검사하는 일반 출입국심사대를 거치지 않고 무인 자동출입국 심사대를 이용하기 위해 여권 관련 정보를 등록하러 갔다. 위조 여권이 들통 날 것을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위조 여권의 흔적을 발견한 직원이 등록 절차를 거부하자 민 군수는 그길로 여권을 놓고 달아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록 민 군수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고 대전지검 서산지청은 결국 민 군수에 대해 지명수배를 내렸다. 또 측근 10명에게도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렇게 도망을 다녔던 민 군수는 결국 도피 5일 만인 지난달 28일 오후 9시쯤 서울에서 검거됐다. 민 군수는 이날 소재를 파악한 수사관들이 검거를 시도하자 승용차를 타고 도주하다 체포됐다.
도피 5일 만에 검거
코미디같은 군수의 행각
이처럼 군을 책임졌던 단체장의 부끄러운 행보에 무엇보다 실망한 것은 그를 믿었던 군민들. 민 군수의 도피 행각이 알려지면서 당진군 홈페이지는 비난글로 폭주했고 당진 인터넷 신문에는 군수와 군의회를 질책하는 글이 넘쳐났다.
한 군민은 “당진이 고향인 게 창피하다. 위장전입으로 방송을 타더니 비자금에 위조여권까지 비리종합세트가 따로 없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단체장은 민 군수뿐만 아니다. 감사원의 발표에 따르면 금품 수수와 인사비리 등으로 이번에 적발된 단체장은 민 군수를 포함해 4명에 달했다.
이들 중 권영택 경북 영양군수는 단체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업체와는 수의계약이 금지돼있는 조항을 무시하고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T건설사에 30억원에 달하는 27건의 공사를 발주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권 군수는 이 대가로 T건설사로부터 2억5000만원을 부인 계좌로 입금받아 부인이 운영하는 스크린골프장 시설비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스크린골프장 건물 임차보증금 3억원도 T건설사가 대신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권 군수는 관내 조경, 문화재공사를 독점하도록 하기 위해 견적서 제출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행각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하면 뇌물 수뢰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노재영 경기 군포시장은 감사원에 의해 인사비리사실이 적발돼 추가 조사를 받을 처지다. 감사원에 따르면 노 시장은 군포시 한 사찰 주지로부터 6급 공무원 J씨를 승진시켜달라는 청탁을 받고 인사위원회를 다시 개최하도록 한 뒤 이미 내정된 승진 예정자를 탈락시키고 J씨를 승진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다. 공천을 위해 돈을 건네다 구속된 단체장도 있다. 이기수 여주군수가 장본인이다. 이 군수는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동의 한 커피숍에서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과 차를 마시다 수행비서를 통해 이 의원 차량에 현금 2억원이 든 쇼핑백을 전했다. 하지만 이 군수는 돈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발견한 이 의원 보좌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이에 대해 이 군수는 “이범관 국회의원에게 건넸던 돈은 공천헌금이 아닌 당 운영경비”라고 해명했지만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이날 이 군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또 사건 발생 직후 한나라당 경기도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이 군수에 대한 후보자 추천자격을 박탈했다.
이처럼 단체장들이 저지르는 비리행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단체장들 중 42%가 기소됐고 15%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는 조사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6년 출범한 민선 4기 기초자치단체장 230명 가운데 지난해 12월까지 15.7%인 36명이 뇌물수수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김진억 전 전북 임실군수는 공사권을 매개로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1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지난 1월 군수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검찰은 지난달 27일 김 전 군수에 대해 징역형을 구형했다. 이날 전주지법 형사합의2부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김 전 군수에게 징역 3년에 추징금 3000만원을 구형했다.
또 신정훈 전남 나주시장은 지난 2월 화훼생산단지 조성을 추진하면서 부담금과 부지 등을 확보하지 못한 화훼영농조합에 12억3000여 만원의 국고 보조금과 시 지원금을 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옷을 벗었다.
단체장 감시 체계 허술
지방의회 기능 못해
이처럼 단체장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단체장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체계가 허술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단체장들은 지역 영주라고 불릴 만큼 그 지역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는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지자체와 의회를 특정 정당이 독식하다 보니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비리를 대충 넘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일부 단체장들은 인사권과 사업 인허가권, 예산집행권 등을 손에 쥐고 각종 비리를 저질렀고, 그 비리가 감사원의 조사와 검찰의 수사 등으로 하나둘씩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렇다보니 다가올 6·2 지방선거에서는 도덕성과 사명감 등의 자질을 제대로 갖춘 단체장을 뽑아 비리의 고리를 끊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가진 권력에 비해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너무 낮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건강한 방식으로 발전하길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