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치다(聲東擊西)

2010.04.27 09:26:38 호수 0호

MB 천안함 정면돌파 속 숨은 책략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정국의 전면에 나섰다.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 시종일관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던 이 대통령이지만 한주간 일정표를 온통 ‘천안함’으로 채우려는 분위기다. 천안함 희생 장병 추모 연설을 시작으로 여야 3당 대표와의 오찬, 7대 종단 대표들과의 오찬 등으로 한발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신중한 태도는 여전하지만 시시때때로 국가안보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원인규명 후 단호한 대처를 강조하는 데도 좀 더 힘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와 여당에서는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다.

생방송 연설, 각계 지도자와 회동 통해 민심 달래기
반응은 신중, 대처는 확실하게…공격본능 끌어낸다
천안함 정국 속 세종시·4대강사업 홍보 착착 진행



4월 넷째 주 이명박 대통령의 일정표에는 ‘천안함’이 빠지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고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도 천안함과 함께 숨을 쉬었을 정도다.

이 대통령의 천안함 일정은 지난 19일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라디오·인터넷 연설’로 시작됐다. 격주로 방송해오던 라디오연설을 통해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추모한 것.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통상 방송 전 주말에 녹음한 후 월요일 오전 방송해왔지만 이번에는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이날 방송은 라디오는 물론 KBS, MBC, SBS 등 공중파 TV 3사와 YTN, MBN 등 뉴스전문 케이블TV 및 라디오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날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망·실종자 46명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여러분에게 약속한다”며 “대통령으로서 천안함 침몰 원인을 끝까지 낱낱이 밝혀낼 것이다. 그 결과에 대해 한치의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면 나선 MB
천안함 정국 대처법


또한 “철통같은 안보로 나라를 지키겠다. 우리 군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겠다. 강한 군대는 강한 무기뿐만 아니라 강한 정신력에서 오는 것”이라며 군 기강 확립을 다짐했다.

이날 방송과 관련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원인조사와는 별개로 희생자 애도의 분위기도 중요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도 국가원수의 입장에서, 또 군 통수권자의 입장에서 애도 분위기에 마음을 같이 하고 이 분위기가 전국민적으로 확산, 지속될 수 있도록 라디오 연설을 통해 애도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계획을 갖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20일에는 여야 3당 대표와 오찬을 함께 하며 천안함 사태와 관련된 의견을 나눴다. 이 대통령은 “조사 결과 나올 때까진 대통령도 무어라 말하기 매우 어렵다”며 “북한 개입여부는 확실한 물증이 나와야 밝힐 수 있는 만큼 여야 정치권도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여야 대표들도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명확히 파악되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만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의혹을 갖고 있고 정부의 발표나 그간의 대처상황에 대해 불신이 있다”며 “정부가 책임있게 원인을 규명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 그리고 안보체제 허점에 대한 국민 불안 해소에 나서야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또 “조사과정을 독점해선 안 된다”면서 민·군 합동조사단 구성과 관련, “조사대상이 될 군이 조사의 주체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21일에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김희중 천주교 주교, 이광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김주원 원불교 교정원장, 임운길 천도교 교령, 최근덕 성균관장,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장 등 7대 종단 지도자 초청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이어 22일에는 박세환 전 육군참모총장, 백선엽 예비역 대장, 김종호 성우회 회장 등 군 원로 22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천안함 사태에 대한 조언을 들었으며 23일에는 전직 대통령들을 만났다.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해 천안함을 비롯한 현안에 대한 폭넓은 대화를 나눈 것. 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에 초청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일정표로 본 천안함 정국을 맞는 이 대통령의 대처법은 우선 ‘귀’를 열어놓는다는 것이다. 여야 대표, 전직 대통령, 군 원로, 종교단체 지도자 등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을 만나 민심의 향배를 가늠하고 ‘국민적 화합’을 이끌어 내려 한 것.

여야 대표들에 대한 회동 제안과 관련, “천안함 사태에 대해 설명하고 여야 대표들의 지혜를 구하고 협조를 당부하기 위한 자리”라며 “이미 정부는 천안함 사태를 국가중요안보상황으로 규정했다. 이 중요한 안보상황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단합으로, 국민적 단합을 이룰 수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을 해 달라는 당부를 구하고 지혜를 구할 것”이라는 청와대의 설명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 대통령은 조만간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 대국민 담화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함수가 인양된 후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윤곽이 잡힐 즈음 천안함 희생 장병 추모 연설에 이어 천안함 침몰사건에 관련해 직접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

민심 향해 귀 열고
국민 향해 홍보전 가동


정치권은 이와 관련 ‘촛불효과’에 대한 교훈을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이 정권 초 촛불정국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국민 분열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것이었을 것”이라며 “천안함 사태와 관련,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추모 연설을 하는 등 ‘민심 달래기’ 행보를 계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는 좌우의 이념 대립을 중화시키는 동시에 천안함 사태의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천안함블랙홀’의 그림자 뒤로 현 정권의 핵심 정책들이 속도를 내고 있다. “천안함 사고의 원인 규명 등 후속 조치는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하지만 이로 인해 국정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된다”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세종시와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에 대한 홍보전이 재가동 된 것.

이 같은 홍보전에는 정부와 청와대 참모진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지난 21일 대전에서 열린 ‘과학의 날’ 기념식 참석을 위해 한 달 만에 충청권을 방문했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세종시에 구축하게 될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우리 기초 연구의 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첨단 지식산업을 육성하는 국부창출의 견인차”라는 말로 ‘세종시 수정안’의 불씨를 살렸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방송,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으로 4대강 사업을 알렸다. 박 수석은 21일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김 교수는 주요 국책사업 때마다 ‘아니면 말고식’ 반대를 했음에도 한 번도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고, 이번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또 ‘아니면 말고식’ 반대를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모습은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어 “김 교수 외에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분들,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분들이 상당히 있다”면서 “이런 분들이 제기한 4대강 사업 집행정지 신청을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에서 기각한 것은 이분들이 주장한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침소봉대됐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도 22일 ‘제4차 환경을 위한 기업 정상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4대강 사업을 “생명보호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대표적인 녹색뉴딜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규의 민주당 부대변인은 21일 “MB정권이 천안함 애도 분위기를 틈타 4대강 홍보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4대강 사업 홍보성 방송 광고에 무려 한달 보름동안 15억원의 홍보예산이 집행됐음을 지적했다.

이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천안함 침몰로 온통 나라가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앞에서는 애도의 분위기를 띄우고 뒤에서는 4대강 사업을 미혹하려는 홍보 멍석을 깔아 놓고 있다”고 일갈했다.

여권은 천안함 사태를 통해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하고 있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원인을 두고 갈등과 분열이 있는데 국가안보에는 하나의 목소리여야 한다”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정파와 이념도 들어설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여권 일각에선 천안함 사태가 빠르게 북풍으로 연결되고 있다. 너도나도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


나경원 의원은 “천안함 인양과 함께 사고원인이 거의 드러나고 있다”며 “현재로선 북한에 의한 것으로 약 80% 정도 강하게 추정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결국 지난 (좌파정권) 10년 동안 4조원을 북한에 퍼준 것이 어뢰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려 했던 간첩 2명이 검거되면서 여권의 안보관련 이슈 띄우기도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20일 검찰이 황 전 비서 암살 지시를 받고 남파된 북한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총국 공작원 2명을 구속했다고 밝히자 여권 전체가 술렁이고 있는 것.

정몽준 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국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북한의 황장엽 암살 기도 사건이 드러나 국민들이 충격을 받았다”면서 “북한의 대남적화 야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날을 세웠다.

대통령은 신중모드
여당은 ‘북풍’ 질주 중

각종 안보이슈들도 속속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당장 2012년 4월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의 연기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북한인권법도 국회 법사위에 상정됐다. ‘대북 인도적 지원 금지법’이라는 이유로 민주당이 반발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4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여권의 움직임에 대해 야권에서는 여권이 천안함과 간첩 사건을 선거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22일 “느닷없이 황장엽씨를 암살하기 위한 간첩사태가 나왔다. 지금이 70-80년대인지, 유신 때인지, 5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황장엽 암살을 위한 간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 발표해 대서특필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누가 봐도 천안함 사건과 간첩 사건을 선거 상황으로 끌고 가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여권의 ‘북풍 부채질’은 쉬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견해다. 당장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인 정두언 의원도 천안함 사태에 대해 “선거기간 중이지만 선거에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있어서도 안되겠다”면서도 “천안함 사태 같은 국가안위 상황이 발생하니까 (세종시 수정 문제에 대한) 여론이 바뀌더라. 수정안이 오히려 충청도에서 높게 나오기도 하고”라며 기대감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되면 여권의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천안함 사태의) 결론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이다.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 분명하고 단호하게 조치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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