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서 ‘포스트 안상수’를 향한 질주가 시작됐다. 차기 원내대표 도전자들은 출사표를 던지고 패기에 찬 일성을 내지르고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당 일각에서는 ‘김무성 추대론’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 시선을 집중시켰다. 친이계 주류 일각에서 불을 지피면서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서 제시됐던 ‘화합카드론’이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김무성 추대론’이 다시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4선 중진에 친이·친박계 화합 안성맞춤
속 복잡한 친박계 “친박이 맞긴 한거야?”
‘김무성 추대론’은 이미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서 제시된 바 있다. 친이계 주류에서 친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해 친이·친박계의 화합을 도모하자는 주장이 나왔던 것.
하지만 추대론의 불씨는 박근혜 전 대표의 일성에 제대로 번지지도 못한 채 사그라졌다. 김 의원은 “이제는 당에 들어가서 일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정치가 결과가 안 좋다고 누구에게 책임을 미루는 식의 게임은 아니지 않냐”고 관심을 드러냈지만 박 전 대표가 미국 방문 중에도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당헌·당규를 어겨가면서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것은 반대”라는 뜻을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꺼졌던 불씨 다시 활활
결국 김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터키로 출국하는 것으로 불출마 의사를 전했다. 터키로 출국하기 위해 찾은 인천공항에서 그는 “(원내대표)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터키에서 귀국한 뒤에는 바로 일본 방문길에 올라 원내대표 경선 참석 자체를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이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4선 중진으로서의 개인적 역량과 친이·친박계의 화합카드라는 점에서 김 의원이 원내대표 적임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추대론은 최근 정권 실세의 추진설과 청와대 정무라인의 김 의원 접촉설과 더해지며 점차 살이 붙고 있다.
당 주류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정병국 사무총장은 지난 18일 “친박이든 친이든 ‘김무성 카드’가 제일 무난하지 않느냐는 얘기들이 많다”며 “주류의 핵심들도 ‘김무성 카드’에 대해 방해할 의향이 없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내대표 경선에 뜻을 보이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김무성 카드’에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립성향의 이주영 의원은 “‘김무성 카드’의 계파 화합이라는 명분이 좋아 당에서 공감을 얻으면 후보에서 물러나고 추대에 동의하겠다”고 전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전처럼 김 의원을 단순히 원내대표로 ‘추대’하는 것이 아니라 당헌·당규에 따른 경선을 통해 ‘선출’한다면 박 전 대표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 의원들 간에 ‘공감대’를 형성한 후 적합한 절차를 지키자는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가 마냥 환영받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 박 전 대표와의 관계로 봤을 때 김 의원을 친박계 대표주자로 볼 수 없거니와 김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가 오히려 친박계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이러한 주장은 지난해 원내대표 추대론 이후 김 의원과 박 전 대표의 불편한 분위기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들의 관계는 잠시 호전기미를 보이기도 했으나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급격히 냉랭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의원이 세종시 절충안을 제시하며 박 전 대표에게 “관성에 젖어 바로 거부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박 전 대표가 이를 “가치없는 얘기”라며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하면서 사실상 결별한 상황이라 ‘화합카드’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현재 “박 전 대표를 잘되게 하려는 생각이니 내 발로 친박을 나갈 생각은 없다”면서도 “(정치엔) 영원한 적군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말로 박 전 대표와 심정적 결별의 뜻을 밝힌 상태다.
이와 관련 정가 일각에서는 사실상 ‘탈박’ 상태인 김 의원이 정치적 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박 전 대표의 반응이다. ‘김무성 원내대표론’이 뜨는 것은 김 의원이 ‘친박’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고 사실상 ‘탈박’ 상태라고는 하나 김 의원도 “친박이 제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때 가서 입장을 확실히 밝힐 때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입장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친박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인 탓에 박 전 대표가 ‘불가’를 외치면 추대론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특별한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김 의원에 우호적인 친박계 인사들의 동조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김무성 원내대표론’의 불씨는 살아나게 된다.
이 때문에 친박계 인사들도 ‘김무성 원내대표론’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김무성 원내대표론’에 대해 “친박 내부에서 논의된 적이 없다”며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를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은 아예 “그 문제에 대해 박 전 대표로부터 들은 바도 없고, 내부에서 거론된 바도 없다”라며 거리를 뒀다.
박심이 추대론 열쇠
이성헌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지금 현재 거론되는 어떤 원내대표 후보보다 정치적 경력상으로 월등히 낫다고 본다”면서도 “김 의원이 원내대표 후보로 나온다면 친박 대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원내대표 추대론’에 대한 김 의원의 생각은 어떨까. 이번에 선출되는 원내대표는 세종시 수정안 처리와 개헌에서의 ‘돌파구’는 물론 현 정권 집권 3년차를 맞아 중요 정책 추진에 보폭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김 의원 스스로의 고민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이 때문일까. 김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과 관련된 질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줄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