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로 정국이 멈춰 서 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안개정국이 펼쳐지고 있는 것. 특히 이번 사태는 사건의 진행 방향과 각종 변수에 따라 역풍이 어느 방향으로도 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천안함 사태의 후폭풍이 6월 지방선거에까지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4월 정국엔 매서운 북풍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 북한의 개입설이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때문에 ‘봄은 왔지만 봄이 오지 않은’ 여의도 정가에선 이를 둔 머리싸움이 한창이다.
의혹만 키운 천안함 사태…정국은 시계제로 상황
지방선거 앞두고 최대 이슈로 부각 역풍 방향은?
정치권으로 옮겨 붙은 천안함 사태의 불길이 좀처럼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들판에 번진 불처럼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에 따라 스스로 꺼지거나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채 흔들리고 있는 것. 결국 현 정국은 천안함 사태의 후폭풍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의 ‘원인’에 주목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되면 이 사건이 겨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대정부질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전방위 공격 나선 야당
여권 ‘전력으로 막아라’
지난 8일 외교·통일·안보 분야와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여야는 천안함 사태의 원인과 관련, 상반된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아직까지 침몰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를 집중 추궁했다. 또한 침몰 직후 천안함 사진을 들며 함수의 외부 충격으로 인한 침몰 가능성을 물었다.
반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했다. 북한이 대청해전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도발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해상 저격부대인 SDV가 천안함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SDV로) 어뢰나 기뢰를 설치해 선체의 가장 취약한 엔진 부분, 함미부분을 격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북한은 KAL기 폭파사건과 아웅산 사건 때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며 “정부와 군은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만 하지 말고 의지를 갖고 국제 공조를 통해 수색한다면 밝혀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옥이 한나라당 의원은 “중동 등에 수출할 정도로 발전된 성능을 지닌 북한의 신형 잠수정이나 어뢰가 이번 사건에 사용된 것 아니냐”며 “천안함 사고 당시일 전후로 북 기지에서 이탈한 상어급 소형 잠수함 2척 중 사라진 1척이 서해로 침투했을 가능성에 대해 정보 수집한 사례는 없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천안함이) 인양돼야 사고원인 규명을 하는데 북이 그런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현 시점에서 어떤 가정만 갖고 예단하고 사안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 장관 외에도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이번 사태가 미칠 정치적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당장 영향력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지방선거가 바짝 다가와 있다.
천안함 후폭풍
지방선거 향해 불까
지방선거에 미칠 천안함 사태의 후폭풍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사태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군의 허술한 대응과 국민의 불안과 의혹을 키운 정부의 태도가 모두 도마 위에 오를 경우다. 이는 현 정권의 중간평가로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여권에 다시없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쪽으로 보면 천안함 사태 이전 터져 나왔던 각종 악재들의 파괴력을 감소시키거나 잠재울 수도 있으며, 이번 사건이 국가 안보와 연관돼 있다는 점은 보수를 결집시킬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른바 ‘북풍’으로 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쏟아진 이슈들은 여권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들이었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큰집’ ‘조인트’ 발언, 안상수 원내대표의 ‘좌파교육’ ‘좌파스님’ 발언, 세종시 문제, 독도 문제, 봉은사 사태, 종교계의 4대강 반대, 한명숙 전 총리 재판,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 구속 등 수많은 폭탄이 터졌다.
여당은 섶(악재 이슈)을 지고 불(지방선거) 속으로 뛰어들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로 이 같은 악재들이 일시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수면도 천안함 사태로 얼어붙은 상황이라 잠재된 폭약이 쉽사리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게 됐다. 이를 두고 이번 사건이 궁지에 몰린 현 정권에게 ‘탈출구’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
이미 여론도 북한 개입설에 동조하는 분위기라 ‘북풍설’은 힘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리서치회사인 GH코리아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 중 46%가 ‘사고가 북한 잠수정의 공격으로 일어났다는 추측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공감’한 것. ‘믿지 않는다’는 반응은 21.6% 뿐이었다. 또한 이들 중 50.1%가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어뢰 및 기뢰 공격’을 지적했다. 배의 자체 결함을 원인으로 본 이는 16%였으며 내부 폭발 사고, 암초와의 충돌에 대한 의견은 각각 4% 안팎이었다.
한 정치전문가는 “‘북풍’은 이미 역대 정권에서 수차례 정치적 악재들을 돌파하는 비상구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면서 “북한 관련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북으로부터 매서운 4월 한파가 불어 닥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천안함 사태의 후폭풍이 지방선거에서 공격카드로 쓰일 것이냐, 북풍이 불 것이냐는 점보다 이 같은 의도가 여론을 만나 훈풍으로 불지, 역풍으로 불지의 여부다. 천안함 사태의 정치적 이용은 자칫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일 국가교육과학기술 자문회의에서 “천안함 문제에 북한이 관련됐다고 바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기는 바라는 사람도 있다”며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전달했다. 원인 규명과 수습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함을 공격하거나, ‘북풍’으로 보수층 결집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사전 차단하고 나선 것. 그리고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는 현 정국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 가장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국내 정치상황은 물론 국제 사회의 동향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 대통령은 “예단하거나 추측해서는 안된다”며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지난 5일 라디오 연설에서도 “원인 규명은 속도보다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정가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북한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민간인의 민·군 합동조사단장 기용과 국제 전문가들의 공동보고서 작성을 지시하면서 “그렇게 해서 결론이 나야 그 결론을 근거로 우리 정부도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나 7일 천안함 사고와 관련, “적당하게 원인을 조사해서 발표하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인정 안 할지도 모른다”면서 “선진국 전문가와 유엔까지 합심해서 조사를 철저하게 하되, 어느 누구도 조사결과를 부인할 수 없도록 조사하고 정부는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하나의 연관 고리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이 대통령이 천안함 사고와 관련, 북한과의 관련성에 신중한 태도로 접근했던 데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문제가 생기면 남북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까지 함께 노출된다는 것. 또한 지난해 말부터 거론된 남북정상회담이나 올 11월 서울에서 개최될 G20 정상회담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숨소리 하나까지 조심스럽게 하는 ‘주변 상황’이 됐다.
때문에 이 대통령은 모든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정가 일각에서 ‘죄지은 사람’들이라는 표현 자체가 선체 결함이나 암초와의 충돌, 내부 폭발 사고 등을 배제한 발언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수상황 한반도
‘풀 건드려 뱀 놀라게 할라’
그러나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이러한 시선에 대해 “대통령의 생각은 정 중앙에 있다”며 “사고발생의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심증을 갖고 한 말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번 문제의 해법을 ‘국제공조’에서 찾으려는 뜻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정치권이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데다 북한 문제의 경우 국내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봤을 때 국제 공조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라며 “북한이 연루돼 있다면 유엔 안보리 제재와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 후속 조치와 관련, 원인규명에 나선 국제전문가들의 공증이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