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사건’이 채 잊혀 지기도 전 부녀자를 납치하고 살해한 택시기사가 덜미를 잡혔다. 충청도 지역에서 택시영업을 했던 범인은 여성 승객들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후 금품을 빼앗고 살해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 영업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택시기사 범죄에 늦은 밤 택시를 이용하는 여성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여승객 살해한 택시기사 잡힌 뒤 추가 범행 줄줄이 드러나
최소한여성 3명 연쇄살인 드러나…5년 공백기간 행적 주목
지난달 26일 오후 11시쯤 송모(24·여)씨는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한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탔다. 여느 택시기사와 마찬가지로 기사 안모(41)씨는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졌고 송씨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아파트 단지 뒷골목에서 안씨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갑작스런 기사의 행동에 당황한 송씨를 향해 안씨는 흉기를 들이대며 위협을 하고 지갑을 빼앗았다. 이뿐만 아니다. 안씨는 뒷좌석에서 송씨를 성폭행한 뒤 준비해 둔 끈으로 손발을 묶고 청 테이프로 얼굴을 7~8회 감은 뒤 트렁크에 감금했다.
시신 싣고 영업
그 후 안씨는 송씨의 지갑에 있던 신용카드를 빼 현금인출기로 갔다. 하지만 비밀번호가 맞지 않아 돈을 찾는데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송씨는 트렁크에서 질식해 숨졌다. 안씨는 다음날 새벽 4시 안씨가 주검으로 변한 사실을 알았지만 그대로 방치한 채 택시영업을 계속 했다. 그리고 28일 오전 1시34분쯤 대전 시 대덕구에 있는 공터에 송씨의 시신을 유기하고 달아났다.
하지만 안씨는 금세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신고를 받고 수사를 하던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공터 주변에 있던 CCTV를 분석했고 한 택시가 번호판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는 점을 포착했다. 시신에서 채취된 용의자의 유전자가 안씨의 것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에 경찰은 탐문수사 끝에 28일 오후 안씨를 검거했다.
경찰에 온 안씨는 “송씨가 신고할 것 같아서 죽였다”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지난달 30일 안씨를 구속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안씨가 수년에 걸쳐 여성승객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라는 것. 먼저 안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지난해 9월26일 오후 5시30분쯤 청주 무심천 장평교 아래 하천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모(당시 41)씨를 살해했다고 자백었다.
당시 김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5일 전 오후 11시쯤 청주시 용암동에서 직장 동료와 회식을 한 뒤 연락이 끊겼다. 안씨는 김씨의 체크카드로 현금 22만원을 인출했었다. 이뿐만 아니다. 안씨는 지난 1월20일 한 여성승객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을 자백했다. 이날 오전 2시쯤 청주 흥덕구 개신동에서 안씨의 택시에 탄 이모(33· 여)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것. 안씨는 술에 취해 잠든 이씨를 한 주택가 골목으로 끌고 간 뒤 미리 준비한 종이테이프로 손발을 묶고 협박해 10만원권 수표 1장과 현금 6만원, 신용카드 등을 강제로 빼앗았다.
이때 위협을 느낀 이씨가 “임신 중이고 하혈을 하고 있으니 살려 달라”고 애원해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이씨의 얼굴에 비닐봉투를 씌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게 한 뒤 산부인과 앞에 버리고 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찰은 2004년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안씨라는 것도 밝혔다. 2004년 10월6일 충남 연기군 송성리 조천변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전모(당시 23세·여)씨에게서 발견된 유전자가 안씨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경찰은 안씨를 집중 추궁해 자백을 받아냈다. 그런데 안씨의 범행행각을 살펴보면 범행과 범행 사이 5년간의 공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기군에서 전씨를 살해한 후 5년이 지나 청주에서 김씨를 살해한 것. 그런데 불과 6개월 만에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미뤄 5년의 공백 기간 동안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
“택시타기 두려워”
이에 경찰은 공백 기간 동안 벌어진 범행 가운데 미제로 남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안씨와의 연관성에 대한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대덕경찰서 관계자는 “충북지방경찰청과 협조해 공백 기간 동안 신고된 부녀자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안씨를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잊을만하면 벌어지는 택시기사 범죄에 밤 늦은 시각 택시를 타야 하는 여성들의 불안감이 더해가고 있다.
야근이 잦아 밤에 택시를 타야 할 때가 많다는 직장여성 이모(27)씨는 “안 그래도 혼자 택시를 타는 것이 늘 찜찜했는데 이런 사건이 터진 뒤에는 택시만 봐도 두렵다”며 “할 수 없이 일거리를 싸들고 일찍 퇴근하고 있어 피해가 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들도 억울하긴 마찬가지. 일부 택시기사의 범행에 모든 택시기사들을 잠재된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특히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마치 공범자가 된 듯 운전대를 잡는 것이 불편하기만 하다고 한다. 이들은 또 여성 승객들이 당한 사건에만 관심을 기울인 채 자신들의 애환에 대해선 무관심한 것에도 섭섭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 택시기사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악용해 ‘꽃뱀’ 행위를 하는 여자 승객도 존재하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선 무관심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같은 애환 속에서 하루하루 할당량을 채우기 바쁜 택시기사들은 뉴스에서 택시기사 범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따가운 시선도 시선이거니와 수입과도 직결되는 탓이다. 이처럼 잊을 만하면 터지는 범죄로 불안에 떠는 승객에게나, 혹시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초조한 눈빛을 보내는 승객을 보는 택시기사에게나 달리는 택시 안이 가시방석인 것은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