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방선거에 침묵하는 진짜 이유

2010.04.06 10:17:48 호수 0호

손상된 이미지 ‘더 망가지면 대선열차 못 탄다’


지난달 26일 천안함이 갑작스럽게 침몰하면서 지방선거 분위기마저 침몰한 상태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가 정치권에 미칠 파장은 아직은 미지수다. 이런 와중에도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관심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른바 ‘박심(朴心)’은 움직일 것인가, 6·2지방선거를 60여 일 앞두고 친박계 의원들은 왜 뽑았던 칼을 줄줄이 칼집에 고스란히 넣고 있을까에 대해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후보에 나서겠다고 했던 친박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고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가 전격 한나라당과 합당한다.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에 침묵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친박중진 광역단체장 출마 불가…의원 한명이 아쉬워
대립과 갈등·반목 이미지 지지율 하락…배수진 쳐야


‘세종시 정국’ 이후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측근을 통해 “공천심사위원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전부다. 이 와중에 부산시장 후보 서병수(해운대기장, 3선), 대구시장 후보 서상기(대구북구을, 재선), 김재원 전 의원, 경남도지사 후보 김학송(진해, 3선), 안홍준(마산을, 재선) 등 지난해부터 출마준비를 해 온 친박계 중진들이 최근 한두 달 사이에 연이어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광역단체장 노렸던 친박
“박근혜 재가 못 받았다”

친박 인사들의 불출마 선언이 계속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친박 인사들은 표면적으로 하나같이 ‘정권재창출’, ‘지역발전’이라는 명분아래 출마를 포기했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도와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뜻을 접은 것’이란 해석이 유력하다. 박 전 대표가 지난 재·보선 때와 달리 공천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것은 주류 측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이 중에서도 서상기 의원의 불출마는 의외다. 그간 서 의원은 적극적으로 대구시장 출마 의지를 공공연히 비춰왔고, 공식 출마선언만 남아 있었던 상태다.
이미 대구지역에서는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런 그가 지난달 12일 갑작스럽게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 의원이 불출마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박 전 대표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서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재가를 얻기 위해서 여러번 박 전 대표에게 출마의사를 타진했으나, ‘알겠어요’라는 답을 받아오지 못한 것. 다만 김 전 의원만이 박 전 대표로부터 대구시장 경선 출마 허락을 받았다가 몇몇 대구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로 뜻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배경에는 박 전 대표의 속내가 숨겨져 있다는 분석이다.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가 2012년 대선을 치르기 위해선 친박계 의원들이 광역단체장이 되는 것보다는 국회에 더 남아 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친이·친박의 대립이 계속 될 경우, 대선이라는 장기레이스에서 전력손실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친박계 한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대선보다 총선이 더 먼저 치러진다.

사실상 총선이 끝나면 친박계 의원들이 더 줄 수 있다”며 “초선일 경우에는 위험하지 않겠나, 적어도 중진 의원 정도 돼야, 공천권을 어느 정도 보장 받을 수 있다. 결국 대선후보 경선시에는 광역단체장보다는 중진 의원 한 두명이 더 있는 게 힘이 된다. 물론 개인의 입장에서는 광역단체장을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지만, 박 전 대표에게는 대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현 상황에서 친박 의원들이 광역단체장에 나설 경우, 박 전 대표에게 미칠 정치적 변수를 따져보면 그들의 불출마 선언에는 좀 더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우선 친박 의원들이 후보로 나선다면 ‘박근혜’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는 것부터가 박 전 대표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사실 대구는 ‘박근혜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곳이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서 의원의 출마를 허락지 않았다. 그만큼 박 전 대표가 짊어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의 공천 학살 이후 선거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지난 재보선에서도 선거 지원유세 요청이 쇄도했지만 ‘선거는 당 지도부가 알아서 치러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더욱이 세종시 문제로 인해 박 전 대표는 심각한 내상과 함께 친이계의 맹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집안의 강도’, ‘어떤 X’ 등 욕설에 가까운 막말이 오가며 감정은 상할 대로 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 후보들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뛰어들고,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면 난감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 자칫 지원이라도 했다간 유력한 대권 후보라기보다는 계파 수장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친박계 한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은요?’라는 말로 전국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던 장본인”이라며 “그런데 친박 후보만 도와주고 친이 후보는 모른 체한다면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느냐’며 분명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친박계 후보를 지원하자니 친이계가 발목을 붙잡고, 지원하자니 도와주기 싫다는 얘기다.



계파 수장, 갈등 고착?
이미지 쇄신필요

이미 박 전 대표는 친이계와 세종시 대결 이후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다. ‘지나치게 원칙만 강조한다’, ‘대화와 타협을 외면하는 고집스런 이미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40%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지난달 심리적 안정선인 30%까지 밀렸다.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 친박계 의원들의 광역단체장 불출마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친박계가 영남과 수도권 등 이른바 노른자위 지역에서 공천심사위원장 자리를 확보했음을 알 수 있다. 대구광역시 공심위원장 서상기, 경북 공심위원장 김태환, 부산광역시 공심위원장 유기준, 경남 공심위원장 이주영, 인천광역시 공심위원장 이경재 의원 등이 친박계다. 그리고 서울시 공심위원장에는 친박계가 강력히 원했던 강재섭계 이종구 의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전문기자는 “친박계가 광역단체장을 포기하는 대신, 기초자치단체장 공천을 책임지는 공심위원장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각 지역의 하부조직을 관리하겠다는 것이 친박계의 히든카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연대 합당도 기초단체장을 노린 승부수”라고 분석했다.

자칫 대선후보 아니라 계파 수장이미지 고착 우려
광역단체장 친이 주고 시·구청장 ‘알짜만 챙겨라’


이와 관련, 여권 최고의 전략가로 통하는 윤여준 전 장관은 <시사창>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에 박 전 대표와 국정의 동반자가 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행동은 그러하지 못했다”며 “박 전 대표는 지난 총선 때 자신의 수족이 배제당하고 친박연대가 생겨난 것을 겪었던 사람이니, 이번 지방선거에서 (친이계측이) 자기 하부조직까지 손보겠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당 대표를 하면서 나름 심어놨던 하부조직을 (친이)주류측이 손대면 자신의 정치적 재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그것을 막으려면 광역단체장을 주는 대신 기초단체장 만큼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속내가 담겨져 있다”고 풀이했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원안에 대해 퇴로를 완전히 끊고 배수진을 치면서까지 승부수를 띄운 것은 2012년 대선을 위한 하부조직관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친박계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광역단체장에 나서지 않고, 대신 알짜 지역의 공심위원장을 차지해 ‘하부조직’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 여기서 공심위원장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사실상 공천 권한은 공심위원들에게 분산돼 있기 때문에 공심위원장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심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공천 할 수는 없어도 공천되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는 것.

즉, ‘친박 공심위원장-다수 친이 공심위원’으로 구성된 공심위에서 친이계 의원들이 자신의 계파 후보를 공천하려고 할 때 공심위원장이 이것을 거부하고 친이-친박 간 경선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친이계 후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막고, 경선을 통해 친박 후보들이 나설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대선 필승’
하부조직 든든해야

그렇다고 친박계가 광역단체장을 친이계가 다 차지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대구는 친이계인 김범일 시장을 측면 지원하거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 등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방안과 부산은 허남식 시장을, 경북은 김관용 지사를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것. 경남의 경우는 친박계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이방호 전 사무총장을 견제하는 데 힘을 모은다는 복안이다. 이것이 친박계의 진짜 속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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