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태로 정치권까지 얼어붙었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태의 여파로 예정됐던 정치 일정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선 것. 특히 출마 선언이나 정책 발표 등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한 떠들썩한 이벤트성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정치인들도 외유 일정을 취소·연기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야 정당들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숨을 죽이고 있다. 여당은 근신 모드에 들어갔으며 야당들도 이번 사태를 정쟁거리로 삼는다는 여론의 역풍을 우려, 논평 등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천안함 침몰에 놀란 여의도, 일정 줄줄이 연기·축소
뒤로 밀린 6월 지방선거 선거운동도 잠정 중단 돼
5, 6월 선거로 꽃피던 정치권에 된서리가 내렸다. 지난달 26일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이로 인해 정국은 ‘시계제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천안함 침몰 소식이 전해진 후 정치권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3박4일간 중국 방문길에 올랐던 정몽준 대표는 급히 일정을 수정해 지난달 27일 하루 먼저 귀국했다. 이후 한나라당은 사태가 종료될 때까지 24시간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비상사태에 ‘올 스톱’
정병국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초계함 침몰 사고와 관련해 중앙당과 전국 16개 시·도당은 우리 군과 정부의 구조활동이 마무리될 때까지 24시간 비상대기 자세로 근무에 임하도록 했다”며 “실종 장병들의 조속한 구조를 위해 당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도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당5역 회의를 열어 사태 파악에 나섰다. 민주당은 사실상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으며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당내에 ‘해군함정침몰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여야는 이번 사태와 관련, ‘초당적인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실종자 수색과 진상파악 등 사태수습이 먼저라는 판단에서다. 또한 이번 사태를 정쟁거리로 삼을 경우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정치적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또한 소속 당원들에게 골프 자제령을 하달하는 등 여론의 역풍을 경계하고 있는것.
이러한 ‘근신 모드’로 당장 6월 지방선거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지방선거 홍보전략’ 발표를 연기했으며 각 당의 지방선거 후보 경선 일정도 수정이 불가피해지는 분위기다.
지방선거 예비후보들도 출마 선언과 선거 활동을 연기하거나 자제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진곤 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은 각각 서울시장 선거와 경기교육감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미뤘으며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김충환·나경원·원희룡 의원, 민주당 이계안 서울시장 예비후보, 김진표·이종걸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진보신당 노회찬 서울시장 예비후보, 심상정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등도 선거운동을 일시 중단했다.
이종걸 의원은 지난달 28일 “해군 초계함 침몰사고에 대한 책임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다음 한 주 동안 경기도지사 경선운동을 일시 중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가 한 인사는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눈앞으로 다가온 당내 후보 경선 일정에 마음이 바쁘지만 천안함 침몰사태를 뒤로 하고 선거에 매진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이 시기에 어떻게 대처했느냐가 선거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천안함 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대규모 정치행사를 갖거나 부적절한 처신을 한 이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전남도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김대식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천안함 침몰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김 전 처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 의원 26명이 참석, 세를 과시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상득 의원은 축사에서 “어려운 곳에서 출마의 결단을 내린 김대식 후보를 돕고자 먼 길을 왔다”면서 “김 후보가 대통령하고 가깝다고 힘 있는 후보가 아니라,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한 속에서 얻은 지식과 열정이 전남 발전을 위해 쓰일 (수 있을) 때 진정 힘이 있는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규모 실종자를 낸 천안함 침몰사고로 온 나라가 위기수습에 정신이 없는 때 이명박 정권의 주축세력인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들은 오직 지방선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국가안보는 안중에 없다”고 일갈했다.
주호영 특임장관도 지난달 27일 KBS <전국노래자랑> 녹화에서 노래를 불러 도마 위에 올랐다. 주 장관은 이날 무대에 올라 ‘희생이 최소화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초계함 사고에 대해 언급했으며 사회자의 권유로 ‘대지의 항구’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곳곳에서 역풍 조짐
주 장관은 “‘서해에서 초계함이 침몰해서 분위기가 안 좋은데 노래까지 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극구 사양했으나 내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행사인데다 참석주민 6000여 명의 흥을 깨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노래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이날 오전 정운찬 국무총리가 긴급 간부회의에서 “모든 공직자들은 유선상으로 대기하면서 추모하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휴일을 보내길 바란다”며 전체 공무원들의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점에서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