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국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정국은 본격적인 6·2지방선거 체제에 들어갔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친이·친박계 간의 피 말리는 공천 경쟁에 돌입했고,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연대를 저울질하는 한편 당내 파벌 경쟁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MB정부의 핵심 실세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청렴전도사 권익위원장’과 ‘여권 실세’ 역할을 넘나들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 위원장이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2지방선거 앞두고 주목받은 ‘왕의 남자’
겉으로 정중동 행보 물밑선 여당 진두지휘?
정치권의 이러한 시각에 대해 해명이라도 하듯,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달 25일 2년 만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날 이 위원장은 ‘세종시에 대해 전화통화로 중립 의원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에 대해 “정치권이 하는 일에 개입 안 한 지가 이미 오래”라고 잘라 말했다.
막강 파워, 다음 행보는?
사실 이 위원장은 2년 동안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민원해결사’로 나섰다. 속초비행장 고도제한 완화 문제, 파주지역 도시가스 공급, 불법거주 상태인 부산 19세대 빌라 입주민 문제 등을 시원스레 해결하면서 정권 2인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1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전국을 돌면서 공무원, 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반부패 청렴 강의를 이어 가는 등 ‘청렴 전도사’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당 실세로서 차기 대권주자에 가까운 행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위원장은 2주에 한 번씩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도 수차례 대통령과 독대를 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정몽준 대표가 장광근 전 사무총장의 사퇴를 두고서 이 위원장을 만나려고 했다가, 이 위원장으로부터 “이런 시국에 만나면 오해를 살 수 있다”며 퇴짜를 맞은 사건은 이미 정가에서 공공연한 얘기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경남지사에 출마한 이달곤 전 행안부 장관도 지난 8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상의한 적이 있다”며 “오간 대화 내용은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이 위원장이) 반대했다면 내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2년 대선 전초전인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지도부 인선과 광역단체장 공천에 있어서 이 위원장의 입김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이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올해 내로 진행해야 한다”며 개헌 논의에 힘을 실기도 했다.
지난 10일에는 서울시당 공심위원장에 이종구 의원을 내정하자, 친이재오계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정태근 의원은 “지킬 수 있는 원칙을 왜 안 지키나. 계보 챙기는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가 없는 처사다”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으며, 홍준표 의원도 “갑을이 나눠진 구청장 공천문제가 걸려있는 위원장은 빠져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 과정에서 공심위원으로 선정된 정태근, 강승규 의원은 원안이 통과된다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퇴장하기도 했다.
친이재오계 의원들은 이 의원의 내정에 대해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이 의원과 공성진 최고위원과의 ‘내 사람 심기’ 경쟁을 벌였고, 이 위원장과도 껄끄러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종구 논란’은 최고위원에서 부결 됐다가 17일 이 의원이 공심위원장을 맡는 것으로 일단락 됐으며, 사퇴를 선언한 정태근 의원 대신 김용태 의원이 그 자리를 맡았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한 인사는 “이 사건은 이 위원장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록 이종구 의원이 공심위원장에 발탁되기는 했으나 그의 정치력은 훼손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친이재오계 핵심의원인 김용태 의원이 공심의원으로 발탁된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 하에 공심위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 위원장의 입김이 세지고 있지만, 이 위원장은 자신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데 적잖은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위원장측은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이 지방을 순시하는 것은 공무원을 상대로 한 청렴교육이지 정치인을 상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방 현장에 가서도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누구와도 만나는 일정을 잡지 않았다”고 말해,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이 의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요즘 언론에서 자꾸 이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정치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며 “현재 공심위가 꾸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정치개입으로 보이면, 이제까지 이 위원장이 해놓은 일련의 행보들이 물거품이 된다. 공천이나 선거는 당에서 해야 될 일이지, 이 위원장하고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 위원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가에서는 이 위원장의 행보가 앞으로 있을 대선과 지방선거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나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일전을 불사하며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몽준 대표나 세종시에서 한발 물러나 교육, 일자리 창출에 몰두하며 이미지 재정비에 나선 정운찬 총리 등이 아직은 ‘박근혜 대항마’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친이계 강경파는 그간 당내에서 이른바 ‘박근혜 킬러’로 활약했던 이 위원장이 다시 당으로 복귀해 친이계의 핵심으로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당장 당내 복귀 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아직도 이 위원장의 강성이미지를 희석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위원장은 현재 활동에 더욱더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민원해결사’와 ‘청렴전도사’로서 전국을 돌며 전국 정치인으로써 면모를 보여주고 세종시, 개헌, 지방선거, 정치개혁 등에 대해 측면 지원한다는 속내다.
그러면서도 이 위원장은 자신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사임을 강조하면서 박 전 대표와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서 고위 공무원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청렴강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때 3번 감옥에 갔고, 군사정권 끝날 때까지 감옥에 5번 가 1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거론하기도 했다.
차기 대권, 이 손 안에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이 위원장이 다음 대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본인이 대선가도에 참여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다음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갖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권 주자인 정몽준 대표나 정운찬 총리, 김문수 지사, 오세훈 시장 등의 인사들이 박 전 대표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이 위원장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결국 이 위원장의 선택은 MB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친이계의 선택으로까지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위원장의 광폭 행보는 계속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 위원장은 17일에는 인천시 간부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청렴교육’, 18일에는 제주지역 간부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청렴교육’, 19일에는 경남도청 공직자 대상 ‘반부패청렴 특강’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