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에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정치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지지자들도 덩달아 분주한 발걸음을 놀리고 있다. 이중 ‘후원회장’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이들은 평소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모으거나 출마선언 등 중대한 정치적 행보를 할 때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선배 정치인부터 사회 저명인사, 연예인까지 각양각색, 정치인들의 ‘후원회장’을 따라가 봤다.
선거 앞두고 총알 장전, 물심양면 지원군 활약
유력정치인, 연예인, 지역실세 중에서 골라잡아?
정치인과 후원회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선거를 통해 이제 막 새로운 발걸음을 딛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약한 정치적 기반과 지명도, 부족한 자금 모두 후원회장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들 중에는 ‘이름 있는’ 이를 후원회장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물급 선배 정치인이나 유명인을 후원회장으로 세움으로써 정치력과 지명도에서의 부족분을 채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은 권영진, 정두언, 정병국, 황영철 의원 등 후배 의원 4명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이 의원측은 이와 관련, “의원들이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해 왔고, 이 의원도 아끼는 후배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쟁쟁한 이름값 대다수
특히 정두언 의원은 17대 국회에 입성하면서부터 이 의원이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들은 끈끈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과 후원회장이지만 지난 총선에서 정 의원이 이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촉구하고 ‘권력 사유화’를 비판하면서 관계가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은 묘한 사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과는 달리 당자자들은 “신경 쓸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현재까지 정치인과 후원회장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김상희, 송민순, 최문순 의원 등 세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가 인기 후원회장으로 꼽힌다.
정치인이 같은 정치인의 후원회장이 된 데는 나름의 인연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부총리를 지낸 남덕우 전 총리가 후원회장을 맡고 있으며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후원회장은 1996년 당시 신한국당 대표였던 이홍구 전 총리다. 천정배,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대학시절 은사였던 이수성 전 총리와 송자 전 장관을 각각 후원회장으로 두고 있다.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은 고향 선배인 홍준표 전 원내대표가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 밖에 박선숙 의원은 같은 여성 정치인인 강금실 전 장관을, 박은수 의원은 이계안 전 의원을 후원회장으로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선배 정치인이 후원회장이 되면 각종 행사에 참석, 축사를 하거나 후원회장 명의의 후원금 모금안내장이 발송될 때 유리한 점이 있다”며 “때문에 초선 의원들의 경우 선배 정치인들이 후원회장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예인이나 사회 저명인사를 후원회장으로 내세운 경우도 있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의 후원회장은 10년째 인명진 목사이며 정범구 민주당 의원의 후원회장은 시인 도종환씨다. 도씨는 정 의원의 홈페이지에 올린 후원회장 인사말에서 ‘진종일 내리는 비에 꽃은 젖어 있는데도 향기는 젖지 않는 꽃나무를 본 적이 있다. 하루 종일 비에 젖으면서도 엷은 연보랏빛 제 빛깔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꽃을 본적이 있다. 정범구도 그런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은 가수 설운도씨가 후원회장을, 가수 박남정, 이주노씨가 부회장을 맡고 있다. 김 의원측은 “2001년 연예인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당시 한국노총 정보통신노련 위원장이던 김 의원이 사실상 산파 구실을 한 인연이 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강승규, 이범관 의원은 각각 방송인 이상벽씨와 김동건씨를 후원회장으로 두고 있다.
정치인, 저명인사 외에도 기업인, 사회단체장 등 지역 실세들을 후원회장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에 신경 쓰는 의원의 경우 지역에 영향력이 큰 이를 후원회장으로 영입하는 데 적잖은 공을 들이곤 한다”고 전했다.
황금 인맥이 쥔 ‘돈줄’
후원회장들은 정치인들의 ‘정치자금’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지난 2004년 이른바 ‘오세훈법’이라 불리는 정치관계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역할이 크게 줄기는 했지만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됐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받을 수 있는 정치자금은 후원금, 기탁금, 보조금과 정당의 지원금 등이다. 이중 친족의 기부금과 개인자산을 제외하면 국고보조금과 기탁금 등 대부분의 정치자금은 선거관리위원회와 정당을 거쳐 의원에게 지원금 형식으로 전해진다. 지지자들이 내는 후원금은 후원회 명의의 통장을 통해 의원에게 전해진다. 즉, 후원회가 의원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 셈이다.
정가 한 인사는 “‘후원의 밤’ 등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행사가 금지되면서 후원회장의 역할이 커졌다”며 “후원회를 통한 정치자금 모금은 의원들 간 후원금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극심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영향력과 상임위 등에 따라 후원금이 넘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바닥을 드러내는 곳이 존재한다”면서 “이 경우 거물급 후원회장을 통해 ‘후광효과’를 기대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