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드라마에 출연중인 탤런트 A양의 출연분량이 회가 거듭될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에 A양 소속사 측은 출연분량을 늘리지 않으면 촬영에서 빠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A양의 출연분량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미팅 때 캐릭터…강한 성격 소유자
촬영 때 캐릭터…밝고 명랑한 캐릭터
지난 3월초 모 드라마에 출연중인 탤런트 A양의 매니저 K실장을 방송국에서 만났다. 인사말을 나눈 기자와 K실장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A양으로 이어졌다. 기자는 “A양의 캐릭터가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갈수록 비중이 줄어드는 것 같다”며 “A양에게 득이 될 것 같지 않은데, 왜 드라마에 출연했느냐”고 물었다.
기자의 질문에 K실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유는 처음 연출자와 미팅할 때 연출자가 말한 A양의 캐릭터와 촬영이 들어간 후 캐릭터가 다르다는 것. K실장은 “첫 미팅 때 연출자가 ‘A양의 캐릭터는 성격도 강하고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해서 출연을 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대본을 받고 촬영에 들어가고 보니 예전에 보여줬던 캐릭터와 비슷했다”고 전했다.
처음 의도와 달라 기분이 상할 때로 상한 A양과 A양 소속사 측은 고심 끝에, 연출자와 작가를 찾아가 “왜 처음에 말한 캐릭터와 다르냐”고 따져 물었고, 연출자에게 “작가와 고민을 해 봤는데 A양이 그동안 보여줬던 밝고 명랑하고 푼수 같은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 같아 그대로 가기로 했다”는 답을 들었다.
얽히고설킨 기 싸움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에서 탈피,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출연을 결심했던 A양과 소속사 측은 연출자의 말에 “그런 일은 당연히 연기자와 상의를 해서 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시 물었고, 연출자는 “캐릭터 변화는 연출자와 작가가 상의해서 바꿀 수 있는 것 아니냐. 드라마 시청률과 연기자 모두를 위한 것이니 잠자코 따라오면 된다”고 역정을 냈다.
연출자의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한 K실장은 ‘더 이상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에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 때문이었을까. A양은 비중도 차츰 줄기 시작했고, 촬영장에서 처우도 달라졌다. K실장은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촬영이 이어진다. 그런데 딱 한 신만 찍는다. 이런 일이 몇 주 째 이어지고 있다. 주어진 분량은 적고 다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집중하기가 어렵다. A양이 허탈해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A양의 박탈감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A양이 맡은 캐릭터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매력의 소유자로 설정됐다. 극의 중심이 되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사이를 오가며 복잡한 삼각관계의 한 축을 담당해야 했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바라보는 캐릭터로 비중이 축소됐고, 단순한 분량의 문제를 떠나 이 같은 역할 자체가 설득력 있게 그려지기 힘들 정도가 됐다.
A양 매니저 K실장, 연출자에 불만 토로
출연불량 줄고 처우 달라져…‘하차’ 합의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K실장은 급기야 연출자를 찾아가 드라마에서 빠지는 것으로 해달라고 했고, 연출자는 결정을 받아 들였다. K실장은 “드라마에서 빠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작가가 대본 작업 중인 것으로 안다. A양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다른 작품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나보고 오승아 입맛에 맞게 대본 다시 써라 그 말이에요? 감독님 지금 제 정신이세요?” 드라마 <온에어>에서 똑부러지는 작가 영은은 PD 경민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출연진과 제작진 작가 사이에도 갈등이 있기 마련. 그러기에 작가와 배우는 등장인물의 성격, 대사 행동을 충분히 상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의견합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드라마 제작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치닫기도 한다. 드라마 촬영을 하다보면 얽히고 설킨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대단하다. 드라마 방영 중 이처럼 연기자-연출자-작가의 기 싸움으로 인해 하차하는 일은 가끔 일어난다.
대표적인 인물이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추노>에 출연 중인 이다해다. 이다해는 <에덴의 동쪽>에 출연했다가 중간에 하차를 했다. <에덴의 동쪽> 대본연습에서 출연진이 나연숙 작가에게 대본과 캐릭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불만을 털어놓았고, 결국 고성으로 이어져 파행으로 치달았다. 당시 대본연습에는 이홍구 작가에게 바통을 넘기고 뒤로 물러났던 나 작가가 복귀했고, 주연배우 송승헌과 이다해가 빠진 상태에서 진행됐다.
“캐릭터를 이해할 수 없다” “진행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는 출연진의 불만에 나 작가는 “나에게 도전하는 것이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고 결국 그대로 연습실을 나갔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에덴의 동쪽>은 다음날 예정됐던 촬영이 전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제작진은 “촬영이 취소된 것은 대본상 수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며 “대본 연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작가와 출연 배우간의 갈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다해는 “시청자들에게 죄송하다”며 “하차에 대해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인지,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괴로워 촬영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연기자-연출자-작가 호흡 중요
그는 이어 “한 연기자로 이 작품을 끝까지 책임지고 제 역할을 충실할 의무가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런 상태의 심신으로 연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죄송스러운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는 연기자-연출자-작가의 호흡이 잘 맞아야 성공할 수 있다.
작가가 아이디어 공장에서 드라마 대본을 ‘생산’하면 이를 예쁘게 ‘포장’하는 것은 연출가의 몫이고, 이를 예쁘게 ‘표현’하는 것이 연기자의 몫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시청률이 잘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다. 촬영장에서 연기자-연출자-작가가 만나면 웃음꽃이 만발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