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초기 내세웠던 ‘747공약’은 날개가 꺾였고, 국가 재정건전성은 파탄 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청년실업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민경제는 여전히 차가운 겨울이다. 결코 담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은 대범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
집권 3년차를 맞이한 이 대통령에게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처하라’는 것이다. 어느새 이 말은 MB 어록이 돼버렸다. 이 같은 언사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흔들림 없이 국정을 운영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독재’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MB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정국은 어느새 끌려가고 있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위기극복 방식 달라진 MB ‘아바타’ 출격
3년차 극복카드 장기집권 마스터플랜 구상
사실 MB는 집권2년 동안 수많은 위기와 난관에 부딪쳤고, 역대정권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해왔다. 광우병 사태와 18대 총선파동, 용산사태, 국회 폭력사태, 노·DJ 전 대통령 서거, 쌍용차 사태, 미디어정국 등 헤아릴 수 없는 이슈와 사건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집권 3년에 들어선 MB는 더 이상 어떠한 현안에도 놀라지 않을 내성이 생겨버렸다.
롤러코스터 지지율,
진보적 아젠다 흡수까지
집권 초기 찾아온 ‘쇠고기정국’은 50%이상의 국민 지지율로 당선된 MB를 좌절시키고 말았다. 이른바 ‘광우병 파동’으로 요약된 이 사건으로 MB은 집권 반년 만에 7.4%(2008.6.15-16 한길리서치)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MB는 성난 촛불시민들에게 밀리고 밀려, 결국 “아침이슬 노래를 들으며 내 자신을 자책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당시 4월 MBC <PD수첩>으로 촉발된 ‘광우병 정국’은 10월이 다돼가도록 이어지는 등 MB를 코너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 ‘가축전염병예방법’이라는 여권의 출구전략에 합의하면서 100만 촛불 열기는 식기 시작했고, 궂은 날씨와 정부의 대응에 투쟁동력이 상실됐다.
이후 MB는 20%대로 지지율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차츰 ‘대범한’ 대통령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연초에 터진 용산참사는 국민들을 경악케 했고, 여야 이념대립 구도를 마련해줌으로써 충성도 높은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하는 포인트로 작용했다. 이때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30%대(2009.1.31 한겨레, 34.8%)로 올라섰다.
당시 야권은 서울시장과 경찰청장에 대한 책임론을 펼치고 나옴으로써 MB는 용산참사 논란에서 한 발 비켜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상승하기 시작한 MB의 지지도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사장에 대한 본격적 검찰 수사를 계기로 30%대의 지지율을 뚫고 40%대(2009.4.3 폴리뉴스, 40.0%)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수사 초기 이 대통령은 ‘성역 없는 부패척결’을 외쳤다. 하지만 광우병 파동과 용산사태로 이어진 사태들의 중심에 친노·진보 진영이 있다고 판단, 대대적인 검풍 작전에 들어갔다. 이에 검찰도 야권 인사 뿐 아닌 친이·친박을 가리지 않고 관련자들을 모조리 소환했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이어졌고 전직 대통령이 13년 만에 검찰에 소환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고 모든 화살이 이 대통령에게 쏠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파장은 이른바 ‘노풍’으로 이어졌고 이 대통령은 ‘편파수사·표적수사’라는 여론의 몰매를 맞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MB 지지도는 다시 30%대 초반으로 급락, 치명상을 안겨주었다.
특히, 그해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는 500만의 추모물결로 바뀌었고 이 대통령은 다시 20%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위기에 봉착한 MB는 8·15경축사를 통해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 카드를 제시하며 ‘서거정국’을 돌파했다. 진보좌파진영의 아젠다를 흡수해버린 것이다.
MB는 시장과 거리를 누비며 현장 행보에 들어갔고 국민들은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국장으로 엄수하면서 MB 지지도는 50%대에 근접(2009.9.21 한국일보, 47.3%)하며 급상승했다.
물론, 중간 중간 미디어법 강행처리나 4대강사업 밀어붙이기 등 논란도 많았다. 그러나 현안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 뿐 지지도 상승 추이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특히, 2009년 연말 세종시 논란이 정국 최대 이슈로 떠올랐음에도 연말 지지도는 50%대(2009.12.28 리얼미터, 53.1%)를 넘어서는 등 집권 초기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MB 아바타 정치
역풍 차단하고 국정장악
집권 3년차를 맞이한 MB는 많이 달라졌다. 집권 초기 이 대통령은 누구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문제를 벌이고, 또 해결하려는 모습이었다. ‘광우병 정국’에서도 드러났듯이, 결과는 모두 MB가 온몸으로 역풍을 막아내야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초대형 역풍이 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피해나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MB의 돌파구는 바로 ‘아바타(대리인)’이다. 대리인을 내세워 역풍을 차단하면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 때문에 MB는 표면적으로는 외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주, G20회의 개최, 저탄소녹색성장 등 그는 외교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세종시 수정 논란’은 정국의 최대 이슈가 되어버렸고, 이 논란은 여권발 초대형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내에서 이미 친이·친박이 처절한 싸움을 계속 하고 있는 가운데 이 모든 논란의 중심인 MB는 오히려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이는 세종시 정국에서 정운찬 총리와 정몽준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MB은 뒤에서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적 관심은 MB라기보다는 친이·친박 갈등이나 박근혜·정몽준 갈등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언제 분당을 하느냐, 여권발 정계개편 시점이 언제냐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결국 이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당 안팎의 모든 상황을 조종하고 있으면서도 전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처럼 친이 세력을 조종하고 있는 탓이다. 각종 현안과 이슈들 마다 대리인 즉 아바타를 내세워 적극 대응에 나섰고 결국 그 아바타들이 온갖 비판과 지적을 감내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이른바 ‘MB 아바타론’이다. 집권 초기만에도 이 대통령은 거의 모든 현안에 대해 직접 나섰다”며 “정권 초기 각종 위기와 난관에 부딪쳤던 MB는 집권 노하우를 터득했고, 그것이 대리인 정치다. 대리인을 앞세워 그를 통해 움직이고 있고 만들어나가고 있다. 정운찬 총리나 정몽준 대표, 김무성 의원,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을 내세워 박 전 대표를 공격하기도 하고 MB가 직접 나기도 하며 효과적으로 정국을 운영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최근 TK지역의 민심을 분노케 했던 ‘이동관 논란’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세종시 논란을 잠재우고 이 대통령의 ‘TK민심 달래기’ 명분이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석에 의해서 제기됐던 국민투표 논란도 MB는 핵심에서 비켜서 있다.
따라서 집권 2년을 보내며 나름의 국정운영 방법을 터득한 MB는 더욱 강력한 카드를 던지며 국정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MB 퇴임 후 보장프로젝트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세종시’와 ‘개헌카드’다. 박 전 대표를 배제하기 위한 책략으로 정권재창출 위한 카드이면서 친이계의 장기집권 시나리오 중에 하나라는 것.
세종시·개헌논란
MB·친이계 장기집권 카드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관계자는 “MB와 친이계는 세종시 논란을 통해 수도권 민심을 확실히 얻은 후 대선을 잡겠다는 전략이다”며 “TK는 이미 박 전 대표의 것이다. 현재의 지역구도상 수도권을 잡아야 승리할 수 있고, 설사 박 전 대표가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을 해놓은 다면 친이계의 장기집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MB는 퇴임 후를 보장 받으면서 친이계를 뒤에서 지휘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내각제를 실시하게 된다면 MB로서는 권력을 분점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수당의 총수가 돼 친이계의 장기집권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세종시와 개헌카드는 MB와 친이계의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시나리오 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