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금호가 형제 손익계산서

2010.02.16 11:45:07 호수 0호

진흙탕서 뒹굴다 결국 ‘굿바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국 쪼개졌다. 금호가 두 형제가 ‘형제의 난’끝에 계열분리 수순을 밟고 있다. 나머지 그룹 몸통은 채권단 손에 맡겨졌다. 두 오너가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사재를 털어 간신히 공중분해는 면했지만 산산조각 난 꼴이다. 아슬아슬한 외줄을 걷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이를 쪼개 가져간 금호가 형제의 손익계산서를 두드려봤다.


박삼구 ‘타이어’박찬구 ‘화학’…채권단 분리경영안 수용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 나머지 계열사 별도 정상화

박삼구-찬구 형제가 처음 충돌한 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향후 자금난을 걱정해 인수를 반대했지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박 전 회장의 예상대로 그룹은 대우건설을 삼킨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박 명예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불신의 싹이 자랐다.

“집 빼고 다 내놨다”
두 형제 사재 출연



형에게 불만을 품은 박 전 회장은 돌연 그룹 경영권을 노린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들과 함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당초 10.01%에서 18.47%로 늘린 것. ‘10.01%’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5남 박종구씨를 제외한 금호가 4형제(성용-정구-삼구-찬구) 일가가 동일하게 보유해온 이른바 ‘황금 지분율’이다. 뒤늦게 박 명예회장 부자도 금호석유화학 지분(11.77%)을 사들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형제경영의 모범’이라 불릴 만큼 우애를 과시했던 금호가의 25년 아름다운 전통이 막 내린 것이다. 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은 박 명예회장이 꺼낸 초강수는  ‘동반 퇴진’이다. 박 명예회장은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다른 친인척들의 지분을 동원해 박 전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을 박탈했다.

금호가 두 형제가 혈투를 벌이는 사이 기장을 잃은 ‘금호기’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유동성 위기를 겪다 결국 그룹의 운명이 채권단 손에 넘어갔다. 그룹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금호가 오너의 사재출연을 요구했고 최근 채권단과 최종 합의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산업은행은 “금호 일가가 주식·부동산 처분권을 채권단에 넘긴다는 경영책임 이행 합의서를 제출했다”며 “금호가가 제시한 ‘분리 경영안’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수용했다”고 밝혔다.

두 형제는 2세들 지분까지 포함해 대주주 주식 의결·처분권을 채권단에 넘겼다. 이들이 채권단에 위임한 사재는 집을 제외한 주식과 부동산 등을 합쳐 25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당초 금호가는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하며 버티다 막판에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대신 박삼구-찬구 형제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요 계열사 경영을 각각 나눠서 맡기로 했다.

분리 경영안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박 전 회장과 그의 장남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 고 박정구 명예회장의 장남 박철완 전략경영본부 부장 등 두 가계가 공동 경영하기로 했다. 박 명예회장과 그의 장남 박세창 그룹 경영관리담당 상무는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갖게 됐다. 채권단은 오는 3월 말까지 경영이행각서를 체결할 계획이다.

박삼구 재기 발판 숨겨놔 워크아웃 과정 험난
박찬구 독립 경영 꿈 이뤄 채권단 감시 부담


현재 박 명예회장이 갖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지분(5.3%)과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47.3%)을 맞교환(주식 스왑)하기로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두 형제는 각자의 회사가 지배하는 계열사의 경영권도 행사하게 된다. 경영권 보장 기간은 최대 5년이다. 다만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등 나머지 계열사는 채권단 관리 아래 정상화가 추진된다.

결국 재계 서열 8위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간신히 공중분해는 면했지만 산산조각 나는 비극을 맞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두 형제의 ‘손익계산서’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누가 더 실리를 챙겼냐는 것이다. 외관상으론 박 전 회장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전 재산을 내놨지만 자신이 원하던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7개월 만에 되찾았기 때문이다. 금호석유화학 대주주로 있는 그는 지난해 7월 퇴진 이후 줄곧 경영복귀 의사를 밝혀왔다.

‘형제의 난’을 일으킨 최종 타깃도 금호석유화학이었다. 박 전 회장은 계열분리를 통한 독립 경영을 요구하며 금호가의 ‘황금 지분율’을 깨고 이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석유화학 → 금호산업 → 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상 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지주회사 위치에 있다. 박 명예회장이 박 전 회장을 끌어내리고 끝까지 경영권을 놓지 않은 이유다. 이번에 금호타이어를 가져간 박 명예회장이 박 전 회장에게 금호석유화학을 다시 내줘 다소 밀리는 모습인 것도 이 때문이다.

박삼구 편 박정구 일가,
막판에 박찬구 쪽으로

특히 박 전 회장은 지난 30년간 금호석유화학을 안정적으로 맡아 연매출 3조원대의 ‘알짜기업’으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그만큼 내부 결속력과 신망이 두텁다. 벌써 박 전 회장이 물밑에서 금호석유화학 주요 인사들을 주축으로 세 결집을 마쳤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 전 회장은 조만간 이사회에서 정식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되면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조직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박 명예회장이 지난달 금호석유화학을 비롯한 화학 계열사의 인사를 단행했지만 박 전 회장이 이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은 적다. 금호석유화학 한 직원은 “내부 임원 등 박 전 회장을 지지하는 사내 여론이 적지 않다”며 “개인적인 의견도 무리한 사업으로 궁지에 몰린 박 명예회장보다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한 박 전 회장이 낫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박 전 회장은 다른 가족 일부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거뒀다. 가문의 외톨이에서 든든한 아군이 생긴 것이다. 바로 박정구 일가다. 박 전 회장은 처음 박 명예회장의 곁을 지켰던 둘째형 고 박정구 명예회장의 장남 박철완 부장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박철완 부장은 곧 그룹 컨트롤타워인 전략경영본부에서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박 전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부장도 금호타이어에서 금호석유화학으로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채권단의 관리·감시를 받게 된다. 경영권 행사가 자유롭지 않은 것. 채권단은 박 전 회장의 경영 범위를 금호석유화학과 직속 계열사(금호폴리캠, 금호피앤비화학, 금호미쓰이화학)로 한정했다.

그룹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등 나머지 계열사는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통해 지배권을 확보한 뒤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직접 관리하는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박 전 회장은 이마저도 채권단과 상의해야 한다. 채권단은 회사 주요 의사결정을 검토하고 분기별로 경영 성과를 보고 받는다는 방침이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의 경영권은 보장하지만 회사 정상화에 역행하는 전횡은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며 “조직 안정보다 장악이 우선이라면 채권단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경영진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하는 금호석유화학을 맡은 박 전 회장에 비해 강제적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타이어를 책임질 박 명예회장으로선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박 명예회장의 험난한 여정이 예상되는 이유다.

대우건설 인수→ 승자의 저주 → 지분 경쟁 → 동반 퇴진
→ 유동성 위기 → 채권단 관리 → 계열 분할 →?


일단 강성 노조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금호타이어의 노조는 채권단이 제시한 구조조정안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노조는 “1400여명의 인력 구조조정과 워크아웃 중 쟁의행위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구조조정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노조의 강경 입장 고수로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일정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채권단의 자금 집행도 불투명해 자금난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관측된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직원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 또 자금 부족으로 생산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가 하면 20곳 이상의 협력업체가 채무불이행(신용불량) 법인 리스트에 오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 명예회장은 ‘상처투성이’인 금호타이어를 벼랑에서 되살릴 경영 정상화에 머리를 싸매야 한다. 당장 노조 등 임직원들과 의견 조율을 통해 채권단 간 다리를 놓는 게 급선무다. 그러나 노조는 박 명예회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박삼구 명예회장을 비롯한 금호가 오너일가는 자신들의 경영권에만 목맨 채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고 박 명예회장의 앞날이 불안한 것만 아니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을 비롯해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등 4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박 명예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을 박 전 회장에게 넘기면서 추후 비화학 중심의 그룹 전체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금호산업의 경영자 지명권이 그것이다. 채권단에 제출한 분리 경영안엔 ‘금호산업은 채권단 동의하에 박삼구 명예회장이 지정하는 자가 경영한다’는 항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명예회장은 이를 통해 실질적인 금호산업 경영권을 쥘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 등 그룹 계열사를 금호산업 등에 되팔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져 박 명예회장이 비화학부문 계열의 경영권을 채권단으로부터 되가져올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그룹 핵심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금호석유화학의 직접 지배를 받는 구조에서 배제돼 당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다 금호산업에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박 명예회장이 경영을 맡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일단 고비 넘겼지만…’
지금부터 진짜 전쟁?

실제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등은 금호산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보장받는 5년 내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하는 것이 박 명예회장의 우선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 고통과 노조 반발, 채권단 간섭 등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지만 이를 잘 뛰어넘는다면 금호석유화학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계열사들을 다시 장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 일각에선 금호 사태는 일단 고비를 넘겼지만, 금호가 형제간 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오히려 경영 분리 이후 금호가의 진짜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금호가 골육상쟁. 그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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