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YS 러브콜 김무성 화답할까…끝없는 구애작전
박근혜, 2인자 ‘김무성 홀대’ 부메랑 돼 돌아온다
세종시 정국이 모든 정치현안을 다 잡아 삼키고 있다. 이른바 ‘세종시 블랙홀’이다. 이런 가운데 세종시 정국을 풀어나가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종 해법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부상하고 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다’는 중국 당나라에서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외교정책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이이제이’의 속내엔 세종시 정국을 통해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을 색출하려는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입법’에 강경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달 27일 세종시 수정안을 입법예고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처리로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이르면 3월에 국회에 법안이 제출된다. 따라서 법안을 제출해야 하기 전 2~3월에는 한나라당 당론수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난달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 후 정국은 수정안 찬반 논란, 처리시기 논란, 처리방법 논란, 당론수정 논란 등 수많은 이슈들을 생산해내며 부글부글 끓었다. 이 와중에 박근혜 전 대표의 강력 반발로 촉발된 친이·친박계의 갈등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원안’ 고수에 정치생명을 걸고 초반부터 초강수를 두고 있다. 갑작스러운 박 전 대표의 선제공격에 청와대는 잠시 움찔했으나 ‘아이티 대지진’과 ‘사법개혁 논란’ 등의 대형 이슈가 터지고 각 현안마다 저격수를 배치해 선방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오는 25일 취임 2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입법예고’함으로써 이제 정국은 정치사활을 건 ‘세종시 전쟁’ 제2라운드를 맞이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집권 3년차를 맞은 이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레임덕’ 문제다. 이른바 ‘꺾이는 해’로 올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정권 재창출과 더불어 퇴임 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박 전 대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이 두 사람의 반목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미 곪을 대로 곪아 터졌기 때문이다.
MB 강한 자신감
‘내부 적을 이용하라’
그런 의미에서 ‘세종시 정국’은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서막이 돼 버렸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도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세종시 정국에서 박 전 대표가 초강수를 두는 것도 지난 대선후보 경선 시에 피아를 재대로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야말로 피아를 확실히 해두고 당내에서 미래권력으로서 ‘아우라(Aura)’를 보이겠다는 것.
이런 박 전 대표에 이 대통령은 여러 가지 대응전략을 세워놓고 각 현안마다 대응카드를 구사하고 있다. 제1라운드에서는 ‘정운찬-정몽준 커플’이 상당 부분 커버했다는 평가다.
먼저 정운찬 총리는 야전 사령관으로 충청지역과 대구지역을 동시 다발적으로 방문하면서 ‘세종시 수정안’ 알리기와 주민 설득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아직은 수정안에 대한 여론이 크게 바뀌지 않고 있지만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게 정 총리 측의 전언이다.
또 다른 카드인 정몽준 대표는 박 전 대표와의 입심 대결을 펼치면서 박 전 대표의 힘을 빼고 있다.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박 전 대표의 체력을 소진시키면서 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이계의 결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백호’ 같은 박 전 대표를 잡아낼 수 있을까. 정가에서는 이것만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의 히든카드이자 최종 승부수는 따로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MB의 히든카드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설들이 있다”며 “그중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김무성 카드다. 박 전 대표를 가장 잘 알고 충성했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그가 히든카드의 적임자다. 그의 일련의 행동을 보면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안’ 입법의 키워드는 바로 당론 채택 과정이다. 당이 친이·친박계로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수정안이 통과되려면 적어도 친박측 의원 중 10여 명 정도는 반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움직여야 한다. 친박계에서 그만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김무성 의원밖에 없다.
김 의원이 이끌고 있는 ‘여의포럼’에는 친박계 의원이 21명이나 포진돼 있다. 주요 인사들을 보면 홍사덕, 김무성, 이경재, 이인기, 조원진, 유기준, 박대해, 서병수, 현기환, 이진복, 유재중, 윤상현, 한선규, 최구식, 정해걸, 김태환, 김학송, 박종근, 성윤환, 이한성, 이해봉, 이혜훈 등 대부분이 수도권과 PK지역 출신이다.
특히 수도권이나 PK지역의 입장으로 봤을 때, 수도분할적인 ‘세종시 원안’ 고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 홍사덕 의원이나 이경재 의원 등의 중진인사들이 ‘세종시 원안’ 고수보다는 타협안을 제시하는 것도 그 이유다.
또 친박계에서 김 의원과 홍사덕 의원 등이 ‘원안 고수론’에 반대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인 가운데 최근 김 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전격 화해하면서 양 계파간 모임이 잦아지고 있다. 그리고 상도동계의 중심에는 김덕룡 대통령 특보와 김 의원이 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지난달 9일 YS를 만나 세종시 정국 현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등 구원요청을 한 바 있다. 이에 YS는 ‘세종시 수정안’을 적극지지하면서 이 대통령에 대한 지원사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김 의원도 상도동계 모임을 비롯해 이 대통령과의 특사 면담(12월14일), 고 서석재 전 의원 장례식 참가(12월28일), YS 생일 참석(1월18일), 당내 친이계 주축 인문학 모임 ‘아레테’ 가입(1월21일) 등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아레테는 권택기, 김영우, 김효재, 백성운, 이춘식, 조해진 의원 등 MB 대선 캠프조직인 ‘안국포럼’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모임이다. 또 박 전 대표의 저격수 역할을 했던 정두언, 정태근, 김용태 의원도 포함돼 있다. 친박계 좌장격 인사가 적진에 들어간 모양새가 된 것.
김 의원에 이어 ‘여의포럼’ 회원인 성윤환 의원도 아레테에 참여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해볼 때 김 의원이 수장으로 있는 ‘여의포럼’이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이 박 전 대표에게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 의원은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며 명실상부한 2인자로 인정받기 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것을 인정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부터 시작해 각종 현안과 대응방식에서도 큰 차이를 드러내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열린 ‘선진사회연구포럼’에는 참석하면서도 29일 열린 ‘여의포럼’ 송년회에는 참석치 않았다.
이에 대해 친박 측 한 인사는 “김 의원은 부산에서 큰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 자금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면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로비설에도 꿋꿋하게 버틴 이유가 ‘자신이 부족함이 없기에 돈을 줬어도 거절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 대선에서 박 전 대표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에게 박 전 대표가 홀대하는 것에 대해 적잖이 기분이 상해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정가에서는 김 의원의 움직임이 YS의 의중을 대변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또한 YS가 이 대통령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과 관련, ‘빅딜설’이 나돌고 있다. YS가 이 대통령에게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의 정치적 재개와 PK 맹주로서 김 의원을 인정해달라는 것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게 ‘빅딜설’의 골자다.
‘김무성 홀대’,
반란의 불씨 키운다
따라서 김 의원의 차후 행보가 세종시 정국의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세종시 정국에서 수정안 통과는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의 승리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부결된다면 박 전 대표의 승리로 끝나면서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표에게 힘의 균형이 급격하게 쏠리면서 조기에 레임덕 현상이 일어난다.
이에 김 의원은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 입장에서는 반란군이 돼서 자신이 모셨던 주군을 치느냐 아니면 끝까지 신의를 지키느냐 하는 문제다. 정치적으로는 용의 머리가 될 것이냐 아니면 2인자의 삶을 살 것이냐 하는 문제다.
지난달 21일 중국 방문을 술회하며 김 의원은 “(면적이) 서울의 약 4배나 되는 빈하이신구는 평당 약 7만원에 분양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가격이면 세종시에 특혜를 줘도 (기업도시로서)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면서 “경쟁 대상은 국내에 있지 않다. 온 국민이 신뢰를 쌓고 일사불란하게 힘을 모아야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해 그 속내를 가름케 했다.
이 대통령에게 있어 박 전 대표만 눈엣가시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것이 ‘BBK 정국’이었다. 막판 대선 가도에 돌발변수로 등장한 BBK 사건으로 이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에도 특검을 받아야 했다.
당시 BBK 정국의 틈바구니에서 이회창 후보가 나오면서 시쳇말로 ‘식겁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에게 이 총재는 달갑지 않은 대상이다. 정권 출범 이후 두 사람은 밀월 관계를 유지해오다가 ‘심대평 총리론’ 이후 앙숙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심대평 전 대표에 대한 이 대통령의 구애가 시작되면서 두 사람의 밀월 관계는 끝이 났다. ‘심대평 총리론’으로 충청권을 공략하려는 MB에게 이 총재가 제동을 걸었다는 것.
이런 가운데 세종시 정국은 이른바 레임덕을 막고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을 색출하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설도 파다하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세종시 정국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 총재라는 시각이다. 일단 세종시 제1라운드에서 이 총재의 존재감은 보이질 않는다. 이 총재의 말보다는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더욱 집중되고 있고 이 틈을 타서 민주당은 충청권 대변자로 선수를 치고 있다.
이 총재에게 있어서 세종시 정국은 최악의 정치적 상황이다. 즉, 설 자리가 없다는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종시 여론전에 지난 3김 시대부터 충청권의 대부로 알려진 JP가 MB를 두둔하면서 충청권의 민심 흐름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MB는 아직도 심 전 대표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JP 이후 줄곤 심 전 대표는 충청권의 맹주로서 힘을 발휘했다. 심 전 대표 입장에서 보면 그간 맹주로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는데, 이 총재의 등장으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소신마저 묵살되자 심 전 대표는 당을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세종시 정국 진짜 목적
‘정권 반역자 색출하라’?
세종시 문제에서도 두 사람은 다른 의견을 보였고 심 전 대표는 수정안 지지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충청권의 한 인사는 “심 전 대표는 충청권에서 아직도 영향력이 있다. 특히 심 전 대표의 지역구는 공주·연기로 세종시 근거지다”라며 “심 전 대표의 의사와 주장에 따라 그 지역의 여론 향배는 달라질 수 있다. 심 전 대표가 수정안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민심 향방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지난달 18일 심 전 대표는 “지역주민들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충청인의 자주결정론이 문제 해결의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세종시 문제를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충청인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충청인 자주결정론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다.
이 같은 입장은 다소 유보적이지만 ‘원안 고수’와는 다른 입장이다. 심 전 대표의 이러한 행보는 결국 이 총재의 입지를 좁아지게 함은 물론 박 전 대표의 ‘원안고수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