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여의도를 뒤흔들고 있다. PD수첩 광우병 관련 보도, 전교조 시국선언, 국회폭력 등 정치권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사건들에 무죄판결이 내려지면서 시작된 법원과 검찰의 기 싸움이 정치권으으로 옮겨 붙은 탓이다. 한나라당은 이참에 사법부를 개혁하겠다며 눈에 불을 켰다. 눈엣가시 같은 ‘우리법연구회’까지 해체하겠다고 두 팔을 걷어 붙였다. 정권교체 후 호된 검풍을 맞은 민주당은 검찰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말이 나와 시선을 끌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 법원이 연이어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검찰은 물론 여권까지 연일 당황케 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한 것은 지난달 13일 법원이 ‘용산참사 미공개 수사기록’에 대한 공개를 결정하면서부터다. 검찰은 “재정신청 재판부가 재정신청 기록을 열람·등사해 주는 것은 형사소송법 위반”이라며 대법원 항고와 용산참사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법원을 상대로 한 재판부 기피신청 등 초강수를 뒀다.
촛불 켠 이들 무죄
검찰·한나라 ‘으르렁’
다음 날인 14일에는 국회폭력 사건으로 기소됐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또한 19일에는 시국선언으로 불구속 기소됐던 4명의 전교조 간부들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과 법원의 갈등은 지난달 20일 광우병 관련 보도를 했던 <PD수첩> 제작진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정점에 달했다.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 강하게 반발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강 대표에 대한 무죄판결 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신속하고 철저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법원의 무죄 선고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김 총장은 법원의 판결 후 대검찰청 비상간부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김 총장은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불안해하는 국민들이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나라를 뒤흔든 큰 사태의 계기가 된 중요사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작금의 상황이, 주변 국면이 어수선하긴 하지만 검찰은 가야 할 길을 의연하고 당당하게 나갔으면 한다”고 말해 정면돌파에 대한 속내를 짐작케 했다.
김 총장은 또 서울중앙지검에 즉각 항소하고 철저히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법원의 판결에 여권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집권 초 정권을 뒤흔드는 위기가 됐던 촛불집회를 촉발시킨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우선 촛불집회에 대한 정권의 강경대응과 무리한 수사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번 판결이 향후 제2, 제3의 촛불이 켜질 수 있는 단초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사법부 개혁 카드를 들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사법부가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판결을 해놓고 사법부 독립을 외치는 것은 책임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망각한 행위”라며 사법개혁을 강조했다. 안 원내대표는 사법개혁 논란과 관련, “정치성향이 강한 법관을 형사 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진보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해체를 촉구하고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퇴를 거론하는 등 법원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대법원은 대형사건의 경우 단독판사 3명으로 구성토록 하는 재정합의 재판부 배정과 10년 이상 경력 판사의 형사단독판사 임명 등 제도개선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대법원의 제도개선책을 미봉책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입법조치를 통해 사법제도 개혁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으로 확산된 사법개혁 논란과 관련 정가 일각에서는 ‘필연론’이 조용히 퍼지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갈등, 여야의 갈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짐을 보여 왔다는 게 ‘필연론’의 골자다.
정권교체 후 한나라당은 법원과, 민주당은 검찰과 ‘악연’을 쌓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사법개혁 논란이 일기 전 이미 우리법연구회의 해체를 거듭 주장해왔다. ‘촛불재판’ 등과 관련, 우리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들과 충돌해왔던 것.
정가 떠도는 ‘필연설’
정권교체 후 ‘악연’ 쌓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감, 민일영 대법관의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우리법연구회를 꾸준히 비판해왔다. 우리법연구회의 활동에 대해 법원의 사조직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으며, 몇 차례 있었던 사법파동의 발원지인 우리법연구회를 순수하게 연구하는 판사들의 모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점을 ‘해체’ 주장의 이유로 들었다.
민주진영과 검찰도 좋게 만나지 못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민주진영은 검찰과 오랜 악연을 쌓아왔다”며 “특히나 정권교체 후 여의도에 불어 닥친 검풍으로 적잖은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박연차 게이트로 전 정권 인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서거하면서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법원을 공격하자 민주당은 검찰을 겨냥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검찰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라는 제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결의문에서 “최근 몇몇 사건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에 대한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며,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검찰은 그동안 권력형 비리의혹에 대한 수사는 뒷전으로 제쳐둔 채, 현 정부의 실정을 감추기 위해 언론인과 지식인, 시민사회와 야당 등 비판세력 죽이기에만 골몰해 왔다”면서 “2008년의 촛불민심을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아니라 MBC <PD수첩>의 탓으로 전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용산참사를 철거민의 탓으로, 정부비판여론을 시국선언 교사의 탓으로, 여당과 국회의장의 헌정유린을 야당의원의 탓으로 돌리는 등 상식도 법리도 무시해왔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국회 내 검찰개혁특위 구성을 제안하면서 “대검 중수부 폐지, 공직부패수사처 신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징벌 강화, 검경 수사권 재조정 등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사법부 개혁 주장에 ‘사법부 길들이기’ 속내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사법부가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을 불구속 기소하고 박진 의원을 1심에서 유죄 판결하는 등 여당의 숨통을 죄여오고 있는 것에 대한 반격이라는 것이다. 또한 3월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소송 결과가 나오는 것을 앞두고 법원에 압박을 가하려 했다는 것이다.
검사가 쥔 ‘법조인당’
사법부 길들이기 나서나
야당의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진보신당은 지난달 26일 “한나라당이 최근 법원의 상식적 판결에 광분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국회에서 쪽수의 힘을 이용해 사법부를 길들이겠다고 나섰는데 한마디로 사법부가 아니라 한법부(한나라당 직속 사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마음대로 판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법부를 한나라당의 한 부서쯤으로 전락시키겠다는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을 밀어내고 현 정권 인사를 심으려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나라당은 이 대법원장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안 원대대표는 “좌편향, 불공정 사법사태를 초래한 이 대법원장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해 은연중 자진사퇴를 종용키도 했다.
좀 더 근본적(?)인 갈등의 배경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의 ‘출신’이 거론되기도 한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 중 38명이 법조인 출신이고 이중 18명이 검사 출신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재보선 직후 한 언론사가 18대 국회의원들의 출신 직업을 분석한 결과, 재적 국회의원 294명 중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이 20.4%(60명)로 가장 많았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소속 의원 169명 중 법조인 출신은 38명으로 22.5%에 달했다. 민주당의 법조인 출신 의원은 14명(16.3%)이었다.
또한 법조인 출신 38명 중 18명이 검사 출신이었다. 이 중에는 안상수 원내대표와 홍준표 전 원내대표, 원희룡 전 쇄신특위원장, 박희태 전 대표 등 당에서 요직을 차지한 이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정가 한 인사는 이러한 결과와 관련,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사법부를 흔든다고 해도 검찰보다는 법원 쪽으로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밖에 사법부 개혁으로 정치권의 시선을 돌리고 세종시 정국을 둘러싼 여권의 내홍을 다스리려 한다는 등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사법부를 둘러싼 갈등이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는 데 정치권 인사 상당수가 동의하고 있다.
야권 한 의원은 “2월과 4월에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2심 판결이 나올 것”이라며 “판결 결과에 따라 법원과 검찰간, 여야간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