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국회 폭력 사건에 대해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리자, 법조계에서는 ‘기교사법’이라는 신조어가 나았다. ‘기교사법’이란 판사가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언어적 기교로 사실관계와 법리를 꿰맞추는 경우를 일컫는 것으로 최근의 ‘편향 판결’을 풍자하는 말이다.
이런 와중에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해서도 무죄판결이 내려지면서 법조계는 일대 파란을 겪고 있다. 이번 <PD수첩>의 무죄판결로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양심선언’을 했던 정지민 작가는 졸지에 ‘늑대소녀’가 됐다. 그 뒷이야기를 <일요시사>가 들어봤다.
<PD수첩> 무죄 선고 MB정권 정당성 뒤흔들어
허탈한 정지민 항거…“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이 최근 고조된 ‘이념편향 판결’과 ‘사법개혁’논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연초 막강했던 세종시 정국도 덮어버리는 기세다. 즉, 사법개혁을 둘러싼 ‘사법충돌’이 세종시 정국을 밀어낸 것이다.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정책관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왜곡, 과장 보도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소한 조능희 PD를 비롯한 제작진 5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PD수첩 무죄, 정권 정당성 ‘흔들’
이번 <PD수첩> 무죄 판결은 단순한 ‘편향 판결’을 뛰어넘는 정권 차원의 문제가 돼 버렸다. 법원과 여권-검찰의 ‘사법갈등’은 단지 <PD수첩> 무죄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강기갑 의원 무죄, 전교조 무죄 판결에 이은 또 하나의 릴레이 ‘무죄판결’ 때문이다. 릴레이 무죄판결은 대법원의 ‘소신’을 둘러싼 ‘사법적 정의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고, 여권과 검찰은 법원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
‘<PD수첩> 광우병보도 무죄’가 가져오는 폭발력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이명박 정권을 뒤흔들었고 엄청난 ‘촛불 화마’로 통치력까지 잃어버리는 큰 위기에 빠지게도 했다. 즉,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왜곡이 아니라고 선고함에 따라 MB정권의 ‘광우병 왜곡보도’ 주장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이 돼버린 것으로 그에 따른 촛불시위도 ‘부당’이 아닌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로써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왜곡됐다’며 양심선언을 한 프리랜서 작가 정지민(28)씨는 허탈감에 빠져버렸다. 정씨는 지난해 9월 <PD수첩> 측의 번역 왜곡 문제를 처음 제기했다. 그는 <PD수첩> ‘광우병’편의 번역과 감수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는 상당한 왜곡이 있었고 자신이 번역하고 감수한 것에 대해서도 <PD수첩> 측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날 문 판사는 <PD수첩> 제작진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제작진이 번역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한 정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판사가 판결을 할 때 진술인에 대해 평가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무죄판결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처음부터 판사가 결론을 내놓고 짜 맞춘 것이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지법 문성관 판사에게 108개 질문을 담은 공개질의서를 보냈다”며 “또 이용훈 대법원장과 이인재 서울지법원장에게 같은 질의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정씨는 문 판사가 판결문에서 “정지민은 사건 방송의 제작의도, 제작과정, 취재내용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서 자격시비를 제기한 데 대해 “문성관 판사는 제작과정과 의도, 취재자료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계속해서 “본인의 주장이 본인이 모든 취재과정을 지켜보거나 모든 취재자료를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훼손되는 부분이 있느냐, <PD수첩>의 원본 테이프를 봤느냐”며 “아레사 빈슨의 인터뷰 4편 중 마지막은 김보슬 PD가 다시 집 밖으로 나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인사하는 장면을 재연한 것인 줄 아는가, vCJD is BSE라는 표현은 대체 무슨 뜻이냐, 미국 내에서 a variant of CJD가 vCJD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판결문에까지 쓴 이유는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특히 정씨는 문 판사가 “정 씨는 검찰 조사 당시 했던 진술을 납득할 이유 없이 법정에서 번복하고 있는 점에 미루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한 것에 대해 “증인의 신빙성 문제를 거론할 정도로 앞뒤가 달라진 내용이 있다면, 마땅히 중대한 사안에 대한 반복이 있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확실히 거짓으로 보이는 발언이 있어야 한다. 문 판사는 그것을 확실히 뒷받침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끝으로 그는 “이번 재판과 양심선언에 대해 김은희 작가, 김보슬 PD 등 일부 작가들이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익명이나 일반시민으로 가장해 자신들의 주장을 왜곡하고 합리화했다”며 “이러한 부분에 대한 증거도 다 가지고 있다. 또한 나에 대해서도 인신공격과 허위 주장 등을 펼쳤다. ‘정지민과 사실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라는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면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씨는 추가 질의서와 함께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 수뇌부는 <PD수첩>의 무죄선고와 관련, 이례적으로 유감 입장을 밝히며 법원 공격에 나섰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달 20일 법원의 선고 직후 대검청사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중요한 사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와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한 뒤, 항소절차를 밟고 철저히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처음부터 결론 내놓고 짜 맞춰”
이에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도 서울중앙지검에서 브리핑을 열고 <PD수첩>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며 21일 즉각 항소했다. 검찰의 이러한 대응을비웃기라도 하듯 <PD수첩> 측은 지난달 26일 ‘형사소송 1심, <PD수첩> 무죄’ 편을 통해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딸의 사인에 대해 “내가 말한 모든 CJD(크로이츠펠트 야콥병)는 vCJD(인간광우병)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내보내며 “인터뷰 취지를 살려 vCJD로 의역해 자막처리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 일각에서는 ‘<PD수첩> 측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며 이번 무죄판결에 대해 <PD수첩> 관련한 민사재판에서는 두 번이나 이겼다고 우쭐한 것이 아니냐며 반성론이 줄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