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MB식 불도저 예산안 통과 ‘속전속결’
예산안 후폭풍은 옛말, 세종시로 정국 시계 제로
새해 예산안과 노조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냉각 관계가 채 풀리기도 전에 정치권은 곧바로 세종시 정국으로 진입하게 된다. 뒤이어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문제, 지방선거, 개헌 등 새해 정국을 요동치게 할 ‘핫이슈’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때문에 6월2일 지방선거 전까지 정치권 상황은 대립과 혼돈의 연속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각 당이 세종시 대혈투를 앞두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가운데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책략전이 불꽃 튈 전망이다.
긴박했던 새해 예산안 처리에는 한나라당의 ‘속전속결’ 전략이 먹혀들었다. 이른바 미디어법 통과와 지난해 입법전쟁을 통해 ‘학습효과’를 거친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생떼쓰기’에 대비했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당근과 함께 직권상정과 단독처리라는 암수를 써 입법대전(立法大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번 입법대전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안겨준 안상수 원내대표의 리더십과 지략이 뛰어났다는 평가다.
한나라 ‘속전속결’
배후는 안상수·김형오?
이른바 ‘치고 빠지기’ ‘냉온 전법’이 주효했다. 아울러 친박계 의원들까지 에둘러 감싸 안았다는 것이다. 치열한 격전을 치렀지만 미디어법, 4대강 예산, 노동법 등의 풍성한 수확물을 챙겼다는 것. 처음 원내대표로 입성할 때 강경파였던 안 원내대표에 대해 우려감이 있었으나 되레 강경하고 확고한 의지로 MB의 뜻을 관철시키며 강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안 원내대표의 뚝심은 박희태 전 대표 이후 차점자로 당 대표가 된 정몽준 대표의 존재감마저 흔들리게 할 정도였다.
이와 함께 이번 예산안 통과의 숨은 공신은 김형오 국회의장이다. 한나라당 출신인 김 의장은 민주당의 또 하나의 장애물로 등장해 민주당의 힘을 빼는 데 한몫을 했다. 김 의장은 미디어법, 4대강 예산, 노동법 등에 대해 ‘직권상정’이라는 무기를 십분 활용해 한나라당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지난해 31일 이명박 대통령과 김 의장이 통화를 했다는 사실이 전해졌고 민주당 등 야당은 김 의장에 대해 ‘MB 오더맨이 아니냐’며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 같은 김 의장의 행보에 대해 대권후보나 당권을 잡기 위한 큰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예산투쟁 성적표를 놓고 비주류 측에서 조기 전당대회론에 무게를 두고 군불을 때고 있다. 이에 비주류 초재선 의원 모임 ‘국민모임’이 14일 토론회를 주최하는 등 명분 쌓기에 돌입했다. 이러한 예산투쟁 갈등은 정동영 의원의 복귀 시점을 두고 주류 측과의 명분싸움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이번 입법전쟁에서 패배한 책임을 두고 ‘추미애 위원장’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데 그 희생양으로 추미애를 선택했다는 것. 주류 측은 추 위원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놓고 고심 중에 있는 가운데 자칫 여론의 역풍이 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추미애 희생양으로!
여야 ‘세종시 올인’ 모드
반면 예산정국의 고비를 넘은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 체제는 다소 안정을 되찾은 편이다. 하지만 ‘민본21’을 비롯한 소장그룹을 중심으로 ‘지방선거 총력 대응’을 명분으로 ‘조기 전대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며 수 싸움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예산안 후폭풍’은 그리 길게 가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세종시라는 큰 이슈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 여야 모두 명운을 건 싸움에 돌입하게 된다.
이 대통령과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세종시 수정 찬성여론이 50%대 이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30~31일 SBS의 여론조사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찬성이 52.6%, 반대가 36.5%로 나왔다.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도 ‘세종시수정안’ 지지가 51.3%로 ‘원안고수’(36.2%)보다 많았다.
이와함께 충청권 민심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를 들여다보면 세종시 원안 지지율(51.8%)과 수정안 지지율(44.4%) 차이가 7.4%에 불과했다. 지난 9월 24.7%에 그쳤던 수정안 지지자가 20%포인트 가까이 오른 셈이다. 또 <조선일보>·한국갤럽의 충청지역 조사에서는 ‘세종시에 대한 의견이 정부의 최종 수정안 발표를 본 이후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가’란 질문에 5명 중 2명(41.4%)이 ‘있다’라고 답했다.
이 지역의 원안 찬성자 중에선 37.2%, 수정 찬성자 중에선 42.7%가 정부안 발표 후 의견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답해 최종 수정안의 내용에 따라 충청 민심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애기다.
여기서 흐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는 정부 수정안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다. 특히 충청권의 민심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정부의 수정안은 운명이 좌우된다.
결국 세종시 논란의 핵심은 여권의 분열의 상징이라는 것. ‘친이-친박의 세력 싸움’이며 이는 곧 ‘이명박-박근혜’의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내전 격이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론 찬성 지역이 수도권과 영남권이라는 지역적 한계와 한나라당층인 보수층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박근혜의 딜레마’가 있고, 충청과 결별해야 한다는 점에서 ‘MB의 딜레마’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두 세력이 끝까지 가서 여권이 두 동강 날 것인지 아니면 현재처럼 두 세력이 각자의 길을 갈 것인지가 세종시 정국의 최대 관전포인트다.
MB, “여론은 내 편”
충청 민심 변화 기대
‘세종시 수정안’이 11일 공개되면 정치권의 긴장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서 ‘수정 대 원안 고수’로 갈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정운찬 국무총리,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정세균 민주당 대표, 정동영 의원, 손학규 전 대표 등 정치권 ‘거물’들의 명운도 갈릴 전망이다. 가깝게는 지방선거, 멀리는 대선에서 이들의 입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먼저 여당 내 최대 주주인 박 전 대표에게 ‘세종시 원안’ 관철은 물러설 수 없는 문제다. 그간 누려온 ‘도전자 없는 미래 권력’이란 위상이 걸려 있고 ‘세종시 수정’은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겨냥해 던진 ‘정치적 덫’의 의미라는 것.
따라서 ‘세종시 수정’으로 최종 결론이 날 경우 박 전 대표의 고립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수정=친박계의 균열’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힘은 급격히 친이계로 쏠리면서 ‘여당 내 야당’으로서의 견제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권 내 차기후보군들의 본격적 도전에도 직면하게 되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반면 세종시 원안이 관철될 경우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게 된다. 현재 권력을 누른 박 전 대표는 더 이상 미래 권력이 아닌 사실상의 현재 권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세종시 총리’라는 꼬리표가 붙은 정운찬 총리의 새해 일성도 세종시였다. 지난 1일 국무회의 후 신년조례회에서 “세종시 발전방안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고, 새해 업무가 시작된 4일엔 재차 충청도를 찾아 안간힘을 힘을 쓰고 있다.
이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세종시 수정을 총지휘해 온 그로선 성공할 경우 단번에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대항마를 절실히 원하는 친이계의 압도적 후원도 예상된다. 더 이상 허수아비 총리가 아닌 실세 총리로도 자리 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충청 민심 설득에 실패하고 수정안이 좌절될 경우 그 뒷감당을 다해야 하는 ‘독배’와 같은 것이 된다. ‘국론 분열’의 책임을 지고 조기 교체될 가능성도 크다.
정 총리와 더불어 세종시 자체가 독배인 사람이 또 있다. 충청권이 정치적 기반인 이회창 총재다. 이 총재는 한마디로 세종시 수정 저지에 ‘올인’하고 있다. 충청 민심대로 수정안을 막아낼 경우 ‘충청 맹주’ 지위는 공고해지면서 지방선거에서 완승을 기대할 수 있다. 실패할 경우 유일한 정치 기반인 충청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심대평 전 대표와 민주당에게 충청표를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정세균-정동영-손학규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먼저 정 대표의 경우 ‘세종시 원안’ 고수를 당론으로 하고 총력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 대표는 4대강 예산과 노동법 통과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일단 ‘세종시 정국’에 올인해 ‘원안고수’를 관철시킨다면 ‘정세균 체제’를 어느 정도 끌고 갈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충청권을 선진당과 양분하면서 지방선거에서 충북표를 받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비주류 측의 공격과 함께 정동영 복귀라는 짐을 떠안아야 할 판이다.
아울러 이 경우 민주당은 정세균-정동영-손학규의 대선3파전의 당권전쟁이 본격화 될 것이다. 2~3월 조기전대를 할 경우 이들 대선 3인방의 빅매치가 예상되고, 더 나아가 정세균-손학규, 정동영-동교동의 세력 재편 가능성도 전망된다.
손학규 전 대표의 경우 10·28 재보선에서 ‘손학규의 힘’을 확인시킨 기세를 몰아 ‘춘천칩거’를 풀고 조기전대를 통해 대선 발판을 다지려할 것으로 보인다. 손 전 대표는 대선 지지율이 정 대표보다 높지만 당내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세종시 민심 향방
차기 대선까지 점친다?
정동영 의원은 일단 ‘복당’ 수순을 밟은 뒤 당권 도전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연말 복당’이 무산되고 주류 측에서는 올 4월 복당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연초 복당되지 못한다면 2~3월 조기전대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되면 연초에 복당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정동영-동교동’의 연대로 당권장악에 나설 가능성이 큰 가운데 ‘호남패권론’카드를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