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잠들어 있던 ‘그림로비’ 안원구 폭로 연일 이슈
개인 비리로 확대, 부인 암 투병에 귀국 가능성 높아져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귀국설이 확산되고 있다. 한 전 청장은 지난 3월 ‘그림로비’ 의혹이 불거지자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폭로로 그림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됐지만 검찰도 한 전 청장도 귀국에 대해서는 거리를 뒀다. 그러나 최근 그의 귀국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한 전 청장이 돌아와 검찰 수사를 받을 경우의 정치적 파장을 점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한상률 게이트’가 속속들이 그 실체를 드러낼까. 서초동 주변에서 ‘그림로비’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귀국설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 전 청장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 이씨가 지난해 말 “한 전 청장이 차장 시절 청장이던 남편에게 인사청탁 목적으로 학동마을을 건넸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진 ‘그림로비’와 TK 인사들과의 골프 파문이 커지자 지난 1월 사표를 내고 3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한상률 귀국 임박?
이후 그림로비 의혹은 한동안 창고 속에 잠들어있었다. 하지만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폭로로 새로운 의혹까지 더해져 ‘한상률 게이트’로 비화됐다. 검찰 수사도 재개됐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은 지난달 26일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그림로비 의혹에 대해 “나로선 억울한 일”이라며 “곧바로 대응하고 싶지만 참고 기다리는 게 더 낫다고 본다. 귀국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 전 청장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들어갈 것”이라면서도 “여론에 등 떠밀려 귀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야권은 한 전 청장을 강제소환해서라도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고 외치고 있다. 검찰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 전 청장의 귀국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말한 것처럼 “강제송환을 하려면 구속할 만한 사안이어야 하는데, 그럴 사안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적극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검찰 수사가 한 전 청장을 구속할 수 있을 만한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검찰은 한 전 청장의 비서를 지낸 국세청 직원 장모씨를 불러 ‘한 전 청장의 심부름으로 학동마을 그림을 구입했고, 비용도 한 전 청장이 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한 전 청장이 “보지도 못했다”던 ‘학동마을’ 그림을 직접 구입했음을 밝힌 것.
또한 안 국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한 전 청장이 승진 대가로 3억원을 요구한 것과 업체들의 세무조사 무마설 등에 대해 집중 질의했다.
이에 따라 정가 안팎에서는 검찰이 한 전 청장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 부부를 소환조사하는 것으로 한 전 청장을 제외한 그림로비 의혹의 관계자 모두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5일에는 한 전 청장의 부인 김모씨까지 소환조사한 것으로 알려져 한 전 청장 조사에 필요한 사전 준비는 다 마쳤다는 것.
한 전 청장의 태도 변화도 그의 귀국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한 전 청장은 그림로비 의혹이 제기됐던 지난 1월에는 “그림을 본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에서는 “설명하고 싶은 내용이 있지만 검찰 조사도 있고 해서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언급을 피했다.
이에 대해 사정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귀국에 대비해 가벼운 혐의는 시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소환조사를 받은 부인 김모씨도 한 전 청장의 귀국설 중심에 있다. 김씨는 지난 3월 한 전 청장과 함께 출국해 미국에 머물러 왔다. 하지만 최근 암 진단을 받고 귀국,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심신이 매우 쇠약해진 상태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가 일각에서는 한 전 청장이 부인 간병을 위해 조만간 귀국한 뒤 검찰 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한 전 청장이 부인의 암 투병 때문에 귀국한다고 검찰에 알려온 바가 없고 검찰이 그런 정황을 감지한 것도 없다”며 “한 전 청장의 귀국과 관련된 상황은 아직까지 변화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지만 귀국설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입 여는 순간 ‘핵폭탄급’
한 전 청장이 자신에 대한 의혹을 직접 해명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전해진다. ‘안원구 파일’에 그가 세무조사를 무마해 준 기업체 정보가 대거 포함돼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민주당이 “추가 의혹을 확보하고 있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나올 것은 폭로뿐임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한 전 청장이 귀국할 경우 그의 한마디에 정국이 요동칠 전망이다. 그림로비 의혹 외에도 연임로비 의혹,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설, 현 정권 실세에 10억 상납 의혹,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 등 굵직굵직한 의혹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정치권 관계자들도 “한 전 청장이 방문연구원 비자로 간 이상 방문연구원 자격이 유지되는 한 비자가 유효하다”며 귀국설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림로비에서 그를 제외한 모든 관계자가 조사를 받았다. 토끼몰이를 당하는데 버틸 재간이 있겠냐”고 일말의 기대감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