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공부’ 하듯 ‘연애공부’를 하는 세상이다.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지만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 이유에서다. 더구나 초식남, 건어물녀 등 연애나 결혼에 관심 없는 남녀들이 늘면서 연애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때문에 연애에 목마른 사람들은 실전에 돌입하기 전 이론수업을 받기도 한다. 한 달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학원비를 내야 하는 연애학원이 우후죽순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돈 주고 연애비법 배우려는 사람들로 연애학원 북적북적
기초이론부터 실전까지 연애고수들에게 전수받는 연애법
이른바 ‘초식남’으로 불리는 이모(31)씨. 이유는 하나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아서다. 반듯하고 호감 가는 외모에 대기업 직원이란 타이틀까지 가져 연애를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이씨.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연애에 관심 없는 초식남이라 규정지었다.
하지만 이씨는 속 모르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면 답답하기만 하다. 자신은 연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적령기가 다가오고 일가친척들의 잔소리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초조하기까지 하다. 결혼은커녕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본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기도 하다.
“나도 연애할 수 있을까?”
이씨는 ‘여자 울렁증’ 때문에 연애를 못하고 있다. 어디서나 당당한 그지만 마음에 드는 이성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기가 죽는다는 것. 이 증세는 대학교에 들어가 첫 번째 소개팅을 할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남중, 남고를 졸업해 여학생을 만날 기회가 적었던 이씨에게 가장 고역은 낯선 이성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소개팅자리는 어떤 자리보다 불편한 자리일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처음 본 여자 앞에 앉아있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며 “학교에서는 왜 여자와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소개팅이나 미팅을 했지만 번번이 애인 만들기는 수포로 돌아갔다. 최후의 수단으로 나이트클럽에서 부킹까지 하면서 연애를 시도했지만 자연스럽게 여성과 어울리는 방법은 끝내 찾지 못했다.
결국 이씨는 초식남 아닌 초식남이 됐고 자신의 삶에 연애란 없다는 자포자기의 상태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TV를 보다가 구세주를 만난 기분을 느꼈다. 연애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연애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당장 인터넷에 접속한 이씨는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연애학원을 발견했고 다음 날 그 학원에 방문했다. 생각보다 멀쩡한(?) 남녀들이 학원에 다닌다는 것에 놀랐다.
솔직히 이런 학원에는 소위 말하는 ‘폭탄’들이나 다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데이트 코치’라 불리는 선생님과 상담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공부로 연애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반신반의한 이씨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난 뒤 학원등록을 결정했다. 한 달 학원비는 30만원. 비교적 비싼 학원비지만 연애한번 못한 남자란 자괴감을 떨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투자를 결심했다.
이씨는 “아직까지는 눈에 띄는 변화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최소한 이성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기대를 표했다. 이씨처럼 돈을 들여서라도 연애에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자 연애학원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그러면 연애학원에서는 도대체 어떤 수업을 하고 있을까. 강남에 있는 K모 학원의 강의 커리큘럼을 보면 대부분의 연애학원에서 진행되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초이론과정이다. 자신감, 화술, 스킬, 스타일, 여자의 심리 파악능력이란 다섯 가지 요소를 이 과정에서 배울 수 있다. 연애에 성공하기까지의 단계별 실천전략도 함께 가르친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단계에서 배운 기초이론을 토대로 실제상황을 통해 간접 체험을 해 보는 시뮬레이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다양한 타입의 이성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접근전략을 몸소 배우게 된다. 이밖에도 이성에게 호감을 주는 표정이나 말투 등을 익히기도 한다.
세 번째는 데이트코치와 1대1로 수업을 하는 개인맞춤과정이다. 직접 거리로 나가 이성에게 대시하는 법을 배우는 등 좀 더 적극적인 과정이다. 마지막은 실제로 이성과 데이트를 하면서 전 단계에서 배웠던 이론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하루 동안 ‘데이트 트레이너’와 데이트를 한 뒤 개선해야 할 부분을 배우게 된다.
이 과정을 거쳐 연애방법을 배운 이들 중에는 실제로 연애나 결혼에 성공한 사람도 있다. 이 학원의 온라인 게시판에는 수강생들의 경험담이 올라와 있어 연애학원의 인기를 실감케 하기도 한다. 한 수강생은 “수업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고 연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글을 올렸다.
효과는 미지수
또 다른 수강생은 “그동안 몰랐던 여자의 마음에 대해 알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까지 했다”며 “나도 이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연애학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먼저 시험공부를 하듯이 이론을 공부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주장이다.
직장인 김모(32)씨는 “판에 박힌 이론을 달달 외워 연애가 가능하면 누군들 연애를 못하겠느냐”며 “학원에 다닐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동호회에 가입해 이성을 만날 기회를 늘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학원비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직장인 박모(33)씨는 “어떤 학원은 3개월에 200만원이 넘는 학원비를 받는 걸로 아는데 효과를 얻지 못한다면 누가 그 비용을 보상해 주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