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감시 프로그램 이용 이메일·메신저 감청
휴대폰 등 생활 속 기기 뒷조사 의뢰인 증가
심부름센터의 개인정보 뒷조사 기술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문자메시지, 이메일, 메신저 등 사생활에 대한 기록이 남는 정보라면 어떤 것이든 캐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대기업에서 사용하는 직원 감시 프로그램까지 뒷조사에 이용될 정도다. 심부름센터를 찾는 사람들의 계층도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절박한 사정으로 인해 심부름센터를 찾았다면 최근에는 사소한 정보를 캐내고 싶은 사람들도 거리낌없이 문을 두드리는 추세다. 달라진 심부름센터의 모습을 살펴봤다.
심부름센터로 인해 개인정보 보안에 비상이 걸렸다. 뒷조사를 하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지고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개인정보 캐내기 방법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이메일과 메신저 대화 내용까지 감청해 준 심부름센터가 덜미를 잡혔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며 돈을 받고 개인의 사생활을 조사해 준 혐의(통신비밀보호법위반 등)로 최모(39)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이메일도 메신저도 한 방에
경찰에 따르면 최씨 등은 2007년 5월부터 최근까지 강남구 역삼동에서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면서 의뢰자 50여 명에게서 건당 250만원씩 총 1억여 원을 받고 타인의 사생활을 뒷조사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 일당이 의뢰자를 모집한 수단은 인터넷 홈페이지. 이들은 개설해 놓은 홈페이지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개인의 각종 인터넷정보 등을 쉽게 탐지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 이를 보고 혹한 사람들은 일정 금액을 내고 원하는 정보를 얻었다.
최씨 등은 의뢰를 받으면 먼저 의뢰 대상자의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한 대기업에서 사원 감시를 목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감청을 위해 불법 입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프로그램은 이메일과 메신저 대화 내용, 인터넷 뱅킹 거래내역 등 주요 정보들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일당은 매 30초당 실시간으로 이 정보를 전송받아 의뢰자에게 제공했다.
최첨단 휴대폰도 심부름센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최근에는 이동통신사 직원을 매수해 휴대폰 문자를 엿본 뒤 의뢰자에게 넘긴 심부름센터직원이 적발됐다. 조사결과 복제 위험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최첨단 3G휴대폰도 쉽게 복제되어 심부름센터와 의뢰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따르면 휴대전화 판매업자 김모(35)씨 등은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37명의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발신, 수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이동통신사 ‘문자 매니저’ 서비스에 가입한 후 가입계정 아이디와 암호를 심부름센터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일당에게 휴대전화 복제를 부탁한 의뢰인들은 주로 배우자나 애인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 의뢰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모(45)씨는 술집에서 꺼낸 푸념으로 인해 일당을 알게 됐다. 최근 부인의 휴대전화가 늘 잠겨있고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등 이상한 낌새를 느낀 윤씨는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이는 옆에 있던 심부름센터 직원의 귀에 들어갔고 직원은 윤씨에게 아내의 휴대폰문자를 엿볼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이를 들은 그는 아내의 휴대폰 속에 저장된 비밀스런 문자내용을 볼 수 있었다.
고모(57)씨는 도청장비를 사러 전자상가에 갔다가 브로커를 만났다. 애인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의심이 들어 도청 장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던 고씨에게 브로커의 제안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처럼 여러 이유로 휴대폰을 엿봐달라는 의뢰인들의 요청이 오면 총책역할을 한 유흥업소 업주 이모(43)씨는 기술담당을 맡은 김씨에게 이를 전달했다. 김씨는 유심(USIM)을 복제해 휴대전화 내용들을 캐냈다.
유심은 3G 휴대전화기에 꽂아 등록하는 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로 이동통신 가입자의 신원과 전화번호 등 정보가 기록돼 있다. 어떤 3G 휴대전화기든 이 유심을 꽂아 등록만 하면 자기 휴대전화처럼 사용할 수 있고 이를 악용해 정보를 빼낸 것이다.
김씨는 유심에 의뢰인이 뒷조사를 요청한 이들의 정보를 옮겨 놓고 이를 자신이 갖고 있는 빈 휴대전화기에 꽂아 일종의 복제폰을 만들었다.
이때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유심 변경을 신청해야 하지만 김씨는 휴대전화 판매업자란 직업을 이용해 손쉽게 해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복제폰은 심부름센터에게 넘어갔고 심부름센터는 의뢰인들에게 건당 50~200만원에 이를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일부 심부름센터들은 고객들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돈만 주면 뭐든 해주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세상인 것이다.
누구나 손쉽게 이용
이렇다 보니 몰래 개인의 정보를 얻기 위해 거리낌없이 심부름센터를 찾는 사람들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과거처럼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이나 절박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는 곳이란 생각이 옅어지면서 심부름센터의 벽이 낮아지기도 했다.
대학생 정모(22·여)씨도 심부름센터를 물색 중이라고 한다.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씨가 알고 싶은 것은 남자친구의 메신저 내용과 휴대폰 문자.
정씨는 “옛날에는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는 바람난 남편의 뒷조사를 하려는 아줌마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많이 바뀐 것 같다”며 “개인정보를 몰래 캐내는 일이 불법이란 건 알지만 심부름센터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답답함이 풀릴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한 심부름센터 관계자는 “개인정보를 담는 기기가 갈수록 진화하면서 뒷조사를 하는 방식도 갈수록 발전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휴대폰 같은 기기를 이용한 뒷조사가 늘어나서인지 거리낌없이 심부름센터를 찾는 의뢰자들도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