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적으로는 정적만 속내는 불똥 튈까 좌불안석
장안동 주민·상인들 작년 악몽 되살아날까 우려
서울 장안동 일대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9월, 장안동 성매매 단속과 관련해 뇌물과 성 접대를 받은 경찰관이 더 있다는 추가 폭로가 나온 까닭이다. 이미 뇌물 혐의로 파면된 전직 경찰관이 추가 폭로자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입을 막으려 했던 진정서까지 검찰에 제출된 상태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이 소식에 장안동은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은밀한 공생관계를 유지해오던 업주와 경찰 간 전쟁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그 현장을 찾았다.
지난 8일 오후 4시. 기자가 찾은 장안동 일대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속내는 달랐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뒤숭숭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경찰 단속도 백해무익이야. 성매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거라 믿은 게 잘못이지. 경찰이 장안동을 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찰 내부를 깨끗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했는데. 추가 폭로도 경찰 스스로 환부를 도려내지 못해서 벌어진 것 아닌가.”
“상인들만 죽지 죽어”
이곳에서 만난 한 상인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경찰과의 대립 양상이 불거진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무엇보다 그는 국민의 이목이 장안동에 쏠려 있는 것에 대해 불만감이 상당했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탓이다.
사실 장안동 주민들이 국민의 이목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9월 경찰이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 성매매업소들을 상대로 강력한 단속을 벌이자 업주들은 성 상납을 받은 경찰 리스트를 폭로하겠다고 반격에 나서면서 업주와 경찰 간의 갈등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장안동 경남호텔 부근 모 안마시술소 주차장에서 안마시술소 업주 최모(49)씨가 목을 매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씨는 지난 6월 이곳의 한 안마시술소를 13억여 원에 사들였다가 경찰의 집중단속으로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된 점을 비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경찰과 업주들이 강경하게 대치하는 국면이 형성됐다. 그때 일을 기억하는 주민들과 상인들은 또 다시 후폭풍을 맞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모양새다.
장안동에서 2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서모(54)씨는 “경찰과 업주들의 싸움에 죽어나는 것은 상인들이야. 업주들 편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줄어드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분위기가 흉흉해져서 장사가 제대로 안돼. 이번에도 타격을 입지 않을까 불안해”라고 속내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경찰들이 돈과 서비스 등 받을 것은 모두 받고도 단속을 하고 있었다”면서 “그래서 문제가 된 것인데 이제 입을 막으려 했다고까지 하니… 단속을 하려면 깨끗하게 해야 하지 않나”라고 분개했다.
또 다른 유흥업소 관계자는 “왜 장안동만 집중 단속을 하고 시끄러운지 모르겠다”면서 “영업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알지만 이제는 빚으로 인해 먹고살기조차 암담하다”고 푸념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알려진 비리 경찰관 추가 폭로는 장안동 주민들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주고 있다. 올해 들어 경찰관 6명이 파면됐음에도 아직도 버젓이 성매매 단속부서에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에 황당한 표정들이 역력하다.
자동차정비소를 운영하는 A(46)씨는 “당시에도 경찰의 의도에 따라 장안동 일대의 성매매 업소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지에 대해 반신반의했다”면서 “장안동 유흥지대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닌데 그 유착관계가 뿌리 뽑힐 리 만무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 장안동 유흥지대는 장안대로변과 경남관광호텔 일대를 중심으로 안마시술소, 휴게텔, 노래방, 단란주점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불야성을 이뤄왔다. 특히 지난 2004년 9월 ‘성매매 금지법’ 이후 서울의 주요 텍사스촌이 기울면서 장안동 일대에 마지막 성매매까지 가는 이·미용업소가 속속 들어섰다.
지난해 경찰의 대대적 단속이 있기 전까지 휴게텔 등을 비롯해 대딸방, 키스방 등 신종 업소까지 등장해 심야 택시기사들이 꼽는 ‘유흥지대 1번지’로 부각되기도 했다.
수소문 끝에 지난해 단속 이후 업소를 그만둔 업주 2명을 장한평 매매시장 인근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안모씨는 “성매매는 당국의 단속의지가 관건인 만큼 어느 곳이든 업주들끼리 돈을 모아 전체적인 물관리를 하고 또 단속에 걸린 업소는 개별적으로 처벌수위를 낮추는 로비를 하기 마련”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이런 것이 없으면 업소들이 버틸 수가 없기 때문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업소들이 내는 회비로 돈을 정기적으로 상납하고 회식비까지 제공했다”며 “아직 추가폭로 내용의 사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납 리스트는 결정적일 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실한 보신책 일환으로 만들어진 만큼 진실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동행한 전직 업주 정모씨는 “장안동 일대에 CCTV가 설치돼 경찰과 업주들 사이에 긴장감이 항상 고조되어 있고 밤에는 숨바꼭질 영업이 계속되고 있다”며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인데 숨 쉴 구멍도 안 주고 몰아붙여 정기적으로 성상납과 뇌물을 받은 경찰 명단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상납비리 조사 철저하게”
하지만 생계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인들도 많았다. 장안동 대로변에서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B(44)씨는 “1차적으로업주들은 성매매 업주로서 벌인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업주는 업주대로 경찰은 경찰대로 잘못한 행위에 대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C(39)씨는 “배씨가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곳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그 후폭풍 때문에 경찰의 단속이 유야무야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비리 혐의를 무기로 삼아 단속을 무력화하려는 업주들 의도에 놀아나서야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상납비리의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해야만 단속의 명분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고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장안동 상인들과 주민들이 안정을 찾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