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박연차 게이트’로 참여정부 풍비박산
‘한상률 게이트’ 파장 일파만파…이상득·정두언 ‘또’
‘잔인한 12월’이 다시 여의도를 찾았다.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로 참여정부 인사들의 피바람을 몰고 왔던 검찰이 다시 시퍼런 칼날을 갈고 있다. 그 칼끝에는 골프장 로비 의혹, 한상률 관련 의혹 등 여권과 관련된 의혹과 참여정부 실세 인사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대한통운 정치권 로비 의혹이 있다. 검찰의 각오도 남다르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소집한 부장급 간부회의에서 “앞으로 권력과 여야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사정수사를 본격화하겠다”는 말로 사정정국이 도래했음을 알렸다.
정치권에 12월 찬바람보다 더 매서운 사정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현재 정치권과 맞닿아 있는 의혹은 한상률 의혹과 골프장 로비 의혹, 대한통운 정치권 로비 의혹 등 3건이다.
민주당은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녹취록과 문건을 기반으로 한상률 전 청장과 관련된 의혹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상득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는 한 전 청장 유임 로비와 ‘박연차 게이트’의 기획수사,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실소유 논란이 일었던 도곡동 땅 문제까지 다양한 ‘꺼리’가 마련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검찰은 골프장 로비 의혹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테이트월셔CC의 정치권 로비 의혹은 골프장 대표 공경식씨의 구속으로 시 의장과 시장, 행정안전부, 안성시, 환경부 소속 공무원 등 토착비리의 뿌리를 캐는 식으로 진행됐다. 때문에 정가 일각에서는 공씨가 금품을 제공했다는 여권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검찰, 여야 정조준
‘검에는 눈이 없다’
그러나 검찰은 이달 들어 공무원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 짓고 정치권을 정조준했다. 이어 방향을 틀자마자 속도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의혹의 중심에 선 이는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다. 공 의원은 공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아왔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검찰은 공 의원이 여러 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추가로 포착,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김기동 부장검사)는 지난 1일 공 의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L사와 C사의 서울 사무실과 이들 회사 대표들의 자택 등 4~5곳을 압수수색했다. 수사관들은 회계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임직원의 개인수첩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 벤처기업인 L사는 공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국회 연구단체 위기관리포럼과 관련돼 있다. 공 의원의 학교 후배가 운영하고 있는 L사는 위기관리포럼과 사무실을 같이 쓰며 사무실 임대료와 운영비, 여직원 월급 등을 대납하는 방식으로 공 의원에게 불법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미 지난달 민주당 민원법률위원회가 이 같은 의혹을 들어 공 의원과 L사 대표를 남부지방검찰청에 고발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은 고발 사유로 공 의원이 위기관리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L사에 사무실 임대료 1350만원, 직원 급여 800만원, 사무실 운영비 4500만원 등 약 665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운영한 혐의(정치자금법상 부정정치자금수수죄)를 들었다.
국회의원과 기업 관계
오래된 친분 석연찮네
C사는 전기자동차 전문제조업체로 모 대기업 임원들이 주축이 돼 2002년 설립됐다. 중저속 전기차를 제조하며 청와대에 3대, 국회에 2대 납품했다. 현재는 골프장에서 쓰이는 전기카터를 주로 납품하고 있다. 지난해 25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등 국내 골프카트 시장의 약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지난 2006년 5월 공 의원이 주관한 ‘환경과 기술의 만남전’에 참석했으며, 2008년 3월 공 의원이 총재직을 맡고 있는 국내 격투기 단체 행사에는 대표가 직접 자리를 함께하는 등 공 의원과 친분을 이어왔다.
C사는 스테이트월셔 골프장에 골프장용 카트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공 의원의 도움을 받고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공 의원이 총재직을 맡고 있는 국내 격투기 단체 등의 후원행사 비용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을 가능성도 의심받고 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증거 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참고인 조사를 펼치고 있다. C사 사장 김모씨 등 업체 관계자들과 포럼의 전 직원 김모씨, 공 의원의 보좌관 등 주변인들에 대한 조사를 거쳐 공 의원을 소환할 방침이다.
특히 공 의원의 보좌관 2명은 사건에 깊이 관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계좌 추적을 통해 공씨와 C사에서 공 의원 보좌관들에게 자금이 흘러들어간 단서를 확보했다. 두 보좌관은 공씨가 한나라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부터 친분이 두터웠으며 공씨와 어울리며 보좌관 월급을 훨씬 상회하는 액수의 돈을 유흥비와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종결했다고?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또한 검찰은 공 의원 외에도 현경병 의원 등 여권 현역의원 두세 명이 공씨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정황을 포착, 자금의 흐름을 쫓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확한 소환 일자는 압수수색한 물건들에 대한 분석이 끝나봐야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 의원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최고중진연석회의 공개 발언을 통해 “현재 테러를 당하고 있는 심정”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 최고위원은 “부덕의 소치로 의혹의 중심에 있는 게 송구스럽다”면서도 “정체불명의 허위날조된 제보가 언론과 검찰에 종횡무진 질주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한 달 전만 해도 마치 내가 골프장 인허가 비리와 대출 비리에 연루된 것처럼 보도되더니, 최근에는 모 회사와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러한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또 “3주 전에 이미 검찰에 이 같은 의혹과 무고에 대해 판단해달라고 소를 냈다”며 “내가 떳떳하지 못하면 제소를 할 리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대한통운의 정치권 로비 의혹도 수사에 활기를 띠고 있다. 당초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 시작된 수사는 지난달 25일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권오성 부장검사)는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과 곽영욱 전 사장 등 3명을 구속 기소하고, 김모 전 부산지사장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곽 전 사장이 참여정부 시절 특혜를 누린데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참여정부 실세 정치인 J, K, H 등 세 명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진술하면서 수사가 야권으로 확대되리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던 ‘참여정부 실세 로비설’은 지난 2일 곽모 경제지 대표이사가 체포되며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대한통운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곽 전 사장이 횡령한 회삿돈의 일부를 곽씨에게 로비 명목으로 건넨 것으로 보고 곽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곽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곽씨는 지난 2006년 말 곽 전 사장에게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될 수 있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거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곽 전 사장과 곽씨, J, K, H는 모두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관계자는 곽 전 사장이 곽씨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해 이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곽씨가 곽 전 사장과 참여정부 실세 인사들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는지 여부가 확인될 경우 야권도 파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