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실세 손가락에 골프장 인허가·국세청 좌지우지
창고 속에 잠들었던 ‘그림로비’ 한상률 게이트로 점화
총력전 펴는 민주당, TF 꾸리고 ‘검찰 수사 저리가라’
정권 실세들이 얽힌 두 개의 로비 의혹이 여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골프장 로비 의혹과 그림로비 의혹이다. 골프장 로비 의혹은 토착비리 수사에서 정치권으로 쉽사리 옮겨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로비 의혹은 ‘한상률 게이트’로 비화되며 굵직한 곁가지 의혹들을 키우고 있다. 여권은 숨죽인 채 검찰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두 의혹 모두 ‘정권 실세’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야당의 ‘수사전’도 여권의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하룻밤 사이 새로운 폭로가 이어질 것”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가다 보면 이명박 대통령까지 뒤흔들 ‘핵폭탄’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전망마저 제기되고 있다.
여권의 한숨이 깊다. 한나라당 소속 지자체장들을 검망에서 허우적거리게 한 검찰이 ‘대어’를 낚기 위해 그물을 드리웠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상처’의 크기도 달라지는 만큼 여야는 검찰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서가던 골프장 의혹
그림로비의 화려한 역전
골프장 로비 의혹은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공경식 스테이트월셔CC 회장이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권에 금품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지며 여권을 발칵 뒤엎었지만 토착비리 수사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까닭이다.
지역 공무원과 시의장, 시장으로 이어지는 토착비리에 대한 수사로 인해 경기 안성시 전·현직 고위 공무원들이 로비의 핵심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김모 전 안성시의회 의장은 공씨에게 청탁과 함께 1억 8000여 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동희 안성시장도 공씨로부터 수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전 안성부시장들과 한강유역환경청 국장을 지낸 환경부 과장 등 직접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관여한 이들이다.
검찰은 공씨로부터 “스테이트월셔 사무실에서 여당 국회의원 K씨의 보좌관에게 수천만원을 건넸다”는 진술도 받았다. 하지만 ‘현역 여당 정치인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는 토착비리 수사에 밀려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정치권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으로 나서게 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 대한 로비는 공씨가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공씨가 의원들에게 금품을 건넨 게 아니라 일부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결론 나면 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도덕성 문제야 거론되겠지만 직접 금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스폰서 받은 것은 ‘로비를 받은 적이 없다’ ‘대가성은 없었다’고 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 있을 것”이라며 “수천만원을 받은 보좌관들은 개인 비리로 처벌되고 여권 의원들의 소환은 구색 맞추기로 흐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의원까지 의혹이 확산되면 ‘정권 실세’까지 위협받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가 일각에서는 ‘K의원을 치면 L씨가 흔들리고 C의원을 치면 K씨가 위태롭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림로비 의혹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달 21일 안원구 국세청 국장이 기업체들에게 세무조사 무마를 대가로 수차례에 걸쳐 미술품을 사도록 강요해 13억여 원의 불법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다.
안 국장은 구속직후 기다렸다는 듯 국세청과 관련된 수많은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거침없는 그의 폭로에 검찰과 언론이 따라가기 버거워 할 정도다.
안 국장의 부인인 홍혜경씨는 남편의 구속직후 국세청 내부 비리를 폭로했다. 홍씨는 “안 국장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으로부터 ‘3억원을 주면 국세청 차장으로 승진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너 죽고 나 살자’
구속 후 막장 폭로전
한 전 청장이 ‘정권 실세에게 갖다 줄 10억원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7억원을 (마련)할 테니 3억원을 만들어라. 그러면 차장에 중용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안 국장은 고심 끝에 이를 거절했고 좌천당했다는 게 홍씨의 설명이다. 홍씨가 구체적인 정황까지 들어 법조계 안팎에서는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안 국장은 또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정권의 실세가 관여했다는 주장을 폈다. 안 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한 전 청장 재직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사퇴를 종용받아왔다. ‘그림로비’ 사건을 발설한 인물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사퇴를 종용한 이들은 청와대 등 정권 최고위층이었다. 또한 이들은 안 국장이 국세청 내부 비리를 발설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민주당은 안 국장으로부터 국세청이 조직적으로 그를 사퇴시키려 압력을 가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과 그가 직접 작성한 문건을 건네받아 공개했다.
한 전 국세청장의 유임 로비에서는 정권 실세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민주당 ‘한상률 게이트 및 안원구 국장 구속 진상조사단’ 단장인 송영길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안 국장이 2008년 1월에는 국회 본청 국회부의장실, 2008년 3월에는 포항 이상득 의원 사무실에서 이 의원을 만났다”며 “안 국장은 이 의원의 아들인 이지형씨와는 원래 잘 알고 있었고, 이씨의 소개로 이 의원을 만났다”고 밝혔다. 안 국장은 이 자리에서 한 전 청장이 참여정부 실세들과 긴밀한 관계가 아니어서 유임해도 된다는 취지로 로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국장은 이 과정에서 한 전 청장과 세 차례에 걸쳐 독대했다. 두 번째 독대에서 한 전 청장은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당선자 뒷조사를 한 자료를 요구하는데, 본인은 뒷조사를 한 적도 없고 그 부분은 전군표 전 청장과 관련돼 있다”고 얘기해 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안 국장을 면회했던 송 최고위원은 “한 전 청장이 현 정권에서도 유임됐고 그 과정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며 “이 같은 표적수사가 전직 대통령 투신이라는 비극적 결말까지 연결됐다”고 주장했다.
안 국장 측은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한 전 청장이 청와대에 직접 보고했다”고 주장, 다시금 표적 수사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안 국장의 폭로로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림로비’와 ‘박연차 게이트’의 진실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월 전군표 전 국세청장 부인이 “지난 2007년 한 전 청장 부부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그림을 선물 받았다”고 폭로해 시작된 ‘그림로비’는 한 전 청장이 지난 3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규명되지 않고 있었다.
지난 대선기간 이명박 대통령 실소유 논란이 일었던 도곡동 땅 문제도 다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안 국장이 대구지방국세청장이던 2007년 후반 포스코건설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이 이명박 후보의 것’이라는 내용이 적시된 문서를 발견했으며 이 문서에 대해 ‘보안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골프장 로비 의혹에 그림로비 의혹이 연달아 터지면서 정가 안팎에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성과’를 내야 하는 검찰과 일전을 각오하고 있는 야권 탓이다.
지난달 27일 취임 100일을 맞은 김준규 검찰총장의 어깨가 무겁다. 효성그룹 수사는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고 안 국장의 폭로로 한 전 청장과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골프장 로비 의혹도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만을 남겨둔 상태다.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권을 겨냥하고 있는 칼날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어디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잘라 내느냐가 관건이지만 여론과 정치권에 등이 떠밀리고 있어 발을 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대다수의 견해다.
야권의 공세도 매섭다. 민주당은 골프장 로비 의혹과 그림로비 의혹에 TF를 구성, 의혹의 실체를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골프장게이트 진상조사 특위’는 지난달 26일부터 골프장 비자금 조성 및 인·허가 등 전반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서의 적법성 및 행정절차적 타당성 조사와 공무원 및 정치인 로비의혹 조사, 여타 도내 신설 골프장 의혹 사례 수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여권 비리 칼날 가는 야권
‘특검’ 뺨치는 수사 나선다
정가 일각에서는 실명이 나오는 의원들 외에 또 다른 인사들이 연관돼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공경식 리스트’가 터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상률 게이트 및 안원구 국장 구속 진상조사단’도 정확한 증거수집에 공을 들인다는 계획이다. 이상득, 정두언 의원 등 현 정권 최고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된 데다 ‘그림로비’ ‘박연차 게이트’ ‘도곡동 땅 실소유 의혹’ 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관돼 있는 만큼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절실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진상조사단은 우선 안 국장이 말한 도곡동 땅 실소유 관련 문서가 있는지, 문서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등 문서의 존재여부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권이 검망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데 대해 “정권까지 흔들 권력형 게이트가 터져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