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살인마 정남규가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사형수로 복역 중이던 그는 비닐봉투로 만든 끈을 이용해 독방 안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로 추정되는 것은 최근 도마에 오르고 있는 사형제 존폐논란이다.
강호순, 조두순 등 흉악범들의 잇따른 출연으로 사형집행 여부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불안감을 느껴 자살했다는 것. 이 사건으로 수감자 관리 소홀 논란과 사형제 논란이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요즘 사형제도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13명의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정남규는 현재 심경을 담은 짤막한 메모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소홀한 수감자 관리
법무부에 따르면 그가 자살을 시도한 시각은 지난달 21일 오전 6시35분. 정남규는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쓰레기봉투를 꼬아 만든 끈을 이용해 목을 맸다. 이를 발견한 교도관들이 정남규를 병원으로 데려 가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결국 다음날 오전 2시35분 숨졌다. 2007년 4월12일 사형이 확정된 후 31개월 만의 죽음이다.
살인마 정남규 구치소에서 비닐봉투 이용해 자살
사형제존폐논란에 두려움 느껴 자살한 것으로 추정
그의 자살소식이 알려진 뒤 놀란 이들은 적지 않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흉악한 살인마였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약한 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탓이다. ‘제2의 유영철’로 불릴 만큼 잔혹한 살인행각을 벌였던 정남규. 2004년부터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연쇄살인행각을 펼쳐 부녀자들을 떨게 만들었던 그는 검거 후에도 화제를 낳았다.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욕구불만이 범행동기였던 그는 “부자를 죽일 때는 희열을 느꼈다”고 말해 세간을 경악케 했다.
재판장 또는 취재진 앞에서 내뱉은 말은 어록으로 남기도 했다. 정남규는 “직장도 없고 결혼도 못해 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살해한 뒤 죽은 사람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다” “타오르는 불을 보면 황홀했다” “유영철을 만나 같이 한 건 하고 싶었다” “왜 국가가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빨리 사형해 달라” 등의 말을 태연하게 해 충격을 줬다.
결국 정남규는 사형을 확정 받았고 자신이 롤모델(?)로 삼았다는 유영철과 같은 구치소에서 독방생활을 했다. 이 후 성경을 읽으며 조용한 수감생활을 했다는 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남규의 자살로 도마에 오른 첫 번째 문제는 소홀한 수감자 관리다. 이는 그동안 구치소에서 목숨을 끊은 수감자들의 통계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법무부가 지난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자살을 기도한 수형자 422명 중 72명이 숨졌다. 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것은 독방에서 지내던 수감자들로 나타나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사형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정남규가 자살에 사용한 도구가 구치소에서 나눠 준 쓰레기봉투란 것이 알려지면서 생필품을 이용한 자살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함께 일고 있다. 서울구치소는 분리수거용 비닐봉투를 혼거실이나 독거실에 구분 없이 넣어준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자살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불이나 수건, 쓰레기봉투 등의 생필품을 이용한 자살 시도는 예견하기가 어렵고 또 이런 물품들을 지급하지 않을 수도 없어 근원적으로 자살을 예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독방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말 재소자의 인권침해 논란으로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만 CCTV가 있는 방에 수용된다. 정남규는 지난 8월 CCTV가 없는 방으로 옮겨져 목숨을 끊는 것이 한층 수월해졌다. 이번 사건으로 불거진 또 다른 논란은 사형제 존폐 논란이다. 정남규가 남긴 메모로 자살 원인이 사형제 논란에 따른 불안감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사형폐지론 측은 흉악한 살인범조차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사형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호순 사건 이후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사형수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는 현실을 빗대며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사형제를 유지해야한다는 측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특히 네티즌들은 정남규의 자살로 인해 사형수를 옹호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사형수가 두려움에 자살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동정표를 던지는 이들이 있는데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며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생각한다면 일시적인 동정심에 이끌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형제 논란 가열
또 다른 네티즌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며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할 흉악범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편한 길을 택한 것 자체가 분하다”라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사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자신의 죗값 만큼 고통을 받아야 유사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꼬집었다.